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경제 - 시대의 지성 13인이 탐욕의 시대를 고발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 마이클 루이스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경제학이 이렇게 복잡한 학문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원래는 단순했지만 복잡한 인간사회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해서일까? 경제학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추구하고자했던 인류의 행복과 번영의 추구와는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간사회를 코너로 몰고 있다. 이제 경제학을 금융학의 대부로 불러서는 곤란할 것 같다. 오히려 정치나 사회과학, 심지어는 철학과 심리학을 겸비한 초대형 학문으로 평가해야 그 전모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순이다. 누가 이런 학문의 실질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경제학의 그릇된 출발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서브프라임 사태 3년, 세계 금융가는 다시 한 번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번의 위기 역시 노동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위기의 본질은 일반 대중을 향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낙관론이 사라지고 비관론이 자리를 채웠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국채가격은 이상이 없다며 이번 위기가 단발성에 그칠 것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이번 위기를 조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우의 폭락과 함께 시작된 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급격한 실물경기의 하락에 따른 불안감의 확대다. 더불어 팽창적인 양적완화가 세계금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달러를 무제한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의 한계를 연상시키는 이번 위기의 본질은 빚 위에 놓인 자본주의의 허상이다.

유럽발 위기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과도한 부채문제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빚을 끌어다 사용하고 과도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예상했던 위기의 범위가 갑자기 늘어난 것일까? 동아시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해지펀드들의 장난일까?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이번의 위기는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이러한 위기를 좌초한 근원적인 원인에 대해선 일말의 고찰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최근에 1000조가 넘는 가계부채 때문에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빚을 지려는 가게, 위험을 간파한 금융당국, 설왕설래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느슨한 금융정책과 무분별한 대출은 자본시장의 불안을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

경제의 비상을 꿈꾸는 자들은 눈이 멀어버렸다. 10년은커녕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탐욕에 눈이 멀어버렸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관론이 심상치 않다. 특별한 대안이 없음에도 자본주의를 선택한 인류의 목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석학들은 무분별하게 커져가는 경제학의 효용성에 제동을 걸고 있다. 경제학 역시 역사의 한 부분일 뿐 그 이상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서브프라임은 다수의 묵인(?)하에 직접적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누구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금융장세를 깰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눈먼 자들의 경제’는 늦게나마 위기의 원인을 파악해보고 반복되는 위기의 중심은 무엇인지, 최근에 일어난 금융사건을 중심으로 소설보다 재미있게 금융이야기를 전개한다. 책은 총 4부로 베어스턴스의 몰락을 필두로 숨겨진 월스트리트의 내막을 파헤치는 1부와 핸리 폴슨과 어리석은 자본주의자들이 펼치는 엉뚱한 구제금융을 다룬 2부, 그리고 일반인들이 알 수 없었던 아이슬란드 부도와 하버드대의 재정위기를 다룬 3부, 폰지사기로 금융사기의 절정을 다룬 메이도프의 일대기를 4부로 엮으며 금융자본주의가 전달하는 위엄과 허상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스티글리츠와 니얼 퍼거슨등 당대의 석학들과 루이스를 비롯한 기자들이 중심이다.

월스트리트와 워싱턴DC의 넘치는 구제금융, 월가의 천문학적인 보너스, AIGFP의 신용부도스와프 판매등은 워낙 유명하기에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하버드대학의 재정논란은 상당히 뜻밖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파생상품의 덧에 걸려 커피한잔 공짜로 마시지 못하고 있다는 우스개스러운 이야기는 아무리 지성인인들, 자본의 탐욕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겨둔다. 그나마 천문학적인 기부가 가능하기에 하버드는 여전히 최고의 학부를 유지하고 있다. 메이도프 연대기는 한편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속이려면 자식까지 속여라.’ 이 역시 금융위기가 발발했기에 포착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문제는 가치의 변화가 일방적으로 흐른다는데 있다. 특히 돈에 대한 가치는 최우선적이며 최고의 우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들도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결국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경제학의 명제, 경제학은 눈이 멀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일순간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합리적이라는 시장의 논리도 지극히 이성적이라는 인간의 탐욕도 위기 앞에선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기의 금융은 인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 것인가? 금융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헤친 ‘눈 먼자들의 경제’ 그 르포르타주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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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최근 그리스발 위기를 바라볼때 언제든 예기치 않는 위기가 근접해 올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미국, 포루투갈, 이탈리아, 사실상 국가부도한 말이 어울리지 않은 국가들이지만 이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은 과도한 빚에 기반한 소비의 극대화였습니다. 빚의 역사적 자료를 통해 혼돈으로 치닿고 있는 국가부도의 현실이 무척 공감이 갑니다.

