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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평점 :
이야기는 1961년, 독일 이민자들이 터를 잡고 살아오던 소도시, 독일 도시의 이름을 딴, 뉴 브레멘에서 시작된다.
이곳에 이사 와서 5년째 살고 있는 목사 가족,
아버지 '네이선'과 13세의 나 '프랭크' ,11세의 남동생, 못생기고 말을 더듬는 '제이크', 언청이 수술을 한 흔적이 있지만 예쁜 18세의 누나 '에이리얼', 그리고 아름답고 노래를 잘하는 엄마 '루스'..
그리고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살고 있는, '네이선'의 자녀들이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스'..
뉴 브레멘은 고지대와 평지대로 나누어져 있는데, 고지대는 부자들이 살고, '프랭크'의 가족이 사는 평지대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 고지대에는 부자인 외 할아버지가, 외할머니가 사망하고 난 이후 새 외할머니 '리즈'와 함께 살고 있고, '프랭크'와 '제이크'는 할아버지 정원을 돌보고 2달러씩 받아서 돈을 모아, 독립기념일 폭죽놀이용 폭죽을 사려고 한다.
외 할아버지는 목사인 가난한 사위 '네이선'을 못마땅해 하고,
엄마인 '루스' 역시 법대에 다니던 자신만만했던 '네이선'이 법대를 졸업하고 소송 전문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지지하고 결혼했지만 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그는 돌아온 이후, 신학교에 입학하고, 목사 안수를 받는다.
이곳 평지대 감리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남편을 도와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지만, 고지대에 살고 있는 부유한 브란트가의 '에밀 브란트'와 한때 약혼했던 사이였고, 참전 후 심각한 부상으로, 끔찍한 얼굴의 외상과 시력까지 잃어버리고 돌아온 그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에밀 브란트'는 열 살 어린, 자폐아이자 청각장애인 여동생 '리사 브란트'와 함께 살고 있다.
뛰어난 재능의 음악가인 '에밀 브란트'에게 음악교육을 받고 있는 누나 '에이리얼'은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할 예정이고 그녀에겐 브레멘 경제의 핵심인 양조장 집 아들 '칼 브란트'라는 남자친구도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리사 브란트'는 오빠 '에밀 브란트'를 집착에 가까운 애정으로 돌보며 정원 가꾸는 일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좋아하는 단 두 사람, 바로 그녀의 오빠 '에밀'과 말을 더듬는 '제이크'뿐이다.
그해 여름, '바비콜'이라는 '프랭크' 또래의 좀 모자라는 친구가 철로 근처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철로를 걷던 '프랭크'는 '제이크'와 함께 철로 아래 떠돌이 남자의 시체를 본다. 그 시체의 곁에 있던 원주민 수 족의 노인과 함께..
그리고 연이은 죽음들
자살을 시도했던 '에밀 브란트',
익사체로 발견된 너무도 사랑했던 가족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죽은 '칼 브란트'
그리고 거칠게 사는 건달 '모리스 엥달'까지
그리고 서사의 중심에 있는 전쟁의 상흔들
2차 대전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 전쟁에서, 인간이 그렇게 죽으면 안 되는데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보아왔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남자들..
'에밀 브란트'가 아버지 '네이선'이 그리고 아버지를 아직도 대위님이라고 부르는 '거스', 술에 취해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가족을 폭행하는 '클레멘트'..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극복(?) 해 가는 과정, 의심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아파하다 결국엔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그리고 함부로 담을 수 없는 말 용서.
인간은 시련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다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들을 최대한 유예하고 싶을 뿐이라고..
근데 아버지 '네이선' 목사의 장례식 이후 설교의 말이 진짜, 꾹꾹 눌러 담는 아픔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주검을 최초로 목격하기도 하고,
비밀을 몰래 듣고, 범인을 추리하고, 최종 범죄자가 누구였는지를 알아가는 나 '프랭크'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아픔들이 묻혀지고, 비밀이 없던 작은 마을 뉴 브레멘이 지나갔다.
40년 이후 그해 그 여름을 기억해내고 있는 프랭크..
철(鐵)로 만들어져서 늘 그 자리에 단단하게 있지만
鐵路(철로)는 늘 움직인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도 뿌리를 단단히 내린 나무처럼 우뚝 서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흘러갈 것이고, 그 가는 곳의 도착지는 죽음일테고..
죽음은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죽은 자 역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 "무서웠어, 근데 호기심도 생기더라, 그래서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멈춰 서서 죽은 병사를 한참 살펴봤어. 독일군이었지. 아직 앳된 소년에 불과했고. 프랭크 너보다 두세 살 많을까.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어린 병사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전투 경험이 많은 병사 하나가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나한테 그러더라. ‘익숙해질 거야, 아들.‘ 정말로 아들이라고 불렀어. 나보다 어렸는데도 말이지". 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근데 그 병사의 말이 틀렸어. 얘들아, 죽음에는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더구나." 아버지는 두 팔을 허벅지에 대고 가끔 혼자 교인석에 앉아 기도할 때처럼 두 손을 맞잡았다."전쟁에 나가야 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 나가야 한다고 느꼈어. 전쟁터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근데도 죽음은 충격이더구나." 아버지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짙은 갈색의 눈에 자상함과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너희가 절대로 보지 않게 막아주고 싶었는데, 결국 오늘 보고 말았구나. 그 얘기를 하고 싶으면 하렴, 들어줄 테니까." 65-63
행복이란 게 뭘까, 네이선? 내 경험으로는, 길고 험난한 길을 가는 중에 중간중간 잠시 쉬었다 가는 것, 그게 행복이던데. 항상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행복이 아니라 지혜라는 변덕스럽지 않은 미덕을 갖게 되길 바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107
-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모르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우리가 간과한 어떤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 언젠가는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로 아침을 맞아 노래하는 새처럼 낭랑한 에어리얼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라는 희망.
반면에 아는 것은 오직 죽음만을 가져왔다. 에어리얼의 죽음, 희망의 죽음, 내가 처음에는 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상실의 의미를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될 어떤 것의 죽음.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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