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번영,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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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호가들은 모짜르트와 슈베르트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사실에 두고두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시하곤 하지만, 음악사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엄밀하게 살펴본다면 모짜르트나 슈베르트가 살던 시대에는 성인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36세 정도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의 평균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그들이 특별히 요절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처럼 불과 2~300년 전의 사회나 생활상조차 지금의 기준과는 너무나도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변화와 발전의 속도가 빨라졌지만, 기술의 발전에 근거한 이러한 사회의 문명적, 문화적 발전이 과연 인류를 실질적으로 진보시키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토기를 만들어 잉여 생산물을 저장하고 그것을 서로 물물 교환하면서 경제가 처음 태동한 이래, 원시 공산 사회에서부터 노예제와 농노제, 봉건제를 거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수정 자본주의 등의 단계로 차례로 발전해 나가면서 경제가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급속도로 커져 왔습니다. 하지만 노예제와 봉건제는 물론이고 초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심지어는 현대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도 경제가 과연 인류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는지, 아니면 자본과 물질, 계급의 고착화와 심화를 낳았을 뿐인지에 대한 토론과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생산이냐 분배냐 라는 자본주의 초기부터의 논쟁은 물질적 재화의 생산과 소출이 모든 인류의 필요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준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구촌의 빈익빈부익부는 여전하고, 선진국 내에서조차 부의 양극화는 더 심해져만 가고 있는가 라는 경제와 인류의 진화 속도의 부조화에 대한 의혹과 문제 제기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경제 제도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인지 아니면 인류의 본성이 지닌 한계 때문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마저 필요로 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 악의 번영 ] 은 이러한 인류의 역사에서 경제 발전이 미친 영향들을 거시적으로 조감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다니엘 코엔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석학이자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비교되곤 하는 참여적 성향이 강한 경제 사회학자인데, 그는 이 책에서 인류의 역사와 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에서 중대한 발전과 고비의 순간들이 지닌 의미와 그것이 현재의 경제 상황에 미치는 영향들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분석, 고찰하고,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전지구적인 확산을 통해 전세계가 골고루 부흥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과 해법을 제시합니다.

저자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부터 18세기까지 인류의 경제 발전과 성장은 그 외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생산력과 만족도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충격적인 말로 본론을 시작합니다. 이는 멜서스의 법칙으로 불리는 이론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데, 생활 환경이 나아지면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나고, 인구가 늘어나면 그예 비례하여 생활 환경이 다시 나빠지는 매커니즘을 반복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멜서스의 부정적인 이론을 깨뜨린 것이 바로 산업 혁명이었는데,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킨 산업 혁명으로 서양은 당시까지 훨씬 더 문명이 일찍 개화되고 발전되었던 중국이나 아랍을 결정적으로 능가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산업 혁명으로 국가의 역량이 강화되고 물질적 능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유럽의 각 국가들은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되고 그 결과가 바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여기까지에서 유추된 이론은 높은 경제적, 물질적 성정을 구가해 온 국가나 민족, 문화는 그 정점에서 멜서스의 법칙처럼 몰락의 단초를 스스로 제공하고 붕괴의 길을 걷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2차 대전 이후 30년 간 고성장세를 구가해 온 세계 경제를 다시 침체시킨 것은 70년대의 오일 쇼크였고, 여기에다가 복지 국가 지향의 정책이 유럽의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냉전과 양극 체계의 붕괴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도 역시 생산력이 정점에 도달한 시점에서 금융 공학이라는 위험한 편법으로 성장세를 계속해가는 것처럼 스스로 최면을 걸다가 금융 공황을 자초하게 됩니다. 

 

현재 세계 경제계의 가장 중요한 흐름은 중국과 인도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인데, 저자는 저임금 노동력을 토대로 한 단순 생산업 위주로 급격한 발전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인도 역시 과거의 유럽과 미국처럼 성장의 극한에서 곧바로 몰락의 길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경공업의 재료를 제공해 주는 천연 자원의 급속한 고갈과 중공업 발달의 결과로 인한 심각한 환경 파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도의 발전이 곧바로 몰락과 붕괴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아이러니함 속에서 현재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 세력의 예상되는 파멸을 막기 위해 저자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생산업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산업의 중심을 옮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이버 공간으로의 경제 무대의 이동입니다.
이중 사이버 경제로의 이동은 인구가 늘고 산업이 발전하면 주위 환경이 반비례하여 악화되는 현실의 제반 조건과는 달리, 참여자가 늘고 기술이 발달하면 공간과 자원이 그에 비례하여 무한대로 넓어지는 사이버 공간은 18세기의 산업 혁명처럼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멜서스의 딜렘마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혁신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 코엔의 논지를 되짚어보면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 발전이 그 사회의 번영과 행복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경쟁을 가속시키고 대립을 격화시켜 결국 그 국가와 사회를 몰락과 붕괴의 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묘한 아이러니가 사실임을 저자는 신석기 시대와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부터 현재의 서브프라임 금융 공황까지의 수많은 예를 들어 설득력있게 설파해 나갑니다.
그리고 전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초거대국가인 중국과 인도가 뒤늦게 자본주의 생산 경쟁에 뛰어든 현재 예상되는 전지구적 규모의 생태계와 자원의 파괴와 고갈을 저자는 우리가 주시해야 할 새로운 위기의 서막이라고 경고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임박한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현실의 경제와는 정반대의 특성을 지닌 사이버 공간으로의 이동을 제시합니다. 사실 사이버 공간이라고 하면 마치 SF 소설에서의 가상 현실 같은 느낌을 주지만, 현재 우리 주변의 IT 환경은 이러한 대안이 충분히 되어줄 수 있음을 실증하고 있는 수준에 이미 도달해 있습니다.

인류의 발전사를 기존의 점진적 진화론과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번영과 파국의 야누스적인 매커니즘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예상되는 거대한 파국과 그 대안을 제시한 독특한 관점의 이 책은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안겨줄 것입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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