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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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는, 그 마술적 리얼리즘에 매료되어, 그리고 'G.마르케스'에 도취되어, 그의 책들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백 년 동안의 고독(1967년 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4 년 작)」,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9년 작)」, 이웃인 《목요일의 섬》께서 추천해 주신 「사랑과 다른 악마들」..

나머지 책들 모두 좋았지만, 「백 년 동안의 고독」만큼 강렬했던 책은 없다고 보는데, 「사랑과 다른 악마들」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도 그의 고독과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에 충실하다고 본다.

리고 식민지 국가를 고국으로 둔 작가답게 자신들의 문화, 종교, 삶 전체를 파괴시킨 식민 지배국에 대한 강한 저항감과 비판을, 마술적 현실주의로 표현한 그만의 독특한 유머와 아이러니를 담은 어휘가 빛을 발한다.

특히나 자신들을 지배한 국가(스페인)와 그들의 종교(가톨릭)에 대한 우월감에 지배당한 원주민과 흑인 노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이야기는 콜롬비아 카브리해에 위치한 카르타 헤나라는 지방에서 시작된다.

1533년 스페인이 진출했던 때부터 주교가 파견되었고, 교통의 요지였고, 큰 장이 섰고,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던 곳,

그곳에서 노예상과, 밀가루 거래를 해왔던 카살두에로 후작가문이, 무역이 쇠퇴되고 도시의 쇠락에 따라 몰락의 징조를 보이게 된다.

제 이야기의 시작은 1949년 10월 리포터로 일하던 작가가 한 세기 전에 병원으로 변했지만, 한때 산타 클라라회 옛 수녀원이 있던 장소를 별 다섯 개짜리 호텔 부지로 바꾸기 위해 납골묘 비우는 작업을 보다가, 아주 오래된 시신들, 주교, 수녀원장, 유지들 가운데 '시에르바 마리아 데토도스 로스 앙헬레스'라는 이름의 시신을 눈여겨보게 된다. 바로 22미터 11센티의 강렬한 구릿빛 머리카락 때문이다. 공사감독자가 인간의 머리카락이 죽은 후에도 한 달에 1센티씩 자라기 때문에 200년 된 시신임을 추정하게 되는데, 작가는 어릴 때 할머니가 들려준 머리카락을 땅바닥에 끌고 다니던 열두 살 먹은 후작 딸의 이야기를 떠올려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 밝힌다.

이마에 흰 반점이 있는 회색빛 개가 '카살두에로 후작'의 외동딸 '시에르바 마리아(이하 마리아)'의 다리를 문다.

노예항에서는 노예들이 의문의 떼죽음을 당하자 은폐하려고 시신에 돌도 매달지 않고 바다에 던져버리고, 시체들이 수면으로 떠오르자, 아프리카 역병의 의혹도 생긴다.

그러자 살아남은 노예들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경매에서 후한 값도 받지 못한다.

시절은 주인 없는 개들이 사람을 무는 일이 다반사였고, 하녀는 함께 항구 구경을 나갔다가 왼쪽 복사뼈를 물린 '마리아'에게서 상처도 보이지 않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열두 번째 생일잔치를 벌이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다. 얼마후 그 회색 빛 개는 광견병 걸린 개로, 죽임을 당해 매달린다.

'카살두에로 후작'의 부인인 '베르나르다'는 후작의 두 번째 부인으로 천박한 가짜 귀족이다. 아버지와 짜고, 결혼과 사랑에 관심이 없는 후작을 덮쳐서 임신을 하자 협박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마리아'가 칠삭둥이로 태어나자,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아이를 외면해 버려서 흑인 노예 '도밍가'가 키우게 된다.

'도밍가'는 자신이 모시는 성인들에게 이 아이를 살려준다면 결혼식 날까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노예들의 틈바구니에서 춤과, 세 개의 아프리카 언어를 구사하고, 새나 동물의 소리를 내면서 노는 등 그들이 믿는 종교 속에서 야성적으로 성장한다. 가정교사가' 마리아'에게 모국어와 음악을 가르쳐보려고 애썼지만, '이미 이 세상 애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만둔다. 엄마 '베르나르다'는 자신의 딸을 증오하고 더 방치한다.

- 중간생략-

 

롬비아는 1536년부터 1810년까지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는다. 스페인의 가톨릭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으며, 유럽 내 정치, 종교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종교개혁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8세기 말, 서유럽이 계몽에 눈 떠가는 동안에도 스페인은 수구적인 도시를 고집하였고, 종교재판이 1811년까지도 성행하였다고 한다.

