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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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 한번 읽어야지 했던 [모비딕],, 이 작품이 이리 오래된 건지도 이제사 알았음..

'리바이어던'은 구약 성경 '욥기'에 나오는 지상 최강의 괴이한 동물로, 신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크다 하겠다. 작가는 고래를 그 '리바이어던'에 견준다. 그러고 보니, 세상의 동물 중, 고래가 가장 큰 것도 같다.

육지에서는 코끼리 정도 되려나?

이 글의 화자이자 최후 생존자인 '이슈메일'은 '지갑이 바닥나고, 육지에 딱히 흥미를 끄는 것이 없을 때' 그리하여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혈액순환을 조절하기 위해 늘 쓰는 방법이 바다에 나가는 일'이라 한다. 한편으로는 '엄청난 자제심이 필요할 때, 권총과 총알 대신에 쓸 수 있는 것이 바다로 나가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명상과 물은 영원히 결합되어 있다고도 한다.

'눈언저리가 흐릿해지고 허파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시작할 때 언제나 바다로 나가는 버릇이 있다'고도하는데,

그는 거대한 고래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한데, 경이롭고 신비한 괴물에 대한 호기심과, 섬처럼 거대한 덩치로 파도를 헤치며 나가는 거칠고 먼바다와 고래가 일으키는 형언할 수 없는 위험들과 수많은 목격담에 따르는 경이로움이 그것이다.

포경선의 일개 선원으로 먼 여정을 떠나기 위해 포경선 출항지로 가장 유망한 '낸티컷 항구'로 간다. 싸구려 여인숙에서 작살잡이와 한 침대를 쓰게 되는데, 그 작살잡이는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야만인이며, 식인종인 '퀴퀘그'이다.

한 번 떠나면 삼 년의 여정을 바다와 고래와 상어와 악천후와 사투를 벌일 고래잡이들은, 많은 죽음의 교훈들을 묻어둔, 그들만의 예배당에서 출항 직전 예배를 드린다. 역시 고래잡이 출신인 목사는 '요나서'를 설교한다.(요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다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자,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을 보내며 기도로 구원받은)

' 퀴퀘그'는 어느 섬 추장의 아들로 자라나서, 포경선을 보고는 기독교 세계를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기독교도에게 배워서 자신의 동족들을 계몽시키고 훨씬 행복하고 선량하게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지만, 쾌락을 추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도들도 비참하고 사악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친구가 된 그들은 곧 출항할 여러 척의 포경선 중, 매사추세츠의 유명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딴, '피쿼드'호를 선택한다.

그 배의 선장은, 향유고래 '모비딕'에게 다리를 잃은 외다리, '에이 헤브'이다.

그리고 일등 항해사 '스타벅'과 이등 항해사 '스터브'와 삼등 항해사 '플래스크'가 있다. '퀴퀘그'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작살잡이가 된다.

고래잡이는 지구에서 가장 덜 알려진 외진 곳을 찾아내는 개척자이고

시도 때도 없이 명상에 잠기고 온갖 상념에 사로잡힌 플라톤주의자나, 낭만적이고 우울하며 넋 나간 젊은이들이 지상의 괴로운 걱정거리에 진저리 나 얼이 빠져있을 때 선택하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이슈메일' 역시 위에 열거한 낭만적인 이유보다는 고래잡이가 어떤 건지 알고 싶었고, 세상을 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포경선의 선원을 자처했던 것이다.

향유고래는 가장 사납지만 당당한 풍채를 지녀,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이들 무리를 떠나 혼자 다니는 하얀 고래 '모비딕'은 모든 사람의 영혼 속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무섭기 짝이 없기로 유명하다. '에이 헤브' 선장은 일본 앞바다에서 이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었다. '모비딕'에 대한 편집광적인 복수심으로 가득 찬 그는 출항 이후 오랜만에 나타나 선원들에게 그 사실을 밝힌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말 못 하는 짐승한테 복수라니! 그 고래는 단지 맹목적인 본능으로

공격했을 뿐이데, 이건 미친 짓이에요, 말 못 하는 짐승에게 원한을 품다니, 천벌을 받게 될 겁니다. p216-217

- 무서운 노인네! 내 위에 누가 있느냐고 그는 외친다. 그렇다. 그는 자기보다 위에 있는 자들에게는 민주주의 자이지만, 자기보다 밑에 있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위세를 부리며 떵떵거리는가. 오오! 나는 내 초라한 처지를 분명히 본다. 나는 반항하면서 복종하고, 동정하면서 증오한다. 그의 눈 속에서 지독한 비애를 읽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슬픔을 가지고 있다면 힘없이 쭈글쭈글 시들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세월은 한없이 흐르는 것이다. 작은 금붕어가 어항 속을 제 세상인 양 헤엄쳐 다니듯이, 미움받는 고래는 이 세계의 온 바다를 헤엄쳐 다닌다. 하늘을 모독하는 그의 목적을 하느님이 옆으로 밀쳐내주실지도 모른다. 내 심장이 납처럼 무겁지만 않다면 들어 올리고 싶다. 하지만 내 시계 전체가 태엽이 풀려서 멎어버렸고, 내 심장은 모든 것을 억누르는 무게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다시 심장을 들어 올릴 열쇠가 없다. 223-224

