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한 소설, 작가를 만났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롬비아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란 남자가 사촌인 '우르슬라'와 결혼을 하면서, 근친상간은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충고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우르슬라'가 정조대 비슷한 것을 차고 시집을 오게 되어 한동안 첫날밤을 치르지 못한 채 예민한 상태로 닭싸움에 나선 '호세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그의 그러한 처지를 놀려댄 사람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그 원혼이 주변을 계속 떠돌자 아내와 21명의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산맥을 넘어 '마콘도'라는 마을에 정착해서 살게 된다.

그 마을에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리더가 되어 사람들과 함께 도와가며 사는데 가끔씩 들리는 집시들에 의해 서구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놀라고 당황하며 연구하고 미친 사람처럼 몰두해간다.

그들 부부는 장남 '호세 아르카디오'와 차남 '아우렐리아노' 그리고 딸 '아마란타'를 낳는다. 그러면서 6대의 자손들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에 걸쳐 '마콘도'라는 마을과 함께 흥망성쇠를 이어간다.

부부의 밑에서 태어난 자손들 중 장남 계열의 이름은 모두 '아르카디오', 차남 계열의 이름은 모두 '아우렐리아노'이다. 그리고 딸들은 죽은 며느리의 이름을 손녀에게 주기도 하고 5대쯤 가서 '우르슬라'란 할머니 이름과 그 할머니의 딸 '아마란타'란 이름을 섞어서 짓기도 한다. 암튼 첫 페이지의 가계도를 열심히 봐가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아들들과 사랑하는 창녀들이 있고, 부인도 있고, 그들의 딸을 사랑하나 이루어질 수없이 죽어 버리는 연인들이 있고, 평생 결혼을 안 하고 사는 딸과, 죽은 남편을 못 잊어 은둔하면서 잊혀지는 여인의 이야기들이 있다.

아들들은 성장하면서 부인을 얻기 전에 몸을 파는 여인들에게 먼저 손을 뻗치게 되고, 대를 이어 하나같이 .. 어떤 창녀는 큰아들과의 관계에서 아들을 낳아주고, 작은 아들과의 관계에서도 아들을 낳아준다.

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그 외 더 황당한 사건들이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밀도 있게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음~~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니깐.. 좀 더 보태자면 비가 4년이 넘도록 내리는 일, 사랑하는 남자가 오면 나비들이 함께 등장하는 일, 140년이 넘도록 목숨을 유지하는 사람들,, 너무도 아름다운 딸은 자연 그대로 살다가 양탄자를 타고 하늘로 사라지고.. 기억력을 물려받아서 조상의 기억을 공유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를 1박2일에 걸쳐 하고,, 며칠씩 잠을 못자서 기억들을 잃어버리고..등등

'아르카디오' 계열의 아들들과 '아우렐리아노' 계열의 아들들의 기질을 나누어 설명하는 해설도 있으나 중간에 쌍둥이의 탄생으로 한번 섞이고 1대 '호세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서구 문물 연구를 위해 만들었던 연구실을 중심으로 틀어박혀서 무언가를 구상하고 만들고.. 이성의 눈 뜸을 창녀들을 통해 성장하고, 결혼하고 자손을 낳고, 전쟁을 하고, 집시들을 따라나섰다가 온몸에 문신을 하고 돌아오기도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정부를 만들기도 하고, 닭싸움도 하고...

'우르슬라'라는 1대 조의 여인은 동물 과자를 만들어 돈을 벌고, 흙을 먹는 '레베카'는 남편이 죽고 난 후 은둔생활을 하고, '필라르'라는 몸을 파는 여인은 이 집안의 점을 치면서 아들들과 관계를 맺고 성장하는 아들마다 그녀를 찾게 되는데.., '레메디오스'는 어린 나이에 이 집안에 시집을 왔다가 죽어버리고, 이 '레메디오스'와 '레베카'의 남편이 죽은 것에는 한때 '레베카'의 절친이었던 '우르슬라'의 딸 '아마란타'의 한 남자를 둘러싼 질투와 복수가 원인이 되기도 하고 그리고 '아마란타'는 평생 독신으로 살고, 절세미인 미녀 '레메디오스'는 너무 아름답고 신비한 나머지 많은 남자들을 죽게 만들다 결국 승천(?)을 하게 된다.