콜롬비아에서의 종교재판은 이 이야기의 공간적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근간이 된다.

스페인은 가톨릭과 식민지배자로서의 우월에 사로잡혀

종교의 이름으로 야만적으로 거행되고 묵인되는 행태를 벌였지만

그들이 대서양을 건너 그리스도의 계율을 전파하고자 한, 바람은, 그들의 영혼에 계율을 심는 것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1982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남아메리카의 슬픈 역사와 함께 읽어갈수록 빠질 수밖에 없는 흥미와 깊이가 있다.

작가가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고독'의 반대말이 '유대'라고 했다는데, 이 작가의 주요 테마는 우울과 고독이었던 듯하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 사랑은 할 수 없는데, 性은 또한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설에서 제목의 악마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독한 사람들..후작, 베르나다, 주교, 수녀원장 같은..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시절의 콜롬비아, 식민지, 종교재판, 수도원, 수녀원, 기울어가는 귀족 가문, 그리고 흑인노예들의 삶-비루하지만 낙천적인 흑인 특유의 여유, 그리고 카리브해, 머리를 한번도 자르지 않은 열두살 소녀의 광기.. 나열하기도 벅차다.

다음 며칠간 두 사람은 오직 함께 있을 때만 평온함을 느꼈다. 싫증도 내지 않고 내내 사랑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지칠 때까지 키스를 나누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인들의 시구를 낭송하고 서로의 귀에다 노래를 속삭여 주고 기운이 다할 때까지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탈진 상태에 이르렀지만 둘 다 여전히 순결을 지켰다. 왜냐하면 델라우라는 종부 성사를 받을 때까지 수도서원을 지키리라 결정했고, 소녀도 그 결정에 동의했던 것이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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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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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선'은 1950년 고등학교를, 195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했다. 그리고 1997년 90세의, 자신의 고등학교 첫 영어선생님이었던 '머리 린골드'를 만난다. 아테나의 작은 대학에서 '네이선'이 맡은, 노인을 위한 1주일짜리 여름강좌, [밀레니엄 시대의 셰익스피어]의 수강생으로 온, '머리' 선생님 덕에 엿새 동안 '네이선'의 20세 연상 친구이자 우상이었던 '머리' 선생님의 동생 '아이라 린골드'의 생애와 시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1946년에 제대한, 깐깐하고 자신만만했던, '머리' 선생님은, 큰돈을 벌겠다는 그 시대 미국 특유의 맹목적 열망에 매몰되지 않은, 성직자 다운 사명감과 남성적 권위로 무장한 과감한 수업방식으로 '네이선'의 자유 의식에 자국을 남긴 사람이다. 1950년대에 그는 교직의 위엄을 세우려고 교사노조를 결성했던 선동가로, 라디오방송 성우였던 '아이라'가 공산주의자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 해고되었다가 6년 만에 복직되었던 이력도 있었다.

두 형제는 형 '머리'가 현실적인 것, 직업적 관점에서 지역사회의 운명에 관심을 가졌다면, 동생 '아이라'는 세계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부풀어진 신념으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아이언 맨'(강철 인간)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아이라'는 엄청 큰 덩치에 솔직하고 충동적이며 직선적이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다.

그는 계모, 불행한 가족, 거친 이웃으로부터 16세의 나이로 가출하여 군에 입대했다가 공산주의자 '오데이'를 만나 그로부터 마르크스 주의를 비롯해서 교육을 받고, 광산, 공장, 도랑치는 일, 농장, 야간 경비원, 잡역부로, 막일꾼으로 일하다가 노조의 모금 행사 등 각종 행사에서 링컨 분장을 하고, 노예제를 비난했던 연설문을 낭독하다가 라디오 스타가 되었다.

리고 6세 연상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자 성우이자, 무성영화배우인 '이브 프레임'과 결혼을 한다.

'이브'에게 '아이라'는 네 번째의 남편이 되고, 그녀에겐 딸 '실피드'가 있다. 유대인을 몹시 경멸하는 '이브'는 큰 저택을 지닌 부자로, 고상한 배역을 주로 하느라, 이미지가 지적으로 드러나지만, 생각이 없고, 귀부인인척하는 가식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아이라'와는 성격과 관심사가 전혀 다르다.

