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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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최고의 극작가 '오닐'의 대표작으로, 먼저 읽은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통속극에 머물러 있던 미국의 연극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유진 오닐' 사후에 발표되었다.

자신의 아내에게 헌사하면서 이 책은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로,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극'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사후 이십오 년 동안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을 정도로 작가 자신의 사적이고도 아픈 이야기였지만, 아내는 고인의 뜻을 무시하고 1956년에 이 작품을 발표해 버린다.

1912년 8월 '제임스 티론'의 여름 별장 거실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제임스 티론'의 아내 '메리 티론'은 54세의, 결혼 생활 35년을 이어온 여인이다.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란, 아일랜드 출신의 그녀는 한때 미 중서부 최고의 수녀원 학교를 다니며, 수녀가 되고 싶어 했고, 피아노에도 소질을 보여,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질도 있었지만 열 살 연상의 배우 '제임스 티론'의 연극을 보면서 아버지의 지지 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을 한다.

65세의 '제임스 티론'은 십 년은 젊어 보이는, 한때 미남스타였지만, 요양원에서 갓 돌아온 아내가 밤새 자신의 코 고는 소리와 무적 소리로 인해 잠 못 이루고 아침부터 예민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에 빠진다.

그리고 '티론'을 닮아 체격이 좋고 건강한 기질이며 배우의 길에 들어선, 33세의 장남 '제이미'와

엄마의 기질을 닮은, 연약하고 신경질적인, 23세의 아들 '에드먼드'가 등장한다. '에드먼드'의 얼굴엔 병색이 짙고, 슬픔과 죽음의 이야기뿐인 책을 읽는 그는, 시를 쓰고 있다.

'메리'는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뒤틀리고, 흰 머리카락이 늘고, 눈도 안 보인다고 이야기하는데, 점점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자꾸 과거의 얘기와 맥락 없는 얘기를 한다.

그녀에게 맞장구도 쳐주며 애정을 드러내던 세 가족 역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과거,

그녀 '메리는 무적 소리가 옛날 일들을 들쑤시고, 무서운 생각이 들게 만든다면서 자꾸 지나간 과거를 들춘다.

'메리'는 배우인 남편의 순회공연을 따라다니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했었다. 집도 없이 싸구려 호텔방을 전전하면서 극단의 사람들이나 다른 배우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밤마다 술에 절어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호텔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지저분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7세의 '제이미'가 홍역을 앓던 중, 둘째였던 '유진'(아들)과 함께 친정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남편의 보고 싶다는 말에 그를 향해 나선 길, 격리되어야 했을 '제이미'가 두 살배기 동생의 방을 기웃거리다가 홍역을 옮기게 된다. '유진'이 끝내 죽자 '메리'는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셋째 '에드먼드'를 임신하면서 더 불안해지고, 출산 후에는 건강이 매우 나빠진다.

그녀의 남편 '제임스 티론'은 가난에 찌든 무지한 아일랜드 사람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6명의 다른 자녀들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오게 되지만, 아일랜드를 너무 그리워하던 아버지가 가족을 모두 버리고 떠나자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학교도 못 다니고 기계공이 되는 등 엄청난 고생을 하다가 배우가 되었다.

런 그는 돈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 구두쇠가 되고, 땅 사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한때 '셰익스피어'를 좋아해서 그의 극을 공연하고 싶어 했지만, 그가 주역을 맡은 연극이 대성공하면서 많은 부를 얻자, 그 돈의 노예가 되어 다른 극을 도전해보지 못한 채 삼류배우로 전락했다.

이 날 하루 동안,

이들 네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면서 이해한다면서,

또 서로를 원망하고 경멸하면서 현재와 과거를 들쑤시며 오간다.

아들은 아버지가 아픈 어머니를 제대로 된 의사에게 보이지 않고 호텔의 싸구려 의사에게 보여서

치료가 아닌, 진통의 모르핀 주사만 맞게 하여 그녀가 마약쟁이가 되었다는 것.

아버지는 돈만 생기면 땅을 사고, 그런 정보를 찾아 사람들을 만나고 술이 취해서야 호텔방으로 업혀왔다는 것.

큰 아들 '제이미'는 둘째였던 '유진'을 질투하여 일부러 홍역을 옮겼다는 것.

성장한 큰아들에게 기대가 컸었지만 대학에서도 짤리고, 술을 먹고 창녀들을 찾아다니며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 것.

그리고 막내아들 '애드먼드'에게도 술과 타락과 부모에 대한, 특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르쳤다는 것.

폐병을 진단받은 '애드먼드' 역시 아버지가, 자신의 병 치료를 위해 보내려는 요양원에 드는 돈도 아까워서 싸구려 주립 요양소로 보내려 한다는 것.

번도 집이란 것이 없었던 가족을 위해 아버지는 이 여름 별장을 샀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 아무도 맘에 들지 않아 하는 이 집. 돈 들이는 것도 아까워서 인테리어도 안 하고, 전기쟁이 좋은 일만 시킨다면서 집안의 전등을 끄고 다니는 구두쇠 아버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이 가족..

메리는 남편에게 너무도 사랑했다면서

혼자 기다렸던 수많은 날들, 잊지는 못하지만 용서는 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자, 혼자 남게 된 그녀는, 불안하다던 그녀는 오히려 간섭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고.

- 중간 생략-

 

가 유진 오닐의 잔인한 가족사를 여과 없이 드러낸 이 책은

장남의 자살과 아내와의 불화, 그리고 마비 증세와 우울증이 악화되었던 불행했던 말년에,

27년 동안 자신을 고통 속에서, 방황케 했던 가족 네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쓴 글이라고, 그 세월이 지나서야 마음에서 우러난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을 바라보게 된다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들어갈 때보다 십 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로는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채로 작업실에서 나오곤 했다"고 그의 아내가 술회를 했다는데 그녀는 고인의 뜻에 따르지 않고 3년 만에 이 작품을 발표한다.

세한 지문들을 따라 읽으며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독서를 해야 했는데, 이 극을 연극해야 했던 배우들은 저런 섬세한 지문들을 어떻게 소화했더랬을지 새삼 궁금했음. 그리고 추녀 끝에 안개가 떨어지는 소리는 어떤 건지? 안개 소리에 귀 기울여 봐야겠는데, 이 동네는 안개가 잘 안 끼네..

 

* 사로잡은 단어:

무적(霧笛) 소리; 안개 ·눈 ·비 등으로 시계(視界)가 나쁠 때, 선박에서는 다른 선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내는 소리

안개 인간.. 애드먼드의 대사 중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72

- 제임스! 우린 서로 사랑해 왔어요! 앞으로도 항상 그럴 거고! 우리 그것만 생각해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걸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어쩔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씨름하지도 말아요. 운명이 우리에게 시킨 일들은 변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거예요. 99



- 과거는 바로 현재예요. 안 그래요?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인생은 그걸 용납하지 않죠.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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