 

 

 

 

 

 

 

 현대인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틀에 묶여 다른 것을 상상항 염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위기 덕분에 그나마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이 기지개를 켜는게 아는가 생각됩니다. 급변하는 하는 정세를 고찰하고 인간발전을 위한 새로운 이념을 생각하는데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중국만큼 국부에 관심이 많은 국가도 없는 것 같습니다. 향후 세계시장 재패를 꿈꾸는 중국의 국부전쟁, 항상 진행형이라고만 생각했느데 어느덧 멀찌감치 앞서 간다는 생각입니다. 중국경제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위 3권은 아직 읽지 않아서 추천했구요, 이미 읽은 책들 중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은

 

 

바로 눈먼자들의 경제입니다. 다소 진부한(?)감은 있지만 수그러들지 않는 경제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또 한권은, 

  

 

 

 

 

불합리한 지구인입니다. 

행동경제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기에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심리학을 통해 풀어가는 것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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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변이 부담스러웠을까, 효용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일까?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대중들로서는 반겨야할 일이지만 과연 부자나 기업들이 순순히 정부의 부탁(?)을 들어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래퍼곡선을 창안한 아서래퍼는 증세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한다는 위린 버핏을 위선자라 언급하며 두루뭉술한 정부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래퍼의 이론은 돈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금이 줄어든다고 부자나 기업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간교하게 세금을 줄일 방법을 강구할 것이며 이는 정부가 목적한 증세의 기대효과와는 달리 경기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증세는 감세만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래퍼는 버핏이 말로만 증세를 주장하지 말고 절대적인 세금기준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버핏의 위선적인 선행(?)을 꼬집는다. 워린버핏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제정책이 그만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비는 경제성장의 주춧돌이다. 올바른 소비는 저축과 더불어 가계와 기업에 큰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무분별한 소비는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소비는 인간의 한계점을 벗어나기 일쑤다. 흔히 탐욕이라 불리는 인간의 욕망은 항상 거대한 거품을 양산해왔다. 자유개발 경제체재 하에서의 소비는 성장의 견인 돌로 미덕이란 칭호까지 받아왔다. 하지만 과도한 소비를 떠받들고 있었던 건 부채뿐이었다. 제조업 지수의 하락, 실업률 상승, 소비지수 하락, 의심하지 않아도 미국경제의 침체는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닐까? 오히려 신용사회를 부추기며 과도한 부채를 권장한 정부와 기업의 입장은 더욱 애매모호하다.

