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여러 사람들이 만든 거북선...

그러나 거북선은 제일 먼저 조선 3대 왕 태종이 먼저 만들었으나, 나중에 이순신은 그 배를 개량하여서 만든 배가 거북선이다.

또한 거북선은 3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에 1층에는 노를 저는 사람들이다.

아주 큰 배인 만큼 노를 저을 때도 여러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2층 3층은 포가 세워져 있고 각 구멍이 있어서 폭탄을 넣어서 공격을 한다.

이 거북선을 보는데 정말 비밀이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배는 튼튼하지만 매우 크고 무게가 있어서 빨리 나아갔기 때문에 아주 유용한 돌격선이다.

튼튼한 소나무를 사용하여 만든 거북선, 판옥선 등 우리나라 배에 비해 일본의 배는 전나무로 만들어 가볍고 빠른 대신에 튼튼하지 못해 화포를 많이 배치할 수 없어서 화포를 배에 매달아 놓고 쏘아 명중률도 현저히 떨어졌다.

이에 비해, 거북선은 선채가 튼튼했으므로 많은 화포를 배치해 적을 공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노를 이용해 방향전환이 자유러워 실제 전투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 거북선은 쌍돛을 단 것으로도 유명한데 쌍돛을 달면 역풍이 불어와도 배를 쉽게 음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거북의 위는 적군이 절대로 배로 오지 못하게 하고 용머리는 포가 있으므로 멋내기용보다는 훌륭한 공격무기와 방어이다.

또한 거북선은 노를 들 수가 있어서 360도 회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전지 사이로 자유자재로 다니면서 적선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다음 번에 이런 기회가 다시 온다면 이번처럼 제대로 보아서 독후감은 쓰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추수 감사절’은 매년 11월 추수한 뒤 대부분의 개신교에서 감사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일단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신대륙에 정착해서 살던 초기에 농사를 지어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축제를 거행했던 사실에 기안하며, 축제일로 정한 사람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었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큰 축제일인 추수 감사절은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한 필그림 청교도들에게 비롯되었다.

신대륙에서의 정착 생활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던 첫해 겨울에는 추위와 질병, 기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들이 영국에서 가져온 씨앗들은 바위가 많은 미국 땅에 적합하지 않았고 영국에서 쓰던 농사 기술 또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을 보낸 다음 해 봄에 그들은 왐파노아그 족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콩, 보리 등을 재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좋은 수확을 거두었다.

그러자 윌리엄 브래퍼드 식민지 지사는 감사의 날을 정하여서 3일 동안 축제를 벌였다.

첫 수확을 거두게 된 청교도들은 추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매사소이트 인디언 추장을 포함한 위주민들을 손님으로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고 축제를 즐겼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 끼지도 이어져 사람은 추수 감사절에 새 곡물로 만든 음식과 추수 감사절에 관련된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유럽인들은 족통적인 풍습에 따라 풍년 기원제를 드리며, 밭으로 나와 보리밭은 걷기도 했다.

또한 영국에서는 8월 1일 추수한 곡식으로 만든 빵을 나누어 먹으면서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며 이날을 기념했다.

나도 이 추수감사절날에 칠면조 고기 한번 먹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젤란은 포르투갈 북부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모험을 좋아했으면 후에 인류 최초로 지구 일주 항해의 지휘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포르투갈의 하글 귀족 출신으로 포르투갈령 인도총독의 부하로서 동남 아시아에서 일했으며, 아프리카, 인도 항로에도 근무했다.

그러나 모로코에서 현지 무어 인과의 거래가 왕의 의심을 사게 되어 불신을 받자 마젤란은 포르투갈과의 인연을 끊고 에스파냐로 갔다.

그는 아메리카와 자기가 경험한 동남 아시아를 연결할 계획을 세우고는 국왕 카를로스 1세의 특허를 얻어 1519년 8월 10일 몰루카 제도에 갈 계획으로 에스파냐의 세비야를 출발했다.

그는 행선지를 감춘 채 항해하여 12울 중순에 리우데자네이루에 닿았고, 이듬해 1월 라플라타 강에 도착해 이것이 해협이 아니라 강인 것을 확인 했다.

해협을 빠져 나가 새로운 해면으로 나간 일행은 그 것을 파타고니아(마젤란) 해협, 태평양이라고 명명했다.

계속에서 서쪽으로 간 그들은 괌 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의 즈르안 섬과 세부를 거쳐 막탄에 이른 마젤란은 막탄 섬의 토벌을 시작 하였다가 부하 12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가 죽은 지점이 몰루카 제도의 경선을 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세계 일주를 완수했다고 생각한다.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 등의 이름도 이때에 지어진 것이다.

정말 마젤란의 용기, 나도 본받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천동설과 지동설은 지구와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우주관이다.

먼저 천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 둘레를 달, 태양, 5행성이 각기 고유의 길을 따라 공전한다는 지구 중심의 우주관이며, 지동설은 지구가 행성의 하나로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태양 중심의 우주관이다.

직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볼 때 대지(땅)는 고정되어 있고 하늘이 회전한다고 보는 원시인의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이러한 천동설에 철학적 해석과 기하학적 설명이 추가되었고 중세 봉건 시대에는 신학적 권위가 주어졌다.

하지만 포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주장된 이 천동설은 근대 천문학이 발달하지 않는 16세기까지 세계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오늘날 비과학적인 학설임이 입증되었다.

태양계의 운동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이었던 천동설에 대한 비판은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출판한<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시도된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으로부터 가까운 순서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등의 행성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각 행성들은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태양 주위를 원운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때까지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뒷받침할 관측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훗날 제자인 케플러와 갈릴레이에 의해 증명된다.

이렇게 현재는 지동설으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우리가 아직도 천동설을 믿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목에서 나오는 오리엔트가 무엇일까? 함께 배워보자.

오리엔트이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르매니아 소아시아 및 아라비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지망을 가르킨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서는 지중해의 동쪽에 있는 여러나라의 의미로 특히 동부아시아를 가르키는 경우가 많앋, 어원은 라틴어의 오리엔트로 이것은 해돋이 해가 뜨는 방향 동방 드을 뜻하며 로마인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지중해의 동쪽을 가르켜서 오리엔트라고 불렀다.

따라서 유명한 라틴어 속담 빛은 동빙으로 부터 의 동방은 그리스 지바을 가리킨다, 이에 대하여 해가 지는 서방은 옥시텐스 즉 라틴어는 곳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리엔트 지방은 대부분이 볼모의 사막 또는 산악지대로 오늘 날에는 산업과 기수르이 발달이 뒤떨어져 있으나 일찍이 메소포타마아 문명 이집트 문명 등 세계 최고의 고대 문명을 창출하였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이후 오리엔트는 동서 문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으며 7세기부터는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였다. 근대에는 비교적 고난의 길을 걸어왔으나 제 2차 세계 대전 후로는 국제 정치사응로도 독자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오리엔트에 대해서 알 수 있었느데 오리엔트의 역할이 정말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을 말해주었던 것 같다. 문명도 전해 주고 말이다. 오리엔트 정말 고마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