반대하고 말리는 '스타벅'과 다르게 모든 선원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이슈메일'은, '에이 헤브' 선장의 원한에 격렬하고 불가사의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망망대해를 떠다니면서, 작가의 고래와 고래잡이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들이 나열된다.

다른 포경선들을 만나면, 보트를 내려 방문하고 사교도 나누고, 편지도 전해주고 안부도 묻는데, '에이 헤브' 선장은 꼭 흰고래를 보았느냐고 묻는다. 참고래나 다른 향유고래들을 잡고, 경뇌유를 추출하면서 '모비딕'을 만났던 적도 부근으로 가는데 마침 '모비딕'에게 공격당해서, 아들이 탄 보트가 실종된 선장이 도움을 요청하지만, '에이 헤브'는 거절하고 '모비딕'을 만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구멍 나서 물속으로 가라앉은 부표를 새로이 만들고

나침판도 새로 만들고

'에이 헤브'가 직접 '모비딕'을 공격할 작살도 새로 만들어 준비했지만

세 번의 추적 끝에 결국엔 '모비딕'에게 당하고, '에이 헤브'는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이어 그들의 배도 가라앉았으나 관으로 만든 부표에 의지해 '이슈메일'만 살아남는다.

한때 열병이 난 '퀴퀘그'를 위해 짜두었던 그 관이 더없이 훌륭한 부표가 되었다.

엄청난 여정, 엄청난 글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포경선을 그리며 며칠간 함께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나 독백 등이 연극적인 요소로 느껴져 한편의 희곡 같기도 하다.

한때 '에이 헤브' 선장과 만난 영국 포경선의 선장은 '모비딕'에게 팔을 잃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고, 다른 고래를 찾아 여전히 포경선의 선장이 되어, 고래잡이를 하지만, 괴짜 선장 '에이 헤브'의 격렬한 복수심은 모든 것을 다 잃게 했다.

이미 이 끝을 불길하게 내다본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두고 온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떠올리며 역시 처자를 두고 온 '에이 헤브'선장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쓰지만, 그는 끝내 그 광기를 거두지 않는다.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상호가 이 소설 속 일등항해사 '스타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럽 전역에서 약탈을 일삼던 바이킹족의 일부가 이국땅에 정착해 '스타벅'이라는 부족으로 불리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고래잡이를 하게 되자, 바이킹족의 후예답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들의 무용담에 사로잡힌 '하먼 멜빌'이 이 소설 속에서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일등항해사의 이름을 '스타벅'이라고 지었다 한다. 그리고 [스타벅스]의 공동 설립자인 '제럴드 볼드윈'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소설, [모비딕]의 일등항해사의 이름을 따 [스타벅스]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고래잡이배에 오르는 젊은이들의 일부가 저 위의 내용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고래잡이 생활은 매우 열악했다고 한다.

본문의 내용에 잠깐 언급되지만, 미루어 추측하기를 흑인과 야만인, 식인종 나이 많은 대장장이, 목수, 급사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삼 년을 항해하게 되는데 철저히 계급적이며 선장의 위엄은 또 어마어마했을 거라고 추측이 된다.

실제로 포경선은 엄청 비위생적이었고, 고래잡이들이 매우 저질적이고 난폭했으며, 선장은 선원들을 학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거친 풍랑만큼이나 거친 인생들이 고래잡이로 나서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 포경선의 1회 여정이 3년이란 것도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그런데 고래는,

동물원에서 말고

바다에서 배를 타고 다니다 만나는 고래는

어떨지를 상상하며 읽느라 한 번씩 격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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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3-24 20:28   좋아요 0 | URL
Call me Ishmael. 을 이제까지 번역과 다르게 번역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도시 이야기와 함께 유명한 첫 문장!
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던 책입니다1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실레스트 잉 지음, 이미영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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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셰이커 하이츠는 최초의 계획도시 공동체이다. 가장 진보적이며 젊은 이상주의자에게 완벽한 이곳은 완벽하게 정돈되고 모든 것이 풍부하게 채워진 저택들이 있다.

