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박지원이 유명한 문장가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박지원이 허생전등 여러 이야기를 쓰기 전 박지원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는 사실은 조금은 생소할 것이다. 아는사람 말고는. 
예로 부터 학문이 글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이름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박지원어릴 적 매우 몸이 약해서 박필균은 그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는 글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했다. 
그리고 혼인해야할 나이가 오자 이보천의 딸고 혼인하여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귀한 책이 들어왔다고 읽어보라고 했으나 까막눈이라는 것을 밝히고  장인어른이 글공부하는 것을 권하고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장인어른과 글공부를  하게되었고 그래서 조선의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은  정말 가망이 없지만 모른다면 열 번 아니 스무 번 되풀이해서 보고 끝까지 알려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공부를 잘할 수 있다. 
그러니까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노력은 결국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는 달콤한 열매로 보답해 줄 것이다. 
 
병을 잘 고치는 의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마스코라는 제자가 있었고 그에게 새로운 제자가 생겼다. 
그의 이름은 안젤로이고 안젤로는 마르코보다 똑똑하지 않았다. 
그래서 7년동안 배워서 체하는 것을 고치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하나만 배움으로써 그 바보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데 이웃나라 공주가 아파서 공주는 고치는 사람은 공주와 결혼을 허락한다는 소리에 많은 의사들 그 곳으로 가서 치료하려고 했으나 모두들 아리송해했지만ᆞ 그 바보는 공주가 체했다는 것을 알게 된  바보는 공주를 고치고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라도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천재가 아닌 이상 어떤 사람도 공부한 모든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열심히 복습한다면 공부한 것이 머릿속에 차곡차고 쌓이게 될 것이다. 

정말 생각하면 할 수록 공부는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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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1895년 사이에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전쟁이다. 이 전쟁은 우리나라의 땅인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일본은 1876년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이 자주국임을 인정하고, 다음 해 부산에 정착하며 곡물을 모두 사들이거나 자기 나라의 공산품을 세금을 내지도 않고 수출하여 조선에 진출했다. 

일본 놈들, 정말 나쁜 놈들이다.

1882년 보수적인 유생층과 구식 군인들에 의해 최초의 반일 운동인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일본은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주병권(다른 날의 영토 안에 군대를 머물게하여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 따위를 보호, 경비할 수 있는 권리)을 장악했다. 

주병권이든 뭐는, 이렇게 일본이 우리의 모든 것을 빼는다면 지금 우리는 일본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정말 생각만 해보 끔직하다.

1884년 일본은 김옥균,박영효 등 개화파를 후원,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고, 오히려 청은 우리 나라를 더 심하게 간섭하게 되었다.

청나라든 일본이든 왜 우리나라를 가지고 싶어했을까?

청,일 전쟁의 결과는 일본의 압도적 우위로 진행되었고 약 9개월 만에 일본의 승리로 끌났습니다, 청,일 전쟁의 결과로 맺은 시모노세키 강화 조약에 의해 일본은 타이완과 랴오둥 반도를 식민지로 차지했고, 배상금 2억 냥을 받았습니다. 이후 일본은 조선에서 주도권을 잡고 대륙 침략을 위한 군사력 광활르 위해 더욱 노력했다, 일본으로서는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을 단절하는 동시에 만주로 진출하는 발판까지 마련하녀 획기적인 성과 였다고 할 수 있다.

청,일 전쟁 만약 청나라가 이겼다면 나라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장면이 생겨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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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관심있는아이 2012-07-24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졸려서 ㅠㅠ
 

임칙서는  중국 청나라 정치가. 영국 상인들이 소유한 아편을 몰수해 상자를 불태우고, 아편상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등 강경 수단을 써 아편밀수의 근절을 꾀했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 명을 받고 광시순무에 임명되어 부임 도중 병사했다. 임칙서는 19세기 청나라의 정치가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7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지방관으로서 저장 지방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장쑤, 후베이, 허난을 거치면서 수리 공사와 구제 사업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아편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느낀 여러 대신들은 여러 차례에 도광제에게 상소문을 올려 아편을 엄금 시커 달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도광제는 임칙서를 아편 담당 대신으로 임녕해 광저우로 보냈다. 임칙서는 자신의 책임이 중대하다는 사실을 잘 아로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임칙서는 그의 동생이 아편 중독으로 폐인이 되어서 일찍 죽었기 때문에 아편에 대한 인식이 엄격하였다고 한다. 

