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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지만 따듯하다. 읽는 중간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해설을 보다가 헨리제임스가 나와서 아 그렇구나 했다. 인생의 덧없는 아이러니.....


그런 저런 소소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에 건네는 위로로 책장을 넘기다 <문상>, <새 보러 간다>, <모리와 무라>에서는 뜻밖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요동쳤다. <문상>의 희극배우를 위로하는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해서 위로를 하는건지, 가족관계의 아픔을 위로하는건지 모호해지다가, 송이 지난 이별에 대한 치유를 경험하는 것. '물론 배우는 안 웃어요. 배우가 안 웃어야 더 웃기죠'라는 희극배우의 아이러니를 통해 헨리제임스와의 연결고리를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인생 참 덧없다.

<새 보러 간다>에서 눈이 점점 멀어 글이 보이지 않는 현석경작가가 윤의 자신의 아카이브에 대한 방대함만을 보고 윤을 인정하며 같이 작업하려는 모습에서도 아이러니함은 극치를 보여준다. 윤의 상처와, 김수정의 허무한 단념, 그리고 최고의 갑의 위치에 있는 현석경 작가의 여유넘쳐 가증스럽기 까지한 자만감은 진정한 가치에 대한 혼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

<모리와 무라>에서 화자는 숙부의 유산으로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다. 해경을 통해 지난 가족의 가정사를 알게되며 숙부의 트라우마와 자살한 사촌의 몫까지 챙기게 되는 화자는 자신의 가정이 숙부의 트라우마에 빚을 진 것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가족에 대한 상처가 등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나에겐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가족을 생각하면 어딘가 하소연해도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있어 나에게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을 억누르며 책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일 거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작가의 처방을 받아도 박멸 되지 않는 바이러스와 같기 때문이 아닐까. 


따듯하다고 시작했지만 나에겐 따듯함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무던히 흘러가는 강에 흘려보내는 나의 상처로 접은 종이배가 나뭇가지에 걸려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적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 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완수였다.(27p)

어떠냐고……… 은수가 어떻긴 뭐가 어떤가. 그냥 잘생기고 가난하고 우울하고 뭔가 일이 안 풀리고 불안정하고 종종 죽고 싶고 그런데도 일은 나와야 하고 꿈은 멀고 다 귀찮고 때론 내 몸이라느 것 자체가 귀찮아서 버리고 싶고 길바닥에 버리고 줄줄 새어나오게 심장이랑 머리랑 손톱이랑 발목이랑 벗어두고 홀가분해지고싶지, 그렇게 젊은 게 좋으면 니들이나 가져라, 하면서 젊다고 할수 있는 것들은 다 버리고 눕고 싶지. 아무데나 누워서 구름이나 세고 싶지.(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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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의 퀴어판 소설쯤 되는 것 같다. 닉 게스트는 개츠비처럼 상류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편입되고 싶었던 그 사회의 추잡하고 이중적인 면모를 경험하면서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씁쓸한 캐릭터라는 점이 겹쳐진다.
개츠비는 닉 캐러웨이의 시선에서 개츠비의 몰락을 그렸다면 아름다움의 선에서는 닉 게스트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고, 특히나 남성 동성애자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느끼는 심리묘사가 두드러지는 점에서 흥미롭다. 도한 개츠비는 데이지 뷰캐넌에 대한 개츠비의 사랑이 주된 사건의 발단이었다면 닉 게스트는 이성애자인 토비 패든을 짝사랑하면서 그 주변의 성적 관계들을 맴도는 모습이 동성애자로서의 주변인,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닉 게스트보다 더 취약하다고 볼 수 있는 찰스가의 가족들에 비해, 옥스퍼드 출신의 평민 닉 게스트는 상류사회를 동경하고, 토비 페든을 짝사랑 하는 등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을 품으며 주변을 방황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더 비극적인 듯 하다.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닉 게스트가 순수하게 보호하고자 했던 제럴드의 불륜, 캐서린의 정신병력, 와니의 이중생활은 상류층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닉 게스트를 희생양으로 써버리는 수단이 되어 버린다. 닉 게스트가 상류층의 명암 중 밝은 면만 바라보고, 순수한 소신으로 그들이 가진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면을 체화해 내는 것에 실패하여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부분은 양심적이고 순수한 삶에 대한 회의감을 상기시키는 부분이었다.