도시의 이상주의인 셰이커 하이츠의 호화로운 집들은 엄격한 양식과 법규와 색상 코드에 따라 지어졌고, 이웃의 동의 없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되팔지 못한다는 계약 조항이 있다. 이들 공동체는 통일되고 아름답게 유지하려는 규칙과 법규와 질서가 필요한데 예를 들자면 모든 곳이 잔디밭과 정원으로 넘쳐나도 꽃만 키우고 채소는 가꾸지 못하는 등, 자신들의 공동체가 미국 최고라는 자부심과 완벽한 곳에서 누리는 완벽한 삶을 꿈꾸는 곳으로 자선과 다른 사람들을 개화시키는 일에도 관심들이 있다.

이 도시 공동체 유지를 위한 온갖 규칙들을 마을 사람들은 잘 준수하고 있다.

이 도시의 '엘리나 리처드슨'(이하 '엘리나')은 지방 신문의 기자로 변호사인 남편 '리처드슨'과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고3 딸 '렉시', 고2 아들 '트립', 고1 아들 '무디'와 중3의 딸 '이지'.

완벽함을 추구하고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살고 있는 '엘리나'는 3대째 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동물보호단체와 유니세프에 기부해오면서, 지역의 자선행사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을에 그녀가 소유한 작은 아파트에 두 세대 정도 세를 놓고 있는데 홍콩 출신 이민자 '양 씨'와 미혼모인 '미아'와 그녀의 딸 '펄'을 새로운 세입자도 받아들인다.

'엘리나'는 뭔가 인생에서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에게만 세를 놓는다는 철학도 가지고 있었다.

'미아'는 사진 작업을 하는 예술가이다. 이들 모녀는 자주 이동하며 사느라 사춘기인 딸 '펄'은 그동안 누구와도 진정한 친분관계를 맺지 못했다.

이들은 이 마을에 오래 정착하려고, 다짐하고 세 든 집에 짐을 푸는데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미아'는 식당 등 여러 곳에서 일을 한다. 고1의 딸, '펄'은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며 매사 진지하다.

이들 두 가족은 너무도 달라서 서로에게 끌린다.

규칙들을 따르며 옳고 그름을 헤아리며 사는 것이 몸에 밴 '엘리나'에게 계획 없고, 자유로운 예술가적 기질의 '미아'가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펄'은 동갑내기 친구 '무디'를 따라가본 '리처드슨'네의 풍요롭고 넉넉한 분위기와 그들이 지닌 자신감에 매혹되어 자주 방문하게 되고, 그 가족에 심취하기까지 한다.

'엘리나'는 '미아'에게 자신 집의 가사도우미 일도 부탁한다.

'리처드슨'의 네 자녀 중 막내 '이지'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데 매우 특이한 아이이다. 그녀는 고집스럽고 거칠고 불같은 아이, 외골수이며 독립적이다.

엄마 '엘리나'는 늘 흥분하고 분노하며 막내를 대하고 '렉시'언니와 '트립'오빠는 늘 그녀를 놀린다. 진중한 '무디'오빠만 그녀를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이지'는 늘 겉돌며 혼자의 시간을 엉뚱한 상상을 하며 지내는데

'이지'는 새로 온 가정부 '미아'의 친절함과 열려있는 사고, 가난한 예술가의 자유로움에 매혹되어 그녀의 집에 따라가 사진 일을 돕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지'에게 '미아'는 장난과 규칙 위반을 즐길 줄 아는 능력과, 자기 마음속 타오르는 것과 비슷한 파괴적 불꽃을 지닌 동지로 여겨져 푹 빠져버린다. '미아'역시 '이지'를 보면서 자신의 어릴 때 모습, 가족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 예술가적 기질로 살아왔던 터라 둘은 잘 통한다.

'펄'은 '리처드슨'네 집으로 '이지'는 '펄'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펄'은 그들의 여유로움과 경제적 자유로움에 매료되어 자신이 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을 상상해보듯

'이지'는 '미아'가 자신의 엄마가 되는 것을 상상하는 듯

'펄'은 동갑내기 '무디'와 학교나 집에서 붙어 지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트립'오빠를 남몰래 좋아하게 된다.

'렉시'는 흑인 남친 '브라이언'과 점점 대담한 연애를 즐기고..

어느 날 미술관에서 성모상 사진 속에 '미아'의 모습을 발견한 '이지'는 그 사진의 정체를 알아내달라고 엄마 '엘리나'에게 부탁하고,

'엘리나'는 그 사진작가, 페미니스트 사진의 개척자 '플린 호손'을 찾아 '미아'의 과거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예술가 '미아'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매우 이상한 선택으로 '펄'을 임신했었고

그 임신은 미대의 수업료를 위한 선택이었고, 임신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자 했으나 사랑했던 남동생의 사고사로 장례를 위해 찾아간 부모들에게 들킬 수밖에 없었고, 죽기 전에 그 사실을 알고 걱정하던 동생과의 통화들과 부모의 경멸을 받으면서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 살고 있었다.