후손 중 쌍둥이의 둘째로 태어난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왕녀가 되고자 했던 조화 만들던 '페르난다'와 결혼을 해서 세 자녀를 얻는데 그에겐 정부가 따로 있었다. 그의 장남 '호세 아르카디오'는 신부가 되어 교황이 되라는 할머니의 바람에 따라 유학을 갔고, 딸 '레메'는 불장난 끝에 아들(아우렐리아노)을 낳았으나 그 아들을 엄마 '페르난다'가 감금시키고 쉬쉬하면서 키우게 된다. 그리고 늦둥이 딸 '아마란타 우르슬라'는 '아우렐리아노'와 함께 장난을 치며 성장하지만 교육을 받으러 외국으로 떠나게 된다.

랜 비와 함께 조상들의 죽음, 경제적인 몰락, '우르슬라'가 지었던 대저택이 조금씩 부서져 가는 가운데 사생아 '아우렐리아노'는 혼자 연구실에서 집시 '멜키아데스'의 원고(양피지 원고)를 해독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리고 신학교에 다니던 '호세 아르카디오'가 돌아오고, 창녀들을 통해 이성에 눈뜨고 타락의 길을 걷다가 죽게 되고, 떠났던 '아마란타 우르슬라'는 늙은 남편과 함께 '마콘도'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생아 '아우렐리아노'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어렴풋이 남매인 줄 추측했던 '아마란타 우르슬라'에게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되어 그녀를 유혹한다. 둘은 욕정에 빠지고 임신하고 불안하게 출산을 하고 난 후 그녀가 죽고 그에게 남은 것은 돼지꼬리가 달린 아들이었다.

침내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원고를 모두 해석해 낸 '아우렐리아노'는 '아마란타 우르슬라'가 누나가 아닌 이모였음을 알았고, 이원고를 해독해 내는 순간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고, 거기에 적힌 글들조차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고 100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예언처럼 그 자신도 그 방에서 결코 나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책의 100년에 걸친 자손들은 모두 고독하다. 100년을 넘게 산 사람들도 고독하다. 고독이란 단어가 읽는 내내 거룩하게 까지 느껴졌다. 어치피 많은 형제, 많은 친구, 많은 사람들에 둘러 쌓여있더라도 결국은 혼자서 가는 존재가 아니던가? 하며..

소설에 등장하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마술적인 요소들 외에 사실적(리얼리즘)인 요소인 '천일 전쟁'과 '바나나 농장 학살 사건'을 통해 기자였던 '마르케스'의 장치들이 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진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길지않은 소설을 보름씩 걸려 읽어야만 했던 몇주의 삶을 반성하며.

 

그래서 그들은 함께 지난날의 광폭한 탕진 생활과 으리으리했던 부유함과 걷잡을 수 없었던 음탕한 삶이 결국은 역겨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고독을 나눌 수 있는 천국을 찾기 위해서 인생을 그토록 많이 낭비했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슬퍼했다. 3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그 이웃들이 저마다 감동해 마지않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책 읽는 중간중간 너무나 잘 지어진 제목임을 인정해야 했던.. 나의 영혼조차 따뜻해지길 바랐고 읽는 내내 따뜻해짐을 느꼈었다.
    
주인공 나는 인디언 체로키족의 후예인 다섯 살이 채 안 된 소년이다. 아빠와 엄마를 1년 간격으로 사별하고는 친척들 중에 역시나 체로키 인디언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숲속에서 살게 된다.
    
너무 이른 나이 슬픔이 뭔지도 모르는 천진한 소년은 부모의 부재를 숲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으로 채워간다. 
    
70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아름답게 사랑하고 그들의 사랑 표현 방식이 낯선 인디언들의 생활방식과 어우러져 인상 깊다. 나이 든 노부부의 삶, 무엇보다도 예의를 중요시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필요한 것 이상을 취하지 않는 욕심 없음과 어린 손자에게 체험으로 가르치는 지혜에 놀란다. 대안교육과 홈스쿨링의 시작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숲에서 살며 배우는 것들, 계절의 변화와 숲의 변화 그리고 개들과의 우정과 교감이 너무 짠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로, 대공황을 겪는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괜히 가난하다. 그것도 몹시.. 그리고 소년과 할아버지가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면서 위스키를 팔고 사 오는 생필품과 까막눈 할아버지이지만 할머니와 손자를 위해 빌려 오는 책들이 있는 마을 '개척촌'은 온갖 이웃의 안부와 정보를 얻는 곳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개척되어진, 개척되어야 하는 장소인 것이다.
    