그녀의 딸, 23세의 '실피드'는 유별난 아이로, 하프를 연주하고, '이브'는 독특하고 강렬한 모성본능으로 '실피드'를 감싼다.

'이브'는 자신의 딸, '실피드'를 통해 유토피아를 찾고, '실피드'는 '이브'가 평생 잊지 못할 만큼의 인생의 비애를 안겨주고자 한다. 그리고 맹목적인 '아이라'는 공산주의에서 유토피아를 찾고자 한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자, '실피드'의 아빠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귀족 출신의 동성애자로, 어린 남자애들을 노리개로 삼는다.

마를 증오하는 수단으로 폭식을 해대는 '실피드'는 '이브'를 욕하고 때리기까지 한다. 이상한 두 모녀의 관계를 보면서 경악했던 '아이라'는 '이브'의 임신으로 몹시 기뻐하고 위안을 받지만 '이브'는 아기를 지우겠다고 하고, 그 이유가 '실피드'의 반대 때문임을 알자, 좌절했고, 복잡한 마음에 형의 집에 왔다가 '네이선'을 알게 된다.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던 '아이라'에게, '네이선'은 좋은 가정에서 잘 자란, 그가 한 번도 되어 보지 못했고, 가져 보지 못한 아들이었다고 '머리'는 회상한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의 악을 바로잡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던 '네이선'은 '아이라'의 완벽한 개별 지도 대상이 된다.

유명인이 된 이후에도 일반 노동자와 가난한 삶을 몸에 익히기 위해, 징크 타운의 오두막을 마련해서 지내기도 하던 '아이라'는 그곳에서 어릴 적 방랑 시절과 연결된 안식을 찾는다. '실피드'의 무거운 하프를 공연장까지 옮겨주기도 하던 '아이라'는 '실피드'의 절친, 플루트 연주자 '패멀라'와 바람을 피운다. 영국에서 온, 좋은 가정에서 자란 '패멀라'가 딸과 함께 자신들의 집에 드나들자, '이브'는 그녀를 통해 자신을 거부하는 딸의 모습을, '아이라'는 자신의 아이를 거부하는 아내의 모습을 기대하기도 한다.

르판 증후군이라는 '링컨'과 같은 병을 앓게 된 '아이라'는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리고, 그를 위해 '이브'는 에스파냐 마사지사를 고용하는데, 이 늙고 기운 센 여자와 매춘도 일삼게 된다.

그런 '아이라'의 오두막에서 아버지의 염려를 뒤로하고, 두 번을 함께 지냈던 '네이선'은 그곳에서 동정도 벗어버리고, 그곳에서 '아이라'의 이웃들, 노동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1950년,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고 한때 '아이라'에 빠져서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애정이 무뎌지고 순수함도 끝났던 때를 지나 반항적인 주체성을 가지게 되고, '아이라'에 대한 환상도 깨졌다.

'네이선'을 진정한 남자의 세계로 이끌었던 '아이라', '네이선'은 어느덧 그의 지겨운 반복과 장황한 수사, 공격적인 태도, 선거 유세 같은 과도한 언변이 견디기 힘들어지고, 그의 말이 따분해지고 자신이 더 똑똑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성숙했다.

그리고 '네이선'이 대학에서 만난 '리오'선생님,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우정이 싹튼다.

 

​- 중간 생략-

럽의 전쟁이라고 말하던 세계대전, 혹독한 대공황을 겪고 전쟁에서의 수익으로 오늘날 제1의 국가가 된 미국이,

마찬가지로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메리칸드림에 사로잡혀 그곳에 가서 노동자로 살더라도 선택해왔던

그 사회가,

그시대에 그런 차별과 갈등을 겪었던 이야기, 첨예했던 이데올로기의 정점에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던 남자,

고발, 위협, 처벌의 분위기가 휩쓸었던 시대를 들여다보았음에 의의를..

근데 필립 로스 처음 대하는데, 의식의 흐름 기법 수준(엄밀히 말해, 그만큼은 아니지만..)으로 왔다 갔다 하는 전개 방식이, 잠시 다른 데로 흘러가는 나의 의식을 부여잡고 있으라, 있으라 하는 독서였음..