성장 없는 경제는 죽은 것일까? 경제의 근원적인 목적은 오로지 성장에 대한 환상과 이윤추구뿐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파생금융상품의 난립이 성장에 그토록 필요한 도구였을까? 제조업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금융장세는 세계경제의 파이를 엄청나게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의 든든한 배경을 완성시켜준 것은 소비를 통한 탐욕이었다. FRB와 미국정부는 무제한적으로 달러를 찍어 시장에 풀면 경기가 저절로 회복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토록 믿었던 시장의 역할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편협한 믿음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것이란 믿음 못지않게 미국인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상황을 일거에 무너뜨린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학의 배신’은 우리 믿음에 대한 배신이다. 실패를 거듭한다고 경제시스템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며 화폐경제의 불합리성 때문에 돌연 물물교환의 시대로 회귀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우선적으로 경제학적 명제를 새롭게 고찰할 필요를 느낀다. 그토록 믿었던 경제학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합리적인 시장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해주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상황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빈과 부의 격차는 더욱 격심해지고 사회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우린 인간이 아닌 인격체로서 자본이라는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 시장자본주의는 대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특권층을 위한 통제 권력으로 바뀌어버렸다. 통제적이고 일률적인 시스템 하에서 마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은 역사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의 배신은 통치자가 되어버린 시장의 비합리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한 이면에 감추어진 기업들의 반사회적 인격이 어떻게 공공재의 기능을 무너뜨리는지를 기업의 윤리관(?)과 대중의 무관심을 통해 직접적으로 고찰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경제학은 대중의 방관위에서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의 전환을 요구한다. 시장이나 돈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경제의 참다운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이 오직 이윤과 편익에 중심을 두었다면 이젠 경제학적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단순히 양적팽창으로 풀려는 것 보단 대중의 이해와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경제학이 탄생할 주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자신이 보고 가는 길은 정상이라 말하지만 대중이 보기에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경제학의 허상은 자신의 믿음만이 옳다고 우기는 ‘안톤의 실명’과 흡사하다. 대중의 눈을 무시하고 소수의 판단이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정책적 논리는 그들 앞에 놓인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오직 경제학은 참다운 정치 기반에서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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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퍼펙트 스톰이 닥칠 것이다.’ 대표적인 비관론자 루비니 교수는 미국재정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경고한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일본의 장기침체, 무엇보다도 EU의 재정혼란은 루비니의 경고를 더욱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 재무장관 루빈은 루비니의 경고를 한방에 일축한다. 그는 대표적인 회전문 인사로 미국재정을 좌우해온 인물이다. 재정에 관한한 루빈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지만 세계 언론은 루비니의 경고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 재정정책은 루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무엇이 우리들에게 좋은 것이 될지 알순없지만 ‘블랙스완’ 이라 일컫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언제든 우릴 파국으로 몰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혁명적이라 할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이제 세계는 평평해진 단계를 넘어서 운명의 공동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섣부른 판단을 해본다. 과연 패권국 미국은 다시 한 번 황소처럼 세계를 리드해 갈 수 있을까? 마치 무주공산인 듯한 세계정세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만리장성에 갇혀있는 듯하다. 세계경제는 중국만을 바라보고 있다. 성장과 부패라는 극과극의 모습을 지닌 중국은 마치 블랙홀처럼 달러와 원자재를 흡수한다. 이미 제조업과 금융서비스업으로 재미를 본 미국처럼 그들도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엄청난 도박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담비사 모요는 ‘미국의 파산하는 날’을 통해 거시경제학을 중심으로 미국이 어떻게 쓰러져가고 있는지를 꾸밈없이 서술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그녀는 미국의 정체성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이제 그 과도한 탐욕과 가치관이 스스로를 어떻게 파산시키고 있는지 역사적 자료를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담비사는 자본주의로서 미국은 파산을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섬뜩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자본의 분배’ 에 관한 그녀의 이론은 잘못된 미국의 재정정책을 과감히 깨부순다. 자본이 고유의 목적인 생산적인 투자를 벗어나 주택과 같은 수익성이 낮은 ‘편의적 자산’으로 대체되었고 가치가 없는 주택가격을 올리기 위해 무모하게 펼친 금융정책이 결국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주택을 부양하기위해 특별한 금융정책을 시도했다. 저금리, 무분별한 대출, 신용카드등을 이용한 무제한적인 ‘빚’을 양산한 것이다. 빚의 마지막은 어디일까? 금융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던 파생상품은 빚의 마지막을 태우기 위한 불꽃이었을까? 무제한적인 달러공급은 미국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뇌관이다. 중국이 이타적이라 미국을 위해 달러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중국 역시 생산품을 판매하기위한 공급처가 필요할 것이며 이는 미국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는데 더할나위없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되지못할 치킨게임이 될 확률이 크다. 최소한 그들은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하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다. 드러나진 않았어도 그들의 성공이 ‘전쟁’과 관계가 없다고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담비요는 전쟁으로 부유해진 국가가 힘을 잃어간다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패권국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이었다. 당시 미국을 일으켰던 주인공은 ‘제조업’이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의 위상은 영원히 지속될 아메리카 드림을 완성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추구해왔던 세계화는 일순간 세계를 장악할 순 있었지만 신흥국가들의 성장은 더 이상 미국의 독주와 독단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2008년, 세계는 분명하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담비사는 경제학자다. 그녀의 이론은 경제학이 추구하는 시장의 원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시장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후 미국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통계수치는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정계를 움직이고 있는 관료들의 목소리가 과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다. 담비요의 도전을 보면서 우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미국에 좋은 것이면 한국에도 좋은 것일까? 미국정책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도 안타깝지만 이를 무분별하게 따라하는 풍토는 더욱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미국은 진정 파산을 서두르고 있는 것일까? G2를 중심으로 한 담비요의 경제정책, 미국 파산시나리오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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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모든 것의 가격 -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격의 미스터리!
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손민중.김홍래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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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오른 게 없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오일쇼크의 재림인가?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식량쇼크’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경고한다. 식량쇼크는 오일쇼크를 능가하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생존기반을 무너뜨릴 만큼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프랑스등 식량 자급률이 높은 국가들은 서둘러 곡물 수출을 중단하거나 줄이고 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개도국의 소비와 인구증가는 식량문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 G20, 다보스 포럼등 세계 국제회의나 기구들은 식량위기를 최대 주요논제로 다룰 예정이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만큼 성숙했다고? 시장의 원리에 인류의 미래를 맡긴다고? 경제학은 원리부터 다시 써야할 판이다.