                             중간생략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좋은 내용 같다.

그리고 '엘리나'와 '미아'의 삶을 비교하면서

사회의 많은 규칙들에 이끌려 사는 나를 떠올렸지만

실은 내가 스스로 만든 쓸데없는 규칙들에 노예가 되어있다는 사실도 자꾸 각성하게 된다.

미국의 많은 문제들을 가볍게 이야기한다.

청소년의 성에 대한 자세와 낙태 문제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자기 삶들이 결정되어지기엔 인간이 너무 장수하는 건데..

나 나 또 다른 사람들이 여기던 옳고 그르다는 기준,,

아침에 법륜 스님의 즉 문 즉답에,, '요새 같은 세상에 그런 것은 흠도 안돼'~ 하던 말

아무튼,, 나는,,

'미아'의 열리고 자유로운 예술가적인 생각을 부러워하면서 늘 호기심 가득하게 지향하고는 있지만

땅속에 내린 뿌리는 '엘리나'처럼 규칙에 얽매이고, 옳고 그름의 경계를 자로 긋듯 하면서 평온한 삶을 지탱해온,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겠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보고 자라난 환경 탓, 교육의 탓인 듯,,

실은 나도 '엘리나'도 한 번씩 반신반의를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에 그런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침입자에게는 매우 분노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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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잎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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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위대한 작가이자,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가 쓴 최초의 소설, [썩은 잎],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집]'이었고,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출판될 때는'[낙엽]'이었다 한다.

'썩은 잎'은 미국 자본주의를 뜻한다고..

미스터리한 인물인 의사가, 간밤에 목을 메 죽었다.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하느님도 믿지 않았고, 게다가 자살한 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에 마을 사람들도, 교회의 신부도, 읍장도 협조적이지 않고 여러 브레이크가 걸린다.

한 때 이 마을의 유일한 의사였던 그는 마을 사람들의 진료를 거부하고 집안에서 칩거만 해오던 차라, 마을 사람들의 오해와 원성도 자자했다.

그 집에 열 살짜리 남자아이와 그의 어머니 30세의 '이사벨', 그리고 대령 출신의 외할아버지 삼대가 나타나 시체를 수습해야 했다.

이 소설은 짧지만, 콜롬비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다른 그의 소설들처럼..

'천일 전쟁' (1899년-1902년)이라는 3년간의 콜롬비아 내전이 있고, '바나나 회사의' 정체를 먼저 인터넷으로 뒤져봐야 한다.

이 이야기는 1928년 9월 12일 두시 반에서 의사의 관을 매장하려고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절차를 기다리는 세시까지,,

三代가 각자 회상해내고, 지금의 심경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손주와 딸과 대령이 각자의 화자가 되어 단락을 구성한다.

대령과 그의 아내는 전쟁 중에 피난민들이 세운 마을 '마콘도'에 정착했다.

'마르케스'의 상상의 땅,' 마콘도'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 이어 이곳에도 등장한다.

오랜 내전 중에 방랑하던 이들 부부에게 '마콘도'는 약속의 땅, 평화의 땅, 보물이었다.

대령의 아내는 딸을 출산하고 죽고, 1년 후 대령은 재혼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25년 전, 1903년, 대령의 집에, 낯선 사내가 찾아왔다. 추천장을 들고 나타난, 채식주의자 그 의사는, 당나귀들이 먹는 풀을 먹겠다한다.

그는 마을에서 유능하고 유일한 의사였다.

하지만 미국의 바나나 회사가 들어오면서 회사 노동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들을 데려와 진료소를 설치하게 되자, 그는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경고한다.

우리 가 '썩은 잎' 에 익숙해지면 이 모든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될 것이오

바나나 회사가 마을을 쥐어짜내고 철수하자, 폐허가 돼버린 마을에서, 사람들은 부상자 치료를 위해 다시 그를 찾지만, 그는 다 잊어버렸다면서 진료를 거부해버린다. 바나나 회사가 떠난 이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원한에 사로잡혔고, 번창했던 과거의 기억과 고통스럽고 활기를 잃어버린 현재의 씁쓸한 상태를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의사의 진료거부는 그들의 현실을 투사하기에 충분했다.

의사는 대령 집에서 수양딸처럼 자란 하녀 '메메'와 함께 다른 집으로 이사한다. 그녀는 그 의사의 첩이 되고, 그가 진료를 하며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한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종적을 감추자 마을 사람들은 의사가 그녀를 살해해서 암매장하였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마침내 마당까지 파헤쳐 본다.

하지만 '메메'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고ᆢ

어느 날 죽음의 위기에 닥친 대령을 치료해 주었던 의사가 자신이 죽으면 매장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대령은 그 시체를 수습해 주려고 딸과 손자를 데리고 그의 집에 나타난 것.