제로 1838년에서 1839년 동안 1만 3천여 명의 체로키족 인디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는데 그 여정에서 4천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1861년에서 1865년 남북전쟁 때는 남부연합에 인디언 부족들을 가담시켰고 북부의 승리로 인해 인디언 부족들의 조약상 권리를 대부분 빼앗겼다고 한다. 그 시대와 함께 한 할머니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 고아가 된 손자를 데리고 버스를 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버스기사에게 모욕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문명에 익숙하지 않으나 문명을 거부할 수 없고 차별로 인해 억울하고 고되게 살지만 정작 이들 조부모는 매우 낭만적이고 겸손하고 감사하며 겸허한 삶을 살아간다. 핍박당하는 삶을 그들 방식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그들만의 대화가 너무 아름답고 숭고하다 못해 눈물이 나기도 한다.
    
과 종교와 각종 제도들은 사람이 사는 질서와 정의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인디언의 후예들에겐 차별이고 결코 향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문명이란 것이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문명에 부합된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쓰레기 문제니 환경 문제 등에 보태온 것들에 대해 반성되기도 한다.
    
자연과 그들의 삶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진솔하고 아름다우며 스토리 또한 기교도 없고 담백하며 많은 울림을 준다. 성장 소설, 에세이 같은 소설이라 하겠다.

로 존과 할아버지의 승화된 분노가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그들의 서로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아름답다. ‘kin’이라는 단어는 ‘이해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래서 ‘친척’이란 뜻도 되는데 이들 인디언들에게는 이 단어가 ‘사랑’ 이라고 쓰여진다. 즉 사랑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이해를 기반하지 않는 사랑은 쉽게 부서져 버린다는 뜻도 되겠다. 그들이 고백하는 사랑한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 한다. 그리고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가지려 할 때도 이 마음을 써야 한다. 자기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 P114

영혼의 마음이 자꾸자꾸 커지고 튼튼해지면 결국에는 지나온 모든 전생의 삶들이 보이고 더 이상 육신의 죽음을 겪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새롭게 탄생하는 봄이 되면 흔들림과 소란이 일어난다. 영혼이 다시 한 번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에 부는 매서운 바람은 아기가 피와 고통 속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탄생을 위한 시련이다. p116

우리는 그 남은 시간 동안 충실히 살았다. 우리는 가을이면 가장 새빨간 단풍잎을 찾아냈고, 또 봄이면 가장 푸른 제비꽃을 가리키며 서로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느낌을 함께 맛보고 서로 나누었던 것이다. p 3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가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실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작품을 쓰겠다"고 천명한 미국의 국민시인 워즈워드 이후 일상어로 작품을 쓰는데 성공한 이백 년 만의 작가로 기록되고 있다 한다. 

총 12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매우 단순하고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다. 내용 또한 이게 뭐지? 하는 끝맺음이 아쉬운 작품도 있고, 은근 여운이 남는 작품도 있다.

로그 이웃들의 리뷰를 보다가 발견하게 된 이 책 대성당은, 이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미국의 소외된 계층 사람들의 삶인지, 대부분 이러한지는 모르겠으나... 알코올 중독에 관한, 극복하려고 애쓰기도 하나 쉽지 않은 사람들, 그로 인한 가정의 파탄, 혹은 경제적인 성취가 힘든 사람들의 노고, 가족이라는 가볍고도 무거운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 이별, 상처, 그리고 그런 일상 속에서의 외도에 관한 이야기들,,, 짧지만, 아쉽기도 하고, 뭔가 강렬하고 싱겁게 깔끔한 그런 느낌들이 든다. 

화려한 묘사도, 멋진 은유도 없지만, 사실적이고 간결한 문체가 술술 잘 읽힌다. 남성작가 특유의 소설이라 하겠다.

마지막 대성당은 오랜 시간 동안 맹인의 남자 사람 친구를 둔 아내와 함께 사는 다소 단순하고 이기적인 나에게 자기의 아내와 사별한 그 맹인이 내 아내를 보러 우리 집에 방문하게 되는데, 맹인과 한 번도 친구해본 적이 없고, 또 실상 친구도 거의 없는 나는 그의 방문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고 ..

담 투로 어색함을 모면해보고자 하지만 그 어리석은 말투는 아내에게 따가운 눈초리만 받게 된다. 다정하고, 따스한 아내와 그녀의 맹인 친구와의 대화를 듣다가 마리화나를 함께 피운 뒤 잠든 아내를 두고 컬러 TV를 시청하게 된다. 