잠잠했던 물가가 갑자기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살인적인 물가는 이미 유럽과 미국에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물가를 잡지 못한 국가나 도시는 심각한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물가는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인간의 모든 상황이 가격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간은 가격의 지배권 하에서 가격의 통제를 받고 가격에 의한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적으로 가격은 인간의 우위에 있다. 우린 물가를 이해하기 전에 가격정책이 실패했을 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가격은 인간을 위한 대체수단에 불과했지만 다른 많은 기재들처럼 인간사회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원래부터 가격이 가치를 산출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시대 이래 수백 년 동안 가격에 대한 가치 분석은 도덕에 대한 연구를 출발점으로 시작했다. 당시 가격은 신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교회의 출현과 원죄개념은 가격의 유동성을 더욱 확장시켜 놓았다. 사물은 물론 인간의 죄에도 가격을 매기는 면죄부를 시판했기 때문이다. 가격이 노동의 가치로 환산이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마르크스는 가격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가격혁명을 일으킨다. 하지만 19세기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생각해왔던 것과는 달리 사물은 절대적이거나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대적 가격과 상대적 가치의 주관적인 성질이 새롭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이후 가격은 빠르게 세상을 점령해나가며 스스로 지위를 획득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격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스스로에게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말하지만 911사태 후 희생자보상기금을 통한 희생자의 가격은 우리가 생각과는 다른 가격의 이중성을 알 수 있다. 희생자 가족은 경제적 손실과 비경제적 손실에 따라 보상금액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손실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짓느냐는 부분에서 극렬한 논쟁을 벌였고 결국 부유한 몇몇은 소송을 통해 더욱 많은 보상금을 가져갔다고 한다. 인간의 연령, 임금, 사회적 지위, 가족의 수를 일률적으로 보상금액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보상금액을 넘을 수 없다는 논지는 인간의 가격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의 가격’은 우리의 삶이 가격에 의해 통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물이나 노동의 가격만이 물가의 지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린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격으로 정해 마케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기업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더불어 여성의 가격(가치)는 빠르게 증가한다. 문화의 발달은 콘텐츠의 확보를 증가시켜 새로운 가격을 창출시킨다. 또한 당신이 믿는 신앙에 대한 가격은 얼마인가? 행복은 돈과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부유한 사람일수록 행복하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많다. 가격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모든 을 통제한다. 가치가 높을수록, 수요가 많을수록, 희소성이 강할수록 가격은 강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나의 가치는 얼마일까? 지금가지 살아온 경력과 미래의 잠재력을 통해 예상되는 가격을 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이 가격정책을 실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개인도 가격정책을 실패한다면 참담한 시기를 보내야할 것이다. 세상은 평평해졌다고 자랑하지만 인간은 너무 쉽게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가치 대체재를 우상화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린 가격의 통제 하에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며 살아간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의 가격을 더욱 높일 수단을 강구한다. 결국 가격은 원시족을 이끌었던 황금동상과 같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자본주의가 득세할수록 가격은 더욱 더욱 우리의 삶을 옥죌 것이다.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가격의 모든 것, 에두아르도 포터의 The Price of Everything 을 적극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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