강렬한 제목의 문장이 주는 뉘앙스에 충실 하게, 결국엔 공산주의의 모순, 허상에 대한 역설이 있다. 그래도 미국이니깐.. 애초에 첩보원이 아닌다음에야, 미국 속의 공산주의자는 모순이지 않은가

- 실패가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인생을 비난할 순 없다네. 한 인간에게서 제멋대로 사회적 지위를 빼앗고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기술들을 보면 오히려 인생에 경의를 표해야 하지." 12



- 그렇게 해서 이번에는 과거란 놈이, 자신의 문제에 쏟아야 할 시간 외에는 단 일 초도 더 허비하지 않는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중요하지 않은 것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불쑥 찾아왔다. 13



-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거라, 분노는 널 유리하게 해주는 거란다. 그게 분노의 생존 기능이다 그 때문에 너에게도 분노가 주어진 거란다. 그런데 분노가 널 불리하게 만든다면, 그 분노는 헌신짝처럼 버려야 한다."136



- 삶에서 모든 것은 오랫동안 뜨겁고 강렬하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열기가 새어나가 서늘해진 뒤 재로 변한다. 책과 겨루는 법을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던 사람이 돌아와 지금은 내 앞에서 노년과 겨루는 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놀랍고 숭고한 기술이었다. 그 어떤 것도 강인한 인생을 살아낸 것보다 노년에 대해 더 잘 가르쳐줄 수 없기에. 138



도리스는 말했다네, 아이라는 평생 약점 하나를 안고 살다 간 공산주의자였다고, 정열이 넘치는 공산주의자였지만 당이 원하는 배타적인 울타리에 갇혀 살지 않았고 그것이 그를 파괴하고 무너뜨렸다고, 공산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라는 완벽하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그는 자신의 인간성을 내팽개치지 못했으며, 투쟁과 하나의 목적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에게선 인간적인 면모가 끊임없이 솟아 나왔다고. 당에 충성했으면 좋았겠지만, 자신의 본모습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며, 그는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고, 자신의 모순까지 끌어앉은 채 철저히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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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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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기는 1961년, 독일 이민자들이 터를 잡고 살아오던 소도시, 독일 도시의 이름을 딴, 뉴 브레멘에서 시작된다.

이곳에 이사 와서 5년째 살고 있는 목사 가족,

아버지 '네이선'과 13세의 나 '프랭크' ,11세의 남동생, 못생기고 말을 더듬는 '제이크', 언청이 수술을 한 흔적이 있지만 예쁜 18세의 누나 '에이리얼', 그리고 아름답고 노래를 잘하는 엄마 '루스'..

그리고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살고 있는, '네이선'의 자녀들이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스'..

브레멘은 고지대와 평지대로 나누어져 있는데, 고지대는 부자들이 살고, '프랭크'의 가족이 사는 평지대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 고지대에는 부자인 외 할아버지가, 외할머니가 사망하고 난 이후 새 외할머니 '리즈'와 함께 살고 있고, '프랭크'와 '제이크'는 할아버지 정원을 돌보고 2달러씩 받아서 돈을 모아, 독립기념일 폭죽놀이용 폭죽을 사려고 한다.

외 할아버지는 목사인 가난한 사위 '네이선'을 못마땅해 하고,

엄마인 '루스' 역시 법대에 다니던 자신만만했던 '네이선'이 법대를 졸업하고 소송 전문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지지하고 결혼했지만 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그는 돌아온 이후, 신학교에 입학하고, 목사 안수를 받는다.

곳 평지대 감리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남편을 도와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지만, 고지대에 살고 있는 부유한 브란트가의 '에밀 브란트'와 한때 약혼했던 사이였고, 참전 후 심각한 부상으로, 끔찍한 얼굴의 외상과 시력까지 잃어버리고 돌아온 그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에밀 브란트'는 열 살 어린, 자폐아이자 청각장애인 여동생 '리사 브란트'와 함께 살고 있다.

뛰어난 재능의 음악가인 '에밀 브란트'에게 음악교육을 받고 있는 누나 '에이리얼'은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할 예정이고 그녀에겐 브레멘 경제의 핵심인 양조장 집 아들 '칼 브란트'라는 남자친구도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리사 브란트'는 오빠 '에밀 브란트'를 집착에 가까운 애정으로 돌보며 정원 가꾸는 일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좋아하는 단 두 사람, 바로 그녀의 오빠 '에밀'과 말을 더듬는 '제이크'뿐이다.