나는 맹인에게 화면에 보여지는 것들을 말로 묘사해주다가 그때 마침 각 나라의 대성당이 나오는  장면을 설명하는데 규모나, 모양새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나의  설명에 한계를 느끼고 그에게 고백하게 된다. 별거 아니라며 맹인은 나의 손에 손을 얹고는 종이에 펜을 들고 대성당의 모습을 그리게 한다.

송은 끝났으나  그의 이끌림대로 눈을 감고는 나머지(성당에 모여든 사람들)를 채워 넣게 된다. 나는 눈 감고 그린 내 그림을 눈을 뜨고 확인해보라는 그의 재촉에도 계속 눈을 감고는 맹인을 만나기 전,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기 전과 그 이후가 같은 장소(우리 집)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새로운 장소에 있음을, 새로운 경험을 통해 달라진 느낌을 강렬하게 인지하며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라고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테네시 윌리엄스'는 '유진오닐'을 잇는 미국의 극작가로 이 작품은 처음부터 희곡으로 씌여졌다 한다. 영화로도 나왔고, 선정성 때문에 공연 초기엔 비판도 많았다고 한다.  

 

'블랑시'는 미국 남부 지방의 귀족 출신으로 고등학교의 영어교사였다. 집안 소유의 '벨 리브'라고 하는 농장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갈 곳이 없어진 그녀는 빈민가 뉴올리언스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동생 '스텔라'와 그녀의 남편 '스탠리'가 사는 곳으로 오게 된다.  

 

'스텔라'의 남편 '스텐리'는 미군 특무상사였던, 폴란드 출신의 남자로 포커를 치며, 볼링을 즐기고 원색의 의상을 입는 강인하고 무식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모든 근원이 性 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자유분방한 사내이다. '스텔라'에게 자기 집안의 우아함을 강조하고 '스텐리'를 무시하던 '블랑시'는 '스텐리'의 친구 '미치'에게 거짓과 속임수로 접근했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아낸 '스텐리'로 인해 '미치'에게 거부당한다.  

 

콜라에 술을 타서 먹는 등 알코올 의존도가 높으면서도 안 마신 척, 못 마시는 척하고, 귀부인인 척하지만 몹시 예민하고 불안한 '블랑시'는 소녀 시절 결혼했던 소년의 동성애 장면을 보았는데, 그녀에게 들킨 어린 남편이 권총 자살을 한 이후로 아무에게나 몸을 주는 창녀처럼 살게 된다. 그리고 17세 소년과의 정사가 밝혀지면서 학교에서의 교사직도 박탈당한다.  

 

이상 그 마을에 살수 없게 되어 동생을 찾아 빈민가로 오지만, 현실과 과거를 헤매고, 공상을 하며 환상 속에서 산다. 사람들에게 수없이 거짓을 말하지만, 거짓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는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는데, 뻔한 그녀의 거짓말과 허영과 환상이 매우 애절하다. 실제로 연극에서 그녀의 대사(거짓말을 하는)가 그렇게 시적이고 상징적이라 하는데 번역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아쉬울 따름이며 '말론 브란도'(누군지 잘 모름)와 '비비안 리' 주연의 영화나 찾아봐야겠다고 ..  

 

실제 '테네시 윌리엄스'는 미국의 어느 호텔 에서 병 마개가 목에 걸린 체 사망했다고 하는데, 그의 인생이 그가 창조한 극 중의 캐릭터들처럼 극적이었다고 한다.  

 

버지는 신발을 팔러 다니는 외판원으로 술과 여행과 포커를 즐기는 쾌활한 사람이었고(스탠리 같은), 어머니는 목사의 딸로 히스테리 일보 직전의 예민한 사람으로, 모계에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누나(블랑시 같은)가  결국 정신 분열증으로 평생 금치산자로 살아 갔다고 하는데 한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사회적 이슈가 바뀌는 즈음에는 관심을 못 받고, 술과 마약에 탐닉하고 동성애자(어린 블랑시의 남편 같은)로 살았다고 한다. 

 

※'미치'를 내숭으로 꼬시는 '블랑시'는 자신의 늙고 초라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저녁에만 만나고 조명을 어둡게 감싼 실내에서만 만난다. '스탠리'가 주장하는 나폴레옹 법전엔 아내의 재산에 대한 권리가 남편에게도 있다며 벨리브를 잃어버린 '블랑시'의 과거 행적을 쫓게 되면서 극이 전개된다.