세기말의 콜롬비아 내전과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그 후유증을 갖고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ᆢ

끝내 의사는 어디서 왔고, 대령의 집에 나타나기 전까지 무슨 상처가 있었는지도 밝혀지지 않는..

'마르케스'는 삼십 분간, 三代의 회상과 현재 감정들을 통해 작품을 서술해 나간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비참했던 고국을 떠나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작가가 저항적이고 풍자적인 작품들을 쓰면서 '마술적인 리얼리즘'과 '마콘도'라는 이상향을 탄생시킨 배경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통감하면서 또 한번 위대한 작가의 책을 만나게되었다. 이제 그의 책중 무슨 책이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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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 성석제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0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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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의 블로그는 '세상 부지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 블로그의 유입 검색어 No1은 '성석제'의 [첫사랑]이었다. [첫사랑],,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성석제'의 유머와 해학, 풍자와 페이소스에 감탄하고 감복하고 무릎을 꿇게 했다.

연이어 읽은 그의 엽편 소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간만에 그의 장편을 읽었다.

1996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바로 그 [첫사랑] 속, 조폭들 이야기, 어처구니없고, 단순하고 무식한,, 하지만 어마어마했던 조폭 이야기의 확장판이다.

그 이야기들 중 1995년에 발표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마사오'와' 청바지'와 '청카바'이야기,,

사나이라면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소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 그 손을 놔버리는 거야." p214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책의 중반부 이상쯤 되어서 였지만 ..

나,, '장원두'에게 '마사오'는 지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였고 마음속에 간직한 시생대였다. 가장 오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 가난, 불의, 불평등에 시달리던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 아이들에겐 우상이요, 어른들에겐 왕이었던 인물이었다.

그 '마사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온 한동네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오랜 동무 '박재천', 그의 전화를 받고 '장원두'는 시외버스를 타고 지역으로 내려간다.

- 가긴 가야지. 가긴 가야지.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자꾸 내 뒤통수를 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보내긴 보내야지. 마음속에서 오래전에 죽었든, 지금 죽었든 갈 사람은 가고 보낼 사람은 보내야지.

일단 간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는 박자는 4분의 4 박자 행진곡풍이었다가 4분의 3박자 춤곡으로 변했다가 박자고 뭐고 사람을 데리고 노는 듯이 제멋대로 변했다. 그러므로 가지 않고서는 내 가슴 때문에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12

이 소설은 죽은 '마사오'의 장례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장원두'의 어린 날 신화를 남긴 존재와 자신의 지난날에 대해 회상하고, 그때의 사람들을 만나고 온갖 풍문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넘나드는,, 일종의 로드 소설쯤 된다.

일제 시대 일본 순사의 끄나풀쯤 되었던' 마사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당당하게 지었지만, 해방이 되자, 마을 사람들에게 흠씬 얻어맞고, 외지로 떠돌며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사오'의 가족은 이웃들과 왕래 없이 가난하게 살았고, '마사오'는 전쟁 후 고아 같이 거리에서 자라난다. 그는 타고난 체격과 체력과 정신으로 희대의 건달, 쌈꾼, 깡패의 기질을 보였다.

그에게는 '미쓰꼬',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광자'라고 불리던 아주 못생기고 몸집 좋은 누나가 있었다. 그녀가 열일곱에 이웃 홀아비의 아이를 갖게 되자 '마사오'가 낫을 휘둘러 그 홀아비의 한쪽 눈을 실명시켰다. 소년 교도소로 갔던 그는 5-6년 후 무성한 일화와 신화와 함께 지역으로 돌아온다.

군에 입대한 '마사오'는 국군체육부대에 배속되어, 미들급 동양 챔피언의 스파링 파트너로 열 일 하지만, 맨날 KO 패 당하다, 비겁하게 이겨보고는 탈영을 한다. 총 여섯 번

'마사오'가 제대하기 전부터 그에 관해 떠돌던 신화를 듣고 자란 나, '장원두'는 그의 광신도가 되고 광신자가 된다. 그리고 광자 누나와 친하게 지낸다.

- 마사오의 그런 모습은 그 후 갖가지 신화를 낳기에 충분했다. 사실은 효모가 들어간 밀가루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적당히 첨삭이 되고 장식이 된 다음 잘 구워진 빵과 같은 신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신화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지워질 수 없이 되풀이되고 공고하게 되었을 때에 마사오는 완전히 돌아왔다. 지역 전체의 신화와 기억이 그를 위해 미리 마련해둔 왕좌에 올라가 앉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34-35

- 인물은 저 혼자 인물로 나서 인물로 살다가 인물로 죽는가? 아니다. 처음부터 인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인물은 우리 각자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 인물을 존경하면 그 인물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는 사랑받을만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그리워하면 그는 정말로 그리운 인물이 돼준다. 동시에, 내가 그를 싫어하면 그는 금방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누구에게나 싫은 인물이 되고 내가 그를 증오하면 그는 누구에게나 증오를 받는 인물이 된다. 37-38

그의 과자 심부름을 했던 어린아이가 자라나 외지에 나가 살다가

자신을 기억하는지도 모르는 그의 사망 소식에 나고 자란 지역을 찾아 나서지만

막상 그 장례식은 적적하기 그지없다. 정승집 개의 죽음과 정승의 죽음 이야기처럼..