해 여름, '바비콜'이라는 '프랭크' 또래의 좀 모자라는 친구가 철로 근처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철로를 걷던 '프랭크'는 '제이크'와 함께 철로 아래 떠돌이 남자의 시체를 본다. 그 시체의 곁에 있던 원주민 수 족의 노인과 함께..

그리고 연이은 죽음들

자살을 시도했던 '에밀 브란트',

익사체로 발견된 너무도 사랑했던 가족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죽은 '칼 브란트'

그리고 거칠게 사는 건달 '모리스 엥달'까지

리고 서사의 중심에 있는 전쟁의 상흔들

2차 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 전쟁에서, 인간이 그렇게 죽으면 안 되는데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보아왔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남자들..

'에밀 브란트'가 아버지 '네이선'이 그리고 아버지를 아직도 대위님이라고 부르는 '거스', 술에 취해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가족을 폭행하는 '클레멘트'..

랑하는 가족을 잃은 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극복(?) 해 가는 과정, 의심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아파하다 결국엔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그리고 함부로 담을 수 없는 말 용서.

인간은 시련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다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들을 최대한 유예하고 싶을 뿐이라고..

근데 아버지 '네이선' 목사의 장례식 이후 설교의 말이 진짜, 꾹꾹 눌러 담는 아픔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주검을 최초로 목격하기도 하고,

비밀을 몰래 듣고, 범인을 추리하고, 최종 범죄자가 누구였는지를 알아가는 나 '프랭크'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아픔들이 묻혀지고, 비밀이 없던 작은 마을 뉴 브레멘이 지나갔다.

40년 이후 그해 그 여름을 기억해내고 있는 프랭크..

(鐵)로 만들어져서 늘 그 자리에 단단하게 있지만

鐵路(철로)는 늘 움직인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도 뿌리를 단단히 내린 나무처럼 우뚝 서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흘러갈 것이고, 그 가는 곳의 도착지는 죽음일테고..

죽음은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죽은 자 역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리소설 장르라고 하는데, 성장소설에 가깝고,

전쟁의 상흔과 죽음이라는 상실, 그것을 사랑과 믿음과 소망으로 극복하는 '네이선'과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읽기가 매우 수월하고 흥미 있게 전개 되는데, 옮긴이의 말처럼 과하지가 않다.

북한 포로 수용소와 한국의 남자아이 입양 이야기도 언급된다. 아주 짧게 ..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고, 찢어지는 말, 용서.. 용서할 일은 생겨도 용서받을 일은 만들지 말고 살고 싶다는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과 죽음 앞에 무기력 할 수밖에 없는 인간, 왜 하필 나 이냐고, 그사람이냐고 신을 원망해볼것도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오두막]도 생각이 나고, [포루투갈의 높은산]도 생각이나는 책, 번역자 '한정아'님이 이 책을 읽던 무렵이 세월호사고가 일어났던 때이라고, 분노하고 울면서 읽었노라고.. 이 책으로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기도해본다고..

 

 

- "무서웠어, 근데 호기심도 생기더라, 그래서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멈춰 서서 죽은 병사를 한참 살펴봤어. 독일군이었지. 아직 앳된 소년에 불과했고. 프랭크 너보다 두세 살 많을까.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어린 병사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전투 경험이 많은 병사 하나가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나한테 그러더라. ‘익숙해질 거야, 아들.‘ 정말로 아들이라고 불렀어. 나보다 어렸는데도 말이지". 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근데 그 병사의 말이 틀렸어. 얘들아, 죽음에는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더구나." 아버지는 두 팔을 허벅지에 대고 가끔 혼자 교인석에 앉아 기도할 때처럼 두 손을 맞잡았다."전쟁에 나가야 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 나가야 한다고 느꼈어. 전쟁터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근데도 죽음은 충격이더구나." 아버지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짙은 갈색의 눈에 자상함과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너희가 절대로 보지 않게 막아주고 싶었는데, 결국 오늘 보고 말았구나. 그 얘기를 하고 싶으면 하렴, 들어줄 테니까." 65-63



행복이란 게 뭘까, 네이선? 내 경험으로는, 길고 험난한 길을 가는 중에 중간중간 잠시 쉬었다 가는 것, 그게 행복이던데. 항상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행복이 아니라 지혜라는 변덕스럽지 않은 미덕을 갖게 되길 바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107

-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모르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우리가 간과한 어떤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 언젠가는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로 아침을 맞아 노래하는 새처럼 낭랑한 에어리얼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라는 희망.

