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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는, 그 마술적 리얼리즘에 매료되어, 그리고 'G.마르케스'에 도취되어, 그의 책들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백 년 동안의 고독(1967년 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2004 년 작)」,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9년 작)」, 이웃인 《목요일의 섬》께서 추천해 주신 「사랑과 다른 악마들」..
나머지 책들 모두 좋았지만, 「백 년 동안의 고독」만큼 강렬했던 책은 없다고 보는데, 「사랑과 다른 악마들」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도 그의 고독과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에 충실하다고 본다.
그리고 식민지 국가를 고국으로 둔 작가답게 자신들의 문화, 종교, 삶 전체를 파괴시킨 식민 지배국에 대한 강한 저항감과 비판을, 마술적 현실주의로 표현한 그만의 독특한 유머와 아이러니를 담은 어휘가 빛을 발한다.
특히나 자신들을 지배한 국가(스페인)와 그들의 종교(가톨릭)에 대한 우월감에 지배당한 원주민과 흑인 노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이야기는 콜롬비아 카브리해에 위치한 카르타 헤나라는 지방에서 시작된다.
1533년 스페인이 진출했던 때부터 주교가 파견되었고, 교통의 요지였고, 큰 장이 섰고,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던 곳,
그곳에서 노예상과, 밀가루 거래를 해왔던 카살두에로 후작가문이, 무역이 쇠퇴되고 도시의 쇠락에 따라 몰락의 징조를 보이게 된다.
실제 이야기의 시작은 1949년 10월 리포터로 일하던 작가가 한 세기 전에 병원으로 변했지만, 한때 산타 클라라회 옛 수녀원이 있던 장소를 별 다섯 개짜리 호텔 부지로 바꾸기 위해 납골묘 비우는 작업을 보다가, 아주 오래된 시신들, 주교, 수녀원장, 유지들 가운데 '시에르바 마리아 데토도스 로스 앙헬레스'라는 이름의 시신을 눈여겨보게 된다. 바로 22미터 11센티의 강렬한 구릿빛 머리카락 때문이다. 공사감독자가 인간의 머리카락이 죽은 후에도 한 달에 1센티씩 자라기 때문에 200년 된 시신임을 추정하게 되는데, 작가는 어릴 때 할머니가 들려준 머리카락을 땅바닥에 끌고 다니던 열두 살 먹은 후작 딸의 이야기를 떠올려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 밝힌다.
이마에 흰 반점이 있는 회색빛 개가 '카살두에로 후작'의 외동딸 '시에르바 마리아(이하 마리아)'의 다리를 문다.
노예항에서는 노예들이 의문의 떼죽음을 당하자 은폐하려고 시신에 돌도 매달지 않고 바다에 던져버리고, 시체들이 수면으로 떠오르자, 아프리카 역병의 의혹도 생긴다.
그러자 살아남은 노예들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경매에서 후한 값도 받지 못한다.
그 시절은 주인 없는 개들이 사람을 무는 일이 다반사였고, 하녀는 함께 항구 구경을 나갔다가 왼쪽 복사뼈를 물린 '마리아'에게서 상처도 보이지 않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열두 번째 생일잔치를 벌이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다. 얼마후 그 회색 빛 개는 광견병 걸린 개로, 죽임을 당해 매달린다.
'카살두에로 후작'의 부인인 '베르나르다'는 후작의 두 번째 부인으로 천박한 가짜 귀족이다. 아버지와 짜고, 결혼과 사랑에 관심이 없는 후작을 덮쳐서 임신을 하자 협박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마리아'가 칠삭둥이로 태어나자,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아이를 외면해 버려서 흑인 노예 '도밍가'가 키우게 된다.
'도밍가'는 자신이 모시는 성인들에게 이 아이를 살려준다면 결혼식 날까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노예들의 틈바구니에서 춤과, 세 개의 아프리카 언어를 구사하고, 새나 동물의 소리를 내면서 노는 등 그들이 믿는 종교 속에서 야성적으로 성장한다. 가정교사가' 마리아'에게 모국어와 음악을 가르쳐보려고 애썼지만, '이미 이 세상 애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만둔다. 엄마 '베르나르다'는 자신의 딸을 증오하고 더 방치한다.
- 중간생략-
콜롬비아는 1536년부터 1810년까지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는다. 스페인의 가톨릭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으며, 유럽 내 정치, 종교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종교개혁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8세기 말, 서유럽이 계몽에 눈 떠가는 동안에도 스페인은 수구적인 도시를 고집하였고, 종교재판이 1811년까지도 성행하였다고 한다.
콜롬비아에서의 종교재판은 이 이야기의 공간적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근간이 된다.
스페인은 가톨릭과 식민지배자로서의 우월에 사로잡혀
종교의 이름으로 야만적으로 거행되고 묵인되는 행태를 벌였지만
그들이 대서양을 건너 그리스도의 계율을 전파하고자 한, 바람은, 그들의 영혼에 계율을 심는 것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1982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남아메리카의 슬픈 역사와 함께 읽어갈수록 빠질 수밖에 없는 흥미와 깊이가 있다.
작가가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고독'의 반대말이 '유대'라고 했다는데, 이 작가의 주요 테마는 우울과 고독이었던 듯하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 사랑은 할 수 없는데, 性은 또한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해설에서 제목의 악마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독한 사람들..후작, 베르나다, 주교, 수녀원장 같은..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시절의 콜롬비아, 식민지, 종교재판, 수도원, 수녀원, 기울어가는 귀족 가문, 그리고 흑인노예들의 삶-비루하지만 낙천적인 흑인 특유의 여유, 그리고 카리브해, 머리를 한번도 자르지 않은 열두살 소녀의 광기.. 나열하기도 벅차다.

다음 며칠간 두 사람은 오직 함께 있을 때만 평온함을 느꼈다. 싫증도 내지 않고 내내 사랑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지칠 때까지 키스를 나누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인들의 시구를 낭송하고 서로의 귀에다 노래를 속삭여 주고 기운이 다할 때까지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탈진 상태에 이르렀지만 둘 다 여전히 순결을 지켰다. 왜냐하면 델라우라는 종부 성사를 받을 때까지 수도서원을 지키리라 결정했고, 소녀도 그 결정에 동의했던 것이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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