- 낮술에 취한 사람의 얼굴처럼 붉은 해가 기울어가고 있다. 선산에 걸린 해는 중천에 떠 있을 때 보다 훨씬 커 보이고 위엄이 있다. 해의 크기가 아침에 다르고 한낮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 것은 아니다. 해가 아침이나 저녁때 가깝고 한낮에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뜰 때, 또 질 때의 해는 우리가 아는 산과 나무와 구름에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것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자는 하찮고 일상적인 것이 가까이 있을수록 더욱 위대해 보인다.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마사오였다. 그는 지역 전체를 통틀어 비교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가 위대한 만큼, 그의 몰락도 장엄해야 했다. 죽음은 특별해야 했다. 그게 그렇지 않다면 세상 이치는 엉터리고 내가 믿는 신념과 가치와 신화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100

그리고 퇴색한 늙은 건달들과

'재천'과 나와 어울려 가출을 했던 또 싹수가 노랗던, 소싯적 건달 싹들을 만나고

첫사랑,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절세미인 '나 세희'와

부자가 되어 지역에 호텔을 지으러 찾아온다던 가출 멤버 중의 '조 대경'.

'마사오'의 죽음 이후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박재천'과

그와 경쟁 구도에 있던 다른 동지들과의 암투, 경쟁, 함정, 죽음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이미 '마사오'를 배신했었고

인정사정없는 '조창용'의 조직 밑에서 이인자 노릇을 하던 '박재천'은

'조창용'이 죽자, 왕이 되어보려고 하는데,, 조직을 등에 업었다는 '조 대경'의 귀환에 지레 겁을 먹고 건달들을 쓸어모으며 '장원두'더러 증인을 서라 한다.

신화 속 '마사오'는 구체적인 조직도 없었다. 그는 정식으로 조직을 만들지 않은 혼자 힘으로 떠오른 해였다. 그의 영향력은 경찰, 의원, 지역 유지들에게도 미친, 인간적인 보스였다.

하지만, '조창용'은 조직의 시대, 칼의 시대, 관리의 시대를 연, 깡패였다.

그는 '마사오'가 되고자, 신화 속 인물이 되고자 하여, 지역에 폭력조직을 도입해 뿌리를 내렸다지만, 신화가 없는,, 즉, 위엄과 자비가 없는 존재였다.

'광자' 누나는 '장원두'를 남자로 만들어준 여인이었지만

'장원두'의 첫사랑은 '나 세희'였다. 어린 날, 버스 운전사가 되겠다던 '장원두'에게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던 그녀 '세희'.

'마사오'의 처제였던 어물전 집 딸, '세희'는 '조 창용'의 여자가 되고, '원두' 곁에 잠시 머물려 들 때,, '재천'에게 낚여버린다.

장례식장에 서있을 때도 '재천'과 나란히 서있을 때도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고 눈이 부시다.

- 그녀는 십 년 전과는 달리 반말을 하지 않았다.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서로가 적절한 위치에 서서 객관적으로 서로를 관찰할 수 있는 거리를 의미했는데, 스무 살을 조금 넘은 젊은 남녀에게 그 거리만큼 관능적인 거리는 또 없을 것이다. 또 그 거리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일만큼 아슬아슬하고 흥분되는 일은 없는데 그녀는 현명하게도 미리 거리를 확보해둔 것이었다. 다만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기술로. 나는 그녀의 기술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기술을 돋보이게 하려고 끝까지 반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252

-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네 사내가 둘러앉아 있다. 그녀는 어느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선천적인 거리 감각이 있는 듯하다. 사내를 애달케 하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 붙잡으려 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그 거리.....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으로 정복할 수 있는 일방적인 거리...... 이 거리를 아는 자가 역사를 변화시켜온 여신족이다. 269-270

이야기는 대격전을 암시하며 흐르다가

평화롭지 않게 평화로운 듯이 마무리되지만

'성석제식' 유머와 해학은 역시나,, 몇 구절에서 입꼬리를 올리며 흐느끼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침이라도 흐를 지경으로..

남자들은 이런 신화를 간직하고 살고 싶나 보다.