아름다움의 선은 윌리엄 호가스가 ‘미의 분석’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개념이라는데, 닉은 화려한 고가구나 남자의 등과 허리, 엉덩이 라인을 보며 아름다움의 선을 느낀다. 다만 정작 부를 소유한 제럴드와 같은 인물들은 자신이 소유한 고가구의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다. 되려 닉에게 가구나 예술작품에 대한 조언을 듣지만, 심지어 이마저도 크게 상관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소설 초반에 인용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와 닉 게스트가 연구하는 헨리 제임스의 문학적 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 영국 상류층의 이중적인 아이러니한 모습, 특히 폴리와 같은 인물들이 선거에 당선되는 모습 등 소설 전체에 깔려 있는 아이러니컬하고 모순된 모습들이 냉철하게 그려진다. (요즘엔 이러한 아이러니들은 공공연한 사실이 되고 허탈함, 박탈감을 일반 시민들에게 안겨준다.)

퀴어 소설 답게 동성애에 대한 논점도 빠질 수 없는데, 닉 게스트의 성에서도 나타나듯이 작가는 동성애가 우리 사회의 완전히 포용 되지 못하고 주변부를 떠도는 모습을 페든가의 주변인으로 겉도는 닉의 모습과 중첩 시키며 ‘게스트’, 즉 손님(주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으로써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닉 게스트는 옥스퍼드 출신으로 페든가와의 우연한 인연을 통해 그들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얻었지만, 동성애자이고, 귀족이 아니며, 그의 전공은 정치학이나 경영학 등 성공과는 거리가 먼 문체, 헨리 제임스 등에 관한 것들이다. 닉 게스트에게 주변부적인 대상을 이입하면서 작가는 동성애에 대한 따스한 연민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80-90년대 에이즈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불치병이던 시절 퀴어요소가 가미된 예술작품에는 기승전-에이즈라는 공통된 문법이 있었는데, 이제는 주기적인 약물치료로 정상수치를 유지하며 전염력도 낮출 수 있는 만성질병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에선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키는 불편한 내용이긴 하다.

지루하게 전개되는 초, 중반부에서 늘어지는 심리묘사가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며, 사건이 발생하는 후반부에서는 되려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묘사를 심도있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영국 상류층 사교계가 배경인 소설답게 등장인물의 수가 만만치 않고, 잠깐 스쳐가는 인물인 듯 했는데 한참 지나서 사건을 전복시키는 주요 인물들(로브메리 찰스, 페니 켄트, 제니 그룸)이 있는 등 집중력을 상당히 요하는 소설이다.

"그래, 내 조카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케슬러 경이 미소를띠고 물었다. 그가 어떤 경쟁에 대해 묻는 것인지 어떤 예측불허의사건에 대해 묻는 것인지 닉에게는 분명치 않았다.
"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소를 돌려주며, 그는 친구 사이에 용인될 만한 아이러니의 테두리 안에서 우정 어린 긍정을 내비 치는 이 미묘한 일을 스스로 잘해냈다고 느꼈다.(81p)

"자네도 이 집에 머무나?" 레이디 파트리지가 물었다.
"예, 꼭대기층의 아주 작은 방을 쓰고 있습니다."
"호크스우드에 작은 방이 있는 줄은 몰랐군. 하긴 꼭대기층에 올라가본 적이 없으니." 그의 겸손함을 가져다가 그를 더욱 바닥까지끌어내린 그녀의 솜씨에 닉은 반쯤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말이 그녀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질 정도였다.(113p)

"베르트랑? 아, 위대한 인물입니다!" 제럴드는 그 말이 자신에게도 쉽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듯 무척 자주 그 단어를 사용하곤 했다. (382p)

"맞아요, 참 끔찍한 일이었지 요." 닉이 말했다. 그에게는 전혀 새롭고도 놀라운 정보였다. 그에 게 떠오른 첫 생각은 자신이 와니와 아주 가깝다고 자족적으로 생각해온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족의비밀, 그와 와니 사이의 하찮은 성적 음모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어두운, 들여다보기 힘든 비밀이었다. 그리고 와니는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고 있었다..…. 즉시 와니가 더 감동적이고 더 매력 넘치 며 더 용서받아 마땅한 사람인 듯 느껴졌다.(383p)