반면에 아는 것은 오직 죽음만을 가져왔다. 에어리얼의 죽음, 희망의 죽음, 내가 처음에는 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상실의 의미를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될 어떤 것의 죽음.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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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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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에 이어 '이언 매큐언'의 두 번째 소설을 만났다. 「칠드런 액트」... 「속죄」가 원작이었던 「어톤먼트」에 이어, 이 책도 2019년도에 영화화되었다고 한다.

고등법원의 판사 '피오나 메이'는 그녀와 36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 온, 60세의, 잘생기고 자상한 남편 '잭'으로부터, 당직을 서는 자신의 방에서 다음날 있을 재판의 판결문 등을 작성하고 읽어보고 정리하는 동안, 말도 안 되는 억지소리를 듣는다.

대사 교수이자, 학자인 '잭'은, 단 한 번도 한 눈 판 적이 없는, 충실한 남편이었다. '잭'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지만, 충족되지 않는 성적 욕구 때문에 불행하다며, 그녀 아내의 승낙하에 28세의 젊은 통계전문가 '맬러니'와 연애를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혼은 원치 않는다고 한다. 둘의 사이는 따뜻했고, 사랑했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피오나'는 승낙도 이해도 할 수 없다며 분노한다.

가정부 재판을 주로 맡았던 '피오나'는 근래에 머리 아픈 사건들에 휩싸여 있었다.

유대인 '번스타인' 부부는 아이들 양육방식에서의 갈등으로 큰 돈이 걸린 이혼소송중이다.

유대인은 순결을 지키기 위해 남. 여 분리 교육과 유행에 따른 옷차림, 텔레비전, 인터넷이 금지되어 있고, 오락이 허용되는 아이들끼리의 교제도 금하고 있고, 다산을 장려하는데, 아내가 둘째를 낳고는 더 이상 임신할 수가 없게 되자, 남편과 가족들이 이미 실망해 있었고, 아내는 방송 통신대를 다녀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자녀들에게 신식 교육을 시키려 들자, 이에 반발해서 이혼을 하려고 한다.

리고 가톨릭 신자가, 샴쌍둥이를 출산했는데, 장치에 의존해 연명을 유지하는 이 둘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좀 더 건강한 아이를 위해, 더 가망성 없는 아이를 희생시켜야 하는 분리수거를 동의하지 않으려 들자, 병원 측에서 소송을 제기하여 강제로 수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재판도 했었다. 희생당해야 하는 아이에 대한 살인행위를 거부하는 부모의 의지, 분리하지 않으면, 희생시키지 않으면 결국 둘 다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결국 분리수술 판결을 내리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 재판은 '피오나'에게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아이였지만, 한 존재를 처치해 버린, 지워버린 자신의 기여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내밀하게 흔들어 버린 이 사건 이후 그녀는 사람의 몸에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자신의 몸, 그리고 남편 잭의 몸에 대한 역겨움도 있었다. 그때부터 였던가 잠자리의 거부가..

그리고 남편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통보를 받은 바로 그 밤, 여호와 증인 가정, 백혈병 투병 중에 있는 17세 소년의 수혈 거부에 대한 병원 측의 제기에 관한 보고를 법원 서기의 전화를 통해 듣는다.

59세, 노년의 유아기를 보내고 있는 '피오나'에게는 아이가 없다. 우아하고 정확하지만 온기 있는 문장의 판결문으로 동료 판사들로부터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녀는, 초기의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 까다롭고 의미 있는 소송들의 더 큰 성공을 위해 임신을 미루고, 하루 열세 시간 일하고 가족법에 깊이 빠져들다 후에는 노산과 자폐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임신할 수 없었다. 물론 남편의 동의하에..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고, 판사 임명 이후에는 모든 게임이 끝났음을 알았다.

 

 

다음날 아침 여호와 증인 소년의 재판 건으로 집안을 나설 즈음, '잭'은 이미 짐가방을 들고 집을 나갔다. '피오나'는 자물쇠를 바꿔버린다.

정에서 양측 변호인의 이야기를 듣고, 담당 의사의 의견을 듣던 '피오나'는 사회복지사와 함께 소년의 병실 방문을 이행한다.