그래서 수렵시대에는 벌거벗은 채로 떼 지어 몰려다니며 수렵을 떠나고

땅따먹기 종족 간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흘러갔고

뭔가를 위해 투쟁을 해야 했고

정복하고 싶어 했고

투쟁 거리가 없으면,, 스포츠를 죽기 살기로 하거나 보거나 이고

정치판을 싸움판같이 변질시키기도 하고

그래서 레슬링을, 스모를, UFC를,

이소룡을,

깡패 영화를 만들었나 보다.

'성석제' 님의 깡패 이야기 속 깡패들은

이쯤 되니,, 어처구니없게 귀엽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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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교향악 펭귄클래식 39
앙드레 지드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앙드레 지드는' 신교도였던 아버지와 가톨릭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가 죽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어머니와 살면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종교와 도덕적으로 엄격했던 어머니의 가정교육이 평생 자신의 삶과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친듯하다.

2세 연상의 외사촌 누이와 결혼해서, 순결한 사랑을 위해 성적인 결합은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지만, 자신의 욕망은 사내애들에게서 채워왔다 한다. 친구의 아들과 몇 달을 함께 지내기도 하는 등으로 부부간의 갈등도 컸다고ᆢ

그의 사촌 누이와의 사랑과 사랑관은 [좁은 문]이나, [앙드레 왈테르의 수첩]등에 잘 나타나 있다.

[전원 교향악]은 내면의 일기 2편으로 구성된다.

며칠간 계속 내리는 눈으로 인해 세상과 격리되자, 목사는 일기를 적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가 2년 반전에 죽어가는 귀머거리 노인 집에 방문했다가, 눈먼 소녀를 데려오게 된다. 의식 없는 짐 꾸러미처럼, 영혼 없는 살덩어리 같은 어린아이를..

"무슨 짐을 짊어지고 왔느냐?"라는 아내의 잔소리와 비난이 이어졌지만

그는 종교적인 신념으로서 그 아이를 기꺼이 데려왔고,

그 아이를 거두어주고 싶었다. 그의 집에는 이미 여섯 자녀가 있었다.

캄캄한 잠을 자는, 자는 것과 깨어있는 것이 다를 게 없는 아이, 목사는 자신의 사랑이 이 영혼으로부터 캄캄한 암흑을 쫓아버리게 허락해달라고 자신의 신께 기도드린다.

하지만 벼룩과 이가 우글거리고, 표정이 전혀 없고 정신발육이 느려, 동물의 울음소리와 신음소리만 내고 있던 그 아이의 모습에 직면하자, 열의가 얼어붙기도 했고,,

사랑이 사랑엔 보답하는 것과 다르게 그 영혼의 완강한 거절 앞에서 혐오감이 절망에 이르게 하고 후회와 무관심이 일 즈음, 미덕의 정원 같은 아내는 그 아이를 더 정성껏 보살펴준다. 목사의 가족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제르트뤼드'라고 지어준다.

그리고 의사의 조언을 얻어 그 아이를 가르쳐 나간다.

마침 신학대학에 다니던 아들 '자크'도 돌아와서 도움을 준다.

그 아이에게 조금씩 변화가 온다. 무표정했던 얼굴에 미소가 일어나는 순간은 광채였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인 '제르트뤼드'에게 색깔을 가르치는 일이 어려웠다.

- 그리고 교향악에서 각 악기들이 맡은 역할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레 색 문제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제르트뤼드에게 금관악기와 현악기, 목관악기의 서로 다른 음색과, 그것들 각각이 자기 스타일에 따라 더 강하게 혹은 더 약하게 가장 낮은 음에서부터 가장 높은 음에 이르기까지 전 음계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또한 자연의 붉은색과 오렌지색은 호른과 트롬본의 음색과 유사한 것으로, 노란색과 초록색은 바이올린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음색과 유사한 것으로, 그리고 보라색과 하늘색은 플루트와 클라리넷과 오보에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 애의 내부에서 생겨난 일종의 황홀감이 모든 의혹의 자리를 채워 나갔다. 39-40

그리고 목사는 '제르트뤼드'를 데리고 연주회에 간다. 그 아이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었던 [베토벤 전원 교향곡]이 마침 연주되었다.

- "목사님께 보이는 것들은 정말 그것만큼 아름다운가요?"

"무엇만큼 아름답다는 말이니? 사랑스러운 내 아이야."

" 그 '시냇가의 풍경만큼 말이에요.'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교향곡의 화음들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있을 수도 있었을, 만일 죄와 악이 없었더라면 가능할 수도 있었을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 즉답을 피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제르트뤼드에게 감히 악과 죄와 죽음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 상태였다. 이윽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는 행복을 모른단다."

"그렇지만 볼 수 없는 저는 듣는 행복은 알아요."그 애가 곧바로 큰소리로 말했다. 42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제르트뤼드',, 어느 날 목사는 자신의 아들 '자크'와 함께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아들의 고백을 듣는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혼도 하고 싶다고..