그리고 아마도 매번 무심히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더욱 소중해지고 또한 아파지던 기억, 리오에 대한 은밀한 찬사이기도 했으리라. (567p)

제럴드는 정원을 바라보았지만 실은자신의 불만만 들여다보고 있었다.(6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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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황세연 지음 / 마카롱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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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큰 기대없이, 특히 생각도 없이 주문을 해버리고 뜻밖의 수확을 거두는 경우가 좀 많았다. 그래서 이 책도 그렇게 주문을 했다면 이건 큰 기대가 없이 주문했다는 말에 모순이려나. 그래서 이건 내심 기대를 하고 주문을 했던 게 맞나보다. 책이 재밌겠지보단 행운이 또 따라줄거라는.
아무튼 책을 진지하게 까보려는 의도를 주려 하였으나 그건 실패한 듯 하다....
영화화 됐다는데, 역시나 출생의 비밀, 애증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비현실적인 로맨스, 조폭과 비리경찰, 가정사를 써먹는 한국적 신파까지 잊지 않고 꺼내 뒤범벅 해놓은 한국적인 장르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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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회사다니면서 쓴 소설이라니, 선입견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문장이 조금 거슬리면 나도 직장인인데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겠어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인지 착각인지도 모를,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가 섞인 감정까지 들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꼭 보고 싶었다. 어느 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뻤다. 왠지 박상영작가가 성공하는 모습에 내가 뿌듯하듯이, 그냥 그런 직장인이 뻔한 직장인의 감정을 글로 담아주고 베스트 셀러로 올라가는 것이 기뻤다.
누구나 다 이러고 살지만 나 만큼은 그러고 살지 않는다는 믿음에 내가 아닌 누군가의 그런 삶을 들여다 보며 비웃는 느낌.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남의 배아픈 성공을 인정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처럼.
(감상을 쓰기엔 너무 어려운 젠더 감수성은 생략해야겠다.)

물론 휴대폰으로 듣는 일이 더 많았지만 그럴 때에도 장우는 무조건 앨범 전체를 다운받아들었다. 그게 음악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디지털싱글은 책을 원하는 장만 찢어서 가지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겨졌다.(110p)

그녀가 나쁜 의도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세대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치일 테니까.(142p)

여자는 이 무난하다‘는 평균의 가치가 역설적으로 얼마나 희소한 것인지를 해가 지날수록 체감하고 있었다. (171p)

나에겐 고심 끝의 결정이자 엄청난 도전이고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다 준비하고 나서 보니 결국 남들이 한번씩 해보는 걸 나도 똑같이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게, 유행의 일부일 뿐이라는 게, 그저 준비운동을 마친 것일 뿐이라는게,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193p)

연봉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 씁쓸한 감정이 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기뻤다. 방송국이고피디고 뭐고 지긋지긋했다. 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상여금, 특근수당, 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직원이 되면서 회사에서 가족 의료비도 지원해주었다. 아빠는 그 돈으로 수술할 수 있었다.(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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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지루했다. 150페이지를 넘겨야 하지만 50페이지를 넘겨서도 소설에 빠져들지 못했다. 그냥 넘겼다. 넘기다 딴생각이 자꾸만 들어 다시 돌아와 읽기도 여러번 했다. 화자가 남자였구나. 문체에서 화자가 여자라는 선입견이 들었나보다. 그리고 후반부로 접어들어 이제 좀 만 더 넘기면 되겠구나 싶을 때 그 조금이 너무 순식간에 넘겨졌다.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한 친구가 떠들어대는 혁명이, 화자가 촛불을 보며 느끼는 무료함이, 죽은 dd가 죽은 애인이었다는 점이, 빈티지를 ‘살리며’ 진공관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아무 의미 없을 것 같던 여사장의 한마디가. 그 사장의 이름이 여소녀였기에 주는 반전이었고, 그가 d를 음향기기, 진공관을 빌어 무료함에 경각심을 일깨워준 인물이라는 점에 반전은 배가됐다.
소설을 너무 잘 엮었다. 이런 구상이라니. 한국인이라면 누가 가슴한켠이 아려오고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을 것인가.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사람들’이 너무 비유적이었다면, 황정은은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직설법을 너무나 고급스럽게 짜냈다.

