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칙서는  중국 청나라 정치가. 영국 상인들이 소유한 아편을 몰수해 상자를 불태우고, 아편상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등 강경 수단을 써 아편밀수의 근절을 꾀했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 명을 받고 광시순무에 임명되어 부임 도중 병사했다. 임칙서는 19세기 청나라의 정치가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7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지방관으로서 저장 지방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장쑤, 후베이, 허난을 거치면서 수리 공사와 구제 사업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아편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느낀 여러 대신들은 여러 차례에 도광제에게 상소문을 올려 아편을 엄금 시커 달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도광제는 임칙서를 아편 담당 대신으로 임녕해 광저우로 보냈다. 임칙서는 자신의 책임이 중대하다는 사실을 잘 아로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임칙서는 그의 동생이 아편 중독으로 폐인이 되어서 일찍 죽었기 때문에 아편에 대한 인식이 엄격하였다고 한다. 

임칙서는 동생으로 인한 아픔이 있기 때문에 아편을 증오할 것 같다. 임칙서에게는 꼭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역사는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하나보다 왜냐면 아편전쟁으로 인해서 입는 피해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임칙서는 1838년 아편을 금지시켜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둔 적이 있었다. 그는 광저우로 온 후 외국의 아편 판매상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투쟁을 하였다. 먼저 상황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그 뒤 아편 판매상들에게 아편 전부를 내놓고 영원히 밀수를 안 할 것을 약속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아편을 내놓지 않고 도망갈 준비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임칙서가 강하게 아편 단속을 하자 어쩔 수 없이 아편 모두를 임칙서에게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임칙서는 아편을 증오해서만일까? 권력을 잡으려고 그런 건 아닐까?
임칙서가 2만여 상자의 야편을 모두 없애는 데는 무려 23일아나 걸렸다고 한다. 이 때의 아편 폐기 사건은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임칙서는 이로 인해 중국 근대사에 있어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임칙서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나라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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