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중미전쟁>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은 분명히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에서 태동하고 발전되어 온 학문인 만큼 거의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들은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이나 영국의 관점을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자본주의 속국 혹은 주변국에 속하는 아시아나 남미, 아프리카의 경제에 대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침탈은 아무런 지적도 받지않고 정당화되기 일쑤이지요. 이런 상황은 18세기 후반~20세기 중반까지의 식민지 쟁탈전 당시의 상황과 사실상 별 차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속성과 단점들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이론과 의견들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에 있기는 하지만, 20세기 말에 있었던 사회주의 경제권의 도미노 붕괴로 인해 그 주장의 힘이 대부분 쇠퇴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시아 각국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세계 경제에서의 비중도 무시하기 힘든 정도로 높아지면서, 서구나 미국, 중국의 시각이 아닌 아시아의 눈으로 전세계 경제 현실과 기존 경제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고찰하는 경제학가들과 경제학 저술, 이론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세계 경제학계에서 아시아 경제학가들의 비중도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시아 경제학가들의 저술들을 읽어보면 서구 중심의 기존 경제 이론과 현상들이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같은 자본주의 주변국들에 대한 착취와 찬탈에 기반하고 있다는 시각들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책들을 읽을 때마다 우리가 서양의 경제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지나치게 자본주의의 야만적이고 비문명적인 약육강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화려한 성공담으로 가득찬 CEO의 전기들 속에 숨겨져 있는 구조조정 당한 저임금 비정규직들과 부도난 경쟁업체의 근로자들의 비극은 인지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우리도 자본주의의 중심 국가가 아니고 주변부 국가의 힘없는 노동자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경제학의 발원지 격인 케임브리지에서 석박사를 받고 경제학자로 20여년 동안 재직하고 있으며,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가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큰 다행이자 위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자본주의 종주국 영국이나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아닌 자신의 모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들의 현실을 개발경제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경고를 해주며 대안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석학의 존재가 말입니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장하준 교수의 새 저작인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는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의 출간 이후 쏟아졌던 질문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모아 23개의 카테고리로 나눈 후 거기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의 핵심이 세계화와 신경제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었던 만큼 이 책에 실린 23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도 신경제학과 세계화가 퍼트린 근거없는 신화와 주장들에 대한 철저한 고찰과 날카로운 반론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레이건-부시 시대의 보수반동의 근거를 제공한 프리드먼과 시카고 경제학파가 주창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주주이익 우선론과 무조건적인 규제타파가 CEO의 천문학적인 보수와 거대기업의 독점과 비호, 극단화된 빈익빈부익부를 낳았을 뿐이고,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과 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착취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호감을 가졌던 것은 현재 전지구적인 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경제 현상들을 상식적인 비유와 설명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대로 된 경제는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당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제대로 된 경제학과 경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인들 스스로도 이해하지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자랑인 ‘금융공학’과 명확하게 비교되는 것이지요.

장하준 교수가 이처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경제학은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말로 포장하고 숨겨야 할 만큼 ‘소수의 가진 자와 체제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바로 ‘사람들의 삶을 보다 나아지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 경제학의 목적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글과 주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 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장하준 교수는 이 책을 읽고나면 저절로 공감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세계인들 모두가 골고루 행복해지는 더 나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행점과 가능성에 대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가 지구상의 가장 못사는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로 변신한 데에 대해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런 관점에서 국민 모두를 골고루 잘살게 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자로써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국민들의 노력과 땀의 댓가를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데에만 쓰면서 국민들을 기만하고 분열시키는 무리들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장하준 교수의 영어 인터뷰 동영상을 올려놓고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라는 사람의 영어 발음이 이렇게 후지다고 조롱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영국 상류층의 영어 발음이기에 ‘너무 우아한 영국 지식인층의 영어 발음인데요? 혹시 미국식 영어 발음에 너무 익숙하신 것이 아닌가요?’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영어도 미국식 영국식이 있나요?’라는 황당한 댓글이 처음 글을 올린 사람의 아이디로 올라온 것을 보고 기가막힌 적이 있습니다. 저명한 교수의 영어 발음을 조롱할 정도로 영어에 자신있는 사람이 영어가 ‘영국의 언어’라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이것이 바로 ‘세계화’라는 허상을 물들어 ‘미국화’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의 슬픈 자화상인 것입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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