재정비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자들의계획에 따르면 여소녀 자신과 같은 기술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콘텐츠였으나…… 기술자이자 상인인 그들모두 결국은 세입자이며… 세가 오르면 특별히 영세한업체가 많은 이 상가에서 상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일격이 될 수도 있었다. 여소녀는 생각했다.
상가가 사는 거지 내가 사는 것은 아니지.
무릎에 펼쳐진 신문이 바람에 부풀었다. 여소녀는 신문을 두번 접어서 조금 더 자세히 읽고 싶은 기사를 위로 오게 해두었다.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본문에 다섯차례나 언급된 재생이라는 말이 여소녀는 마음에 걸렸다. 무엇을 재생한다고?
왜?(94p)

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 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114p)

조짐은 늘 있다고 박조배가 말했다.
조짐?
d는 박조배를 돌아보았다. 매연 때문에 눈이 몹시 뻑뻑했다. 유사시라는 말은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라는 뜻인데 비상한 일은 늘 일상에서 조짐을 보이게 마련이라고박조배는 말했다. 갑자기……라는 것은 실은 그다지 갑자기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불시에……라는 것은 내 생각에……… 우리가 모르는 척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 일상을 말이다.
일상에 조짐이 다 있잖아. 전쟁을 봐라. 맥락 없는 전쟁이없고…… 방사능도 마찬가지, 원전이라는 조짐이 있으니까 유출도 있는 거잖아. 지금도 그렇다. 내게는 언제나 지금이 그래…… 지금은 꼭 전간기 같다. 1차대전과 2차대전, 두개의 거대 전쟁 사이에 조짐이 아주 충만했지. 그런조짐을 느껴. 세계가 곧 한번 더 망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는데 그게 굉장히 확실하다. (129p)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그것이 따로 있다면, 이렇게 끝날 조짐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 이어지고 있다. 조짐도 무엇도 없이 이것은 이렇게 이어진다. 박조배는 금방이라도 세계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d는 의아했다. 망한다고?
왜 망해,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채 이어질 뿐. (134p)

이 오디오가 이제 좀 특별해졌느냐고 여소녀는 물었다.
같은 모델이라도, 그 기기를 다룬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고 여소녀는 말했다. 세상에 그거 한대뿐이니까, 빈리지를 고치려는 사람들은 고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린다고 말하지.
눅눅한 바람이 수리실 안으로 불어 들었다. 비가 들이치자 여소녀는 창을 닫았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유리 벌브 속에 불빛이 있었다. d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그 투명한 구球를 잡아보았다. 섬뜩한 열을 느끼고 손을 뗐다.
쓰라렸다.
d는 놀라 진공관을 바라보았다. 이미 손을 뗐는데도 그얇고 뜨거운 유리막이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통증은 피부를 뚫고 들어온 가시처럼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145p)

서수경과 나는 1996년의 고립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않았다. 각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말이다. 그 고립의 기억은 잊혀지지는 않고 다만 묻혀 있다가2008년 6월 10일, 광화문 대로에 명박산성이 등장했을 때와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남일당 건물이 불타오르기시작했을 때 구체적으로 환기되었다.(187p)

재산 손괴 장면은 종종 인명 손실 장면보다도 효과가 강하지. 왜냐하면 그 장면에 대한 이입이 훨씬더 쉬우니까. 왜 그게 더 쉬운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금 여기서는 그게 더 쉽고, 뭐가 더 쉬우면 쉬운 쪽으로되어간다. 뭐가 그렇게 되기 쉬우면 뭐는 곧 그렇게 되지여기서는. 그렇지,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189p)