'애덤 헨리'라는 17세의 이 소년은 격리실에서 장치에 의지한 채, 수척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한다. 성장기의 배경이 된 특정 종파에 지나친 영향을 받은 이 소년은 부모와 장로들의 생각과 같이, 수혈을 거부하며 죽음도 각오하고 있었다. 내일이 고비라 아주 위험한 상태에 놓인 이 소년에 대해 병원 측은 본인과 가족의 의사에 반해 적법한 절차로 수혈할 수 있도록 법원 명령의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다. 당연히 언론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 중간 생략 -

 

「속죄」란 소설에서도 작가가 여성이 아닌가 몇 번 봐야 했는데

이 소설에서도 '이언 매큐언'의 묘사는 여성작가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건강한 가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자녀란, 부부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부모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것들이 폭력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 없는 노년의 이 부부, 그 남편의 허전함, 그 여인의 억울함,

그 들 부부가 듣는 음악들, 그녀 '피오나'가 파트너와 함께 연주하던 곡들, 이 소설도 음악 듣는 재미를 주는 독서였다.

력있는 판사 '피오나'의 판결문이 거의 예술의 경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어떻게 쓰는 판결문이 그러한건지, 관심이 갔음.. 판결문은 충분히 예술적일수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음.. 그리고 법관의 책임, 어른의 책임의 한계에 대한 생각과

내가 좋아하는 '박태기 나무'를 '유다나무'라고 부른다는 사실.. 나만 몰랐었나?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목을 매어 죽은 나무가 '박태기 나무'였다고 해서, '유다나무'라 부른다 하는데, 내가 본 '박태기 나무'들은 그렇게 크고 강하지 않아 보였는데, 유럽의 '박태기 나무'는 또 다른가 한다.

- 폭포처럼 쏟아진 말은 반은 사과였고 반은 자기 정당화였으며, 일부는 전에 들은 내용이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깨달음, 오랜 세월 신의를 지켜왔다는 사실,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 그런데 그날 밤 집을 나가자마자, 멜러니의 집에 도착하지 마자 실수라는 걸 깨달았어.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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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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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최고의 극작가 '오닐'의 대표작으로, 먼저 읽은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통속극에 머물러 있던 미국의 연극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유진 오닐' 사후에 발표되었다.

자신의 아내에게 헌사하면서 이 책은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로,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극'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사후 이십오 년 동안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을 정도로 작가 자신의 사적이고도 아픈 이야기였지만, 아내는 고인의 뜻을 무시하고 1956년에 이 작품을 발표해 버린다.

1912년 8월 '제임스 티론'의 여름 별장 거실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제임스 티론'의 아내 '메리 티론'은 54세의, 결혼 생활 35년을 이어온 여인이다.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란, 아일랜드 출신의 그녀는 한때 미 중서부 최고의 수녀원 학교를 다니며, 수녀가 되고 싶어 했고, 피아노에도 소질을 보여,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질도 있었지만 열 살 연상의 배우 '제임스 티론'의 연극을 보면서 아버지의 지지 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을 한다.

65세의 '제임스 티론'은 십 년은 젊어 보이는, 한때 미남스타였지만, 요양원에서 갓 돌아온 아내가 밤새 자신의 코 고는 소리와 무적 소리로 인해 잠 못 이루고 아침부터 예민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에 빠진다.

그리고 '티론'을 닮아 체격이 좋고 건강한 기질이며 배우의 길에 들어선, 33세의 장남 '제이미'와

엄마의 기질을 닮은, 연약하고 신경질적인, 23세의 아들 '에드먼드'가 등장한다. '에드먼드'의 얼굴엔 병색이 짙고, 슬픔과 죽음의 이야기뿐인 책을 읽는 그는, 시를 쓰고 있다.

'메리'는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뒤틀리고, 흰 머리카락이 늘고, 눈도 안 보인다고 이야기하는데, 점점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자꾸 과거의 얘기와 맥락 없는 얘기를 한다.

그녀에게 맞장구도 쳐주며 애정을 드러내던 세 가족 역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과거,

그녀 '메리는 무적 소리가 옛날 일들을 들쑤시고, 무서운 생각이 들게 만든다면서 자꾸 지나간 과거를 들춘다.

'메리'는 배우인 남편의 순회공연을 따라다니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했었다. 집도 없이 싸구려 호텔방을 전전하면서 극단의 사람들이나 다른 배우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밤마다 술에 절어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호텔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지저분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7세의 '제이미'가 홍역을 앓던 중, 둘째였던 '유진'(아들)과 함께 친정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남편의 보고 싶다는 말에 그를 향해 나선 길, 격리되어야 했을 '제이미'가 두 살배기 동생의 방을 기웃거리다가 홍역을 옮기게 된다. '유진'이 끝내 죽자 '메리'는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셋째 '에드먼드'를 임신하면서 더 불안해지고, 출산 후에는 건강이 매우 나빠진다.