임칙서는 동생으로 인한 아픔이 있기 때문에 아편을 증오할 것 같다. 임칙서에게는 꼭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역사는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하나보다 왜냐면 아편전쟁으로 인해서 입는 피해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임칙서는 1838년 아편을 금지시켜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둔 적이 있었다. 그는 광저우로 온 후 외국의 아편 판매상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투쟁을 하였다. 먼저 상황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그 뒤 아편 판매상들에게 아편 전부를 내놓고 영원히 밀수를 안 할 것을 약속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아편을 내놓지 않고 도망갈 준비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임칙서가 강하게 아편 단속을 하자 어쩔 수 없이 아편 모두를 임칙서에게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임칙서는 아편을 증오해서만일까? 권력을 잡으려고 그런 건 아닐까?
임칙서가 2만여 상자의 야편을 모두 없애는 데는 무려 23일아나 걸렸다고 한다. 이 때의 아편 폐기 사건은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임칙서는 이로 인해 중국 근대사에 있어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임칙서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나라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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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독후감을 세계사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사실 이 대혁명의 시간적 배경은 루이 16세 때의 이야기인데 먼저 루이 16세에 대해서 알아보겠다.루이 16세는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왕(재위 1774~1792)이며 오스트리아의 왕녀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하고 루이 15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재정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하였으나 제3신분의 대의원들이 절대왕정에 대신하는 입헌군주제 수립을 추진하던 중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민중의 감시하에 생활하다 처형되었다.

루이 16세와 귀족들이 평민들이 만든 국민 의회를 꺾기 위해 외국 군대를 끌어들인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군중들의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면서 민병대와 시민들은 무기 판매점을 빼앗고 무기 창고를 습격해서 군중들은 소총 28000자루, 대포 5문을 얻게 되었다.

루이 16세는 루이 14세,15세 보단 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혁명을 일으킨 루이 16세 지금으로선 더 잘된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말 루이 16세은 국민들이 불만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무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는 화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민병대와 시민들은 파리의 중심가에 위치한 감옥을 점령하였다. 이 바스티유는 귀족들조차 공포에 떨어 이곳에서 딴 곳으로 옮기거나 건물을 없애 줄 것을 정부에 건의 했을 정도로 무서운 유령의 집이기도 했다. 이들은 감옥을 지키는 수비대와 피나는 전투를 했고 점령되어 불길이 타오랐고 수비대들은 모두 학살되었다. 이렇게 해서 국왕 루이 16세는 혁명을 인정했으나 지방의 농민들의 목숨을 노리는 귀족들이 있다는 소문으로 인해서 습격이 계속되었으나 생각을 빨리 깨우친 젊은 귀족들은 농민들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봉건적 특권을 모두 버릴 것을 다짐했다. 그러자 제 3신분 대표들로 구성된 국민 의회 으원들의 크게 감격했고 의원들은 젊은 귀족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젊은 귀족들은 이같은 발표와 함께 그동안 귀족들만의 특권이었던 사냥권, 강제 사용권 드의 포기를 선언하였다.

나라도 이 시대의 국민이었다면 분노했을 것이었다. 가난해서 살기도 힘들고 또한 특권 같은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국회의원의 특권 면제특권이 매우 부럽다. 왜냐면 벌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거의 3달만에 쓰는 것이라서 시간도 많이 투자되고 매우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한 것치고는 잘한 것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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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7-2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니답다...ㅎㅎ 실력이 안죽은것가튼디??ㅋㅋ
 

이 책은 아주 쉬운 영어책이었고 읽으면서 다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은 내 독해력을 키우는데 기초가 되는 책부터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것을 독후감이라고 봐야 하나......

Jen has a pet hen. The hen is red. Jen has a pen.

Jen은 펫인 암탉이 있다. 그 암탉은 빨간색이다. Jen은 우리가 있다.

Jen's pet hen is in the pen.

Jen의 암탉은 우리에서 산다.

Is the hen sad? Jen pats the hen.

암탉은 슬프나요? Jen은 암탉을 쓰다듬어 주었다.

The hen has an egg. The hen is not sad.

그 암탉은 달걀을 가지고 있다. 그 암탉은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The egg is in the nest. The hen is on the egg.

그 달걀은 둥지 안에 있다. 그 암탉은 달걀 위에 있다.

The egg is wet! Jen pats the egg.

그 달걀이 젖었다! Jen은 달걀을 쓰다듬었다.

The egg is hot! Jen has a fan!

그 달걀은 더웠다! Jen은 부채질을 하였다.

The hen has a nap. Jen has a nap. Is it the end?

그 암탉은 낮잠을 잤다. Jen도 낮잠을 잤다. 그 것을 끝났니?

Jen has two pets. Jen is glad.

Jen은 두 마리의 애완동물이 생겼다. Jen은 기뻐했다.

나는 이 것을 통해 아직도 독해가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더 열심해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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