이렇게 가정해볼까. 아버지가 말하는 권위는 곧 힘이고힘이란 곧 누군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누가 들을까 두려워 급하게 자식의 입을 틀어막게 만든 힘, 그는 그런 힘을 경험했고 그것이 힘이라는 것을 알며 힘이란 곧 그게 되었다. 그게 없음을 그는 혐오한다. ‘권위 없음‘을 혐오한다. 누구도 ‘권위 1없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므로 그는 자신의 ‘권위 없음상태를 두려워한다. 그가 누군가의 ‘권위 없음‘을 비난할때 그에게는 그것을 하는 ‘권위‘가 있으므로 그는 힘없음을 힘껏 혐오한다.....
(222p)

내가 왜 그랬지?
김소리는 수년 동안 자신에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는 데 그는 어땠을까? 그도 그렇게 했을까? 그에게도 그 질문이 있었을까? 바르고 옳게 행동했다는 생각에 그런 질문조차 없지는 않았을까? 그는 김소리에게 부끄러움을가지라고 말했지만 당시에 김소리가 가진 것은 수치심이었고 경멸감이었지. 그는 김소리에게 어른을 요구했지만그 자신도 김소리에게는 어른이었으면서, 그는 김소리의아무것에도, 김소리의 어른 됨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비난만 하고 갔어. 그의 어른 됨은 김소리를 관찰하고 김소리를 판단하고 사후에 다가와 비난할 때에만 유용하게게 작동했는데, 어른 됨이 그런 것이라면 너무 편리하고 야비하지 않나. (240p)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설치된 2711개의 추모비들은, 콘크리트 관 같은 형태를 하고 저마다의 높낮이로 가지런하게 도열되어 있었는데 나치에 희생된 동성애자 추모관 은 그 열에서 내던져진 한개의 덩어리로, 핍박과 말살을 목적으로 분리된 전체에서 다시 분리된 한 조각으로, 다소 엉뚱하게 공원 가장자리에 꽂혀 있었으며 그 존재 양상은 내게 격리와 배제의 반복으로 보였고 서수경에게는독자성/가시성으로 보였다.(249p)

우리가 무슨 관계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마중 가는 사람, 20년째 서로의귀가를 열렬히 반기는 사람, 나머지 한 사람이 더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을 매일 상상하는 사람, 서로의죽음을 가장 근거리에서 감당하기로 약속한 사람, 우리는우리의 관계를 묻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에게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친구‘나 ‘친척‘이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이 가장 간단하고 간편하기 때문은 아니고 그것이 우리 이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260p)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뭘까? 그것은 생각일까? 사람들이 자기 상식을 말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을 자기 생각이 라고 믿으니 그것은 생각일까. 아니야 common sense니까 시계에 대한 감이잖아. 그것이 그러할 것이라는 감感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해제를 쓴 정화열 선 생은 상식을 ‘사유의 양식‘이라고 칭하며 그것을 ‘감각에 바탕을 둔 사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그에 따르면 상식, 또는 공통감sensus communis 이란 아무래도 ‘생각‘인 모양이고, 다시 그를 인용하자면 서수경에게 적용되었다는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본래의 상식, 즉 사유의 한 양식이라기보다는 그 사유의 무능에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상식을 말할 때 어떤 생각을 말하는 상태라기보다는 바로 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생각은 아닌 듯하 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다가,라고 말하는 순간에 실은얼마나 자주 생각을…… 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상식, 그것은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에 가깝고 몸에 밴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상식이지,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배제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일까.(265p)

한 사람이 말 하는 상식이란 그의 생각하는 면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않는 면을 더 자주 보여주며, 그의 생각하지 않는 면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당신은 방금 너무 적나라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266p)

서수경과 나는 그런 질문을 가진 뒤에야 비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점자라고 칭하는 것처럼 비맹인이 사용하는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으며 그 말이 묵자墨字라는 것을 그때에서야. 묵자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도구이며, 벽이며 간판이며 각종 게시판의 공지사항이며 약병에 붙은라벨에 적힌 안내문과 주의사항과 경고와 지금 이 문장과 롤랑 바르뜨와 생떽쥐뻬리와 한나 아렌트와 라울 힐베르크의 책에 잉크로 인쇄된 것들이 모두 그것에 해당하고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세계의 기본적인 전제라는 것도 우리는 그때에 알았다.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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