그녀의 남편 '제임스 티론'은 가난에 찌든 무지한 아일랜드 사람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6명의 다른 자녀들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오게 되지만, 아일랜드를 너무 그리워하던 아버지가 가족을 모두 버리고 떠나자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학교도 못 다니고 기계공이 되는 등 엄청난 고생을 하다가 배우가 되었다.

런 그는 돈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 구두쇠가 되고, 땅 사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한때 '셰익스피어'를 좋아해서 그의 극을 공연하고 싶어 했지만, 그가 주역을 맡은 연극이 대성공하면서 많은 부를 얻자, 그 돈의 노예가 되어 다른 극을 도전해보지 못한 채 삼류배우로 전락했다.

이 날 하루 동안,

이들 네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면서 이해한다면서,

또 서로를 원망하고 경멸하면서 현재와 과거를 들쑤시며 오간다.

아들은 아버지가 아픈 어머니를 제대로 된 의사에게 보이지 않고 호텔의 싸구려 의사에게 보여서

치료가 아닌, 진통의 모르핀 주사만 맞게 하여 그녀가 마약쟁이가 되었다는 것.

아버지는 돈만 생기면 땅을 사고, 그런 정보를 찾아 사람들을 만나고 술이 취해서야 호텔방으로 업혀왔다는 것.

큰 아들 '제이미'는 둘째였던 '유진'을 질투하여 일부러 홍역을 옮겼다는 것.

성장한 큰아들에게 기대가 컸었지만 대학에서도 짤리고, 술을 먹고 창녀들을 찾아다니며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 것.

그리고 막내아들 '애드먼드'에게도 술과 타락과 부모에 대한, 특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르쳤다는 것.

폐병을 진단받은 '애드먼드' 역시 아버지가, 자신의 병 치료를 위해 보내려는 요양원에 드는 돈도 아까워서 싸구려 주립 요양소로 보내려 한다는 것.

번도 집이란 것이 없었던 가족을 위해 아버지는 이 여름 별장을 샀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 아무도 맘에 들지 않아 하는 이 집. 돈 들이는 것도 아까워서 인테리어도 안 하고, 전기쟁이 좋은 일만 시킨다면서 집안의 전등을 끄고 다니는 구두쇠 아버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이 가족..

메리는 남편에게 너무도 사랑했다면서

혼자 기다렸던 수많은 날들, 잊지는 못하지만 용서는 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자, 혼자 남게 된 그녀는, 불안하다던 그녀는 오히려 간섭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고.

- 중간 생략-

 

가 유진 오닐의 잔인한 가족사를 여과 없이 드러낸 이 책은

장남의 자살과 아내와의 불화, 그리고 마비 증세와 우울증이 악화되었던 불행했던 말년에,

27년 동안 자신을 고통 속에서, 방황케 했던 가족 네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쓴 글이라고, 그 세월이 지나서야 마음에서 우러난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을 바라보게 된다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들어갈 때보다 십 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로는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채로 작업실에서 나오곤 했다"고 그의 아내가 술회를 했다는데 그녀는 고인의 뜻에 따르지 않고 3년 만에 이 작품을 발표한다.

세한 지문들을 따라 읽으며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독서를 해야 했는데, 이 극을 연극해야 했던 배우들은 저런 섬세한 지문들을 어떻게 소화했더랬을지 새삼 궁금했음. 그리고 추녀 끝에 안개가 떨어지는 소리는 어떤 건지? 안개 소리에 귀 기울여 봐야겠는데, 이 동네는 안개가 잘 안 끼네..

 

* 사로잡은 단어:

무적(霧笛) 소리; 안개 ·눈 ·비 등으로 시계(視界)가 나쁠 때, 선박에서는 다른 선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내는 소리

안개 인간.. 애드먼드의 대사 중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72

- 제임스! 우린 서로 사랑해 왔어요! 앞으로도 항상 그럴 거고! 우리 그것만 생각해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걸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어쩔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씨름하지도 말아요. 운명이 우리에게 시킨 일들은 변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거예요. 99



- 과거는 바로 현재예요. 안 그래요?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인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죠.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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