그리고 '제르튀르드'의 고백도 듣는다.

그녀는 목사를 사랑하고 있다고..

친구 의사의 노력으로 희망적인 그녀의 눈 수술 일정이 집히고 그즈음, 목사는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된다.

- 주여, 당신은 우리를 위해 이토록 깊고 아름다운 밤을 만드셨습니까? 저를 위해 만드셨습니까? 포근한 바람이 불어오고, 열린 창 사이로는 달빛이 비쳐 듭니다. 저는 하늘의 무한한 침묵에 귀 기울입니다. 오, 당신에 대한 삼라만상의 황송한 마음의 경배, 그 경배 안으로 말없이 저의 마음도 황홀하게 녹아듭니다. 저는 열렬히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만일 사랑에 어떤 구속이 있다면 그 구속은 당신의 것아 아니라 인간의 것입니다. 오! 저의 사랑이 비록 인간의 눈에는 죄짓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당신에게는 경건하게 보인다고 말씀해 주세요.

저는 죄라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제게 죄는 어쨌든 견딜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스도를 저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요, 저는 제르트뤼드를 사랑함으로써 죄를 범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제 가슴을 캐내버리지 않는 한 저는 제 마음에서 이 사랑을 캐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지요? 제가 만일 이제 와 그 애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저는 동정심에서라도 그 애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애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 애를 배신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애는 저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주여, 저는 당신밖에 모릅니다. 저를 인도해 주소서. 때때로 저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그 애가 되찾게 될 그 시력이 마치 제게서 빼앗아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96-97

자연의 법칙은 인간과 하나님의 법칙이 금하는 것을 허락하기도 한다고 아이에게 말하는 목사,,

그는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 애의 사랑이 필요하다고까지 한다.

'제르튀르드'의 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돌아오는데,,

그 아이가 꽃을 꺾으려다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사고가 일어나고,

자리에 앓아누운 그 아이가 목사에게 고백을 한다.

자살하고 싶었노라고~~

그 아이는 눈을 뜨게 된 후 세상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의 걱정 가득한 모습이 보였노라고..

-"목사님, 나의 목사님. 목사님의 마음과 삶에 제가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목사님은 잘 알고 계세요. 목사님 곁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는 그 점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가 저 때문에 슬퍼하는 다른 분의 자리였다는 것도요. 저의 죄는 바로 그 점을 좀 더 빨리 깨닫지 못했다는 거예요. 저에 대한 목사님의 사랑을 이미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목사님이 저를 사랑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것부터 잘못된 일었었어요. 이제서야 제 눈으로 직접 수심이 가득한 그분의 가엾은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자 저는 그 슬픔이 저 때문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요. ... 그렇지만 목사님은 자책하지 마세요. 그냥 저를 떠나게 내버려 두시면 돼요. 다시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세요." 104-105

그리고 로마서 7장 9절을 이야기한다. 목사에 대한 사랑이 죄였음을 깨닫게, 보게 되었다는 것..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자크'가 그녀에게 성경 구절을 읽어주었고, 특히나 이 부분이, 그녀가 눈을 뜨자, 율법을 깨닫게 되자, 모르고 살았던 어리석음을 깨닫고 비로소 죽게 되었다는..

그 아이가 눈을 떴을 때 곁을 지키던 '자크'가, 사실은 자신이 사랑했던 모습이었노라고 고백했다.

그 아이는 정신 착란과 고통 속을 헤매다가 세상을 떠난다.

목사의 아들 '자크'는 아버지의 과실을 본보기 삼아, 개종하였고, 수도사의 길을 떠난다.

죽기 전 그 아이도 '자크'와 함께 개종하였던 사실도 알게 된다.

목사는 눈멀어 있을 때 그 아이에게 세상은 [전원 교향곡] 속의 느낌처럼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줬어야 했나?? 이 순수한 영혼에게 죄와 악과 죽음을 가르쳤어야 했나?

눈뜬 후 목사의 아내를 보면서 그녀가 누려야 했던 것들, 자신에게 빼앗긴 자리에 대해 죄책감으로 못 견뎌 했던 '제르튀르드',,

그렇다면 이 목사님은 뭔가??

종교적인 사랑을 실천하려다 인간적인 사랑의 함정에 빠져든..

이미 아이를 여섯이나 낳고 함께 사목일을 하는 아내에 대한 목사의 시선이 참 재미나다.

그리고 종교적인 합리화로, 아들의 사랑을 방해하고 그릇된 사랑을 품다니,,

'앙드레 지드'는 이런 모순으로, 자신의 이상한 결혼생활처럼 그렇게 평생 고뇌했는지도 모를 일..

그러나, 오랫만의 고전은,, 마음을 참 평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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