 


전혀 강하거나 자립적이지 못했어. 사람이 여리면, 여린 사람들은 빛을 발하거나 반짝거려야만 해. 나비 날개는 부드러운 색을 띠어야만 하고 불빛 위에 종이 갓을 씌워야만 해.... 여린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거든, 여리면서도 매력적이어야 해. 그리고 나는, 나는 이제 시들어 가고 있어! 얼마나 더 눈속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로베니아에 살고 있는 베로니카는 딱히 이유도 없이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려 했다.  수면제 몇 통을 먹어치우고는 빌레트라는 정신병원에서 깨어난다. 사투를 벌인 끝에 그녀의 심장은 엉망이 되어서 시한부의 삶을 살아야 한다.

비로소 그녀는 자살을 선택하기 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감정들을 맛보며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유독 어린 처녀들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고, 그런 유부남의 아내들은 절망하고,  결국 유부남들은 가정으로 돌아오고, 그 처녀들은 다시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결혼이란 것이 다 그런 과정을 겪는다는 듯이..

로니카와 병원에서 제일 먼저 친해지는 제드카는 처녀 때 그런 사랑을 했고 다 바쳤으나 끝내 버림받고 다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낳았으나 어느 날 문득 첫사랑을 위해 열렬히 투쟁했던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슬픔에 잠겨서 애절한 고통을 느끼며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첫사랑을 추억하다가 정신을 놔 버렸다. 그녀의 병명은 우울증이었다.

그 병원의 수상한 조직 '형제 클럽'의 일원인 마리아는 잘 나가는 변호사 출신으로 어느 날 알 수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일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이 병원으로 오게 된다. 그녀는 패닉 신드롬 환자였다.

리고 한때 피아노 연주가가 되고 싶었던 베로니카로 하여금 다시 피아노를 치게끔 조르는 정신 분열증 에뒤아르는 유능한 외교관 아버지 밑에서 외교관을 강요당하며 성장했으나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꿈이 억압 당하고 부모의 뜻과는 어긋난 생활을 하다가 이 병원으로 오게 된다. 

제드카가 베로니카에게 해준 어느 왕국의 이야기 속에서 마법에 걸린 우물물을 마시고 모든 백성이  미쳤으나 멀쩡한 왕의 말을 아무도 따르지 않자 결국은 왕도 그 우물물을 마시고 미치자 그 왕국엔 다시 평화가 왔다는,,,

상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합의에서 벗어나기가 두려워서 남들처럼,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행동하려고 사고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가끔 너무도 동떨어져있는 예술인들이나 천재들을 보면서 느낀 바,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차이는 한 끗 차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살짝은 미쳐 있음이 오히려 행복할 수도 있는 건 아닌지 ..미쳐있음,,,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사회적인 것에서 빗겨 날수 있는 남들 눈에는 비 상식적인 그런,,, 역자의 해설에서 아담이 사랑을 선택한 하면서 함께 선택된 죽음, 죽음에 대한 자각, 삶의 유한성 때문에 우리는 삶을 더 숭고하게 여겨야 한다는..

리아가 그녀의 병이 다 치료 되었음에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병원에 머무르다가 65세의 나이에 밖으로 나가겠다고 다짐을 하며 형제 클럽 회원들에게 남긴 편지글 중에 '언제나 똑같은 물을 품고 있는 연못이 아니라 넘쳐흐르는 샘처럼 되라는 영국의 시를 읽으며 자신은 그 시가 틀렸다고 넘쳐흐르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일생 동안 연못처럼 행동하려고 내부의 벽 너머로 절대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자신의 삶이 결국은 패닉 신드롬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었고 결국엔 그녀가 두려워했던 넘쳐흐르다 못해 주의의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샘이 되었노라고 고백하며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잣대, 상식적인 것.. 그런 것들에서 그냥 넘쳐 흘러 볼까나?~~ 연못처럼 고이지 말고, 설사 위험할지라도? 어쩌면 ..미치지 않으려면..

신이란 무엇인가? 세상이 구원받아야 한다면, 구원이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기 있는 그리고 바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유의 삶을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삶을 살게 내버려 둔다면 신은 매 순간 속에 후추알 하나하나 속에, 땅에 떨어져서는 바로 녹아버리는 눈송이 하나하나 속에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신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삶이 곧 신앙 행위라는 사실은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단순해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 신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난 소위 ‘정상적‘이라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앞서 많은 의사들이 그 연구를 했고,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달리 말하자면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올바르게 되는 거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