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1970년대의 아일랜드 이야기이다.

종교와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이곳은 영국과의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의 북아일랜드이다.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하였다. 그리고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되었다.

19세기부터 영국과의 분리 시도를 해왔지만 영국과의 끈을 버리려 하지 않는 북아일랜드의 신교도들로 인해 비극적인 내전이 끊임없었고, 1921년엔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신교도(성공회)가 주를 이루는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의 일부로 남아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지배 적였던 아일랜드는 급변하는 사회 변화 속에서 몇 유명한 사건에서 보듯이 세속화 추세가 가속화되며 권위가 약화되기도 했지만 전 국민 인구의 90% 이상이 여전히 가톨릭 신자라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은 종교적인 갈등은 곧 정치적인 갈등이 되어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폭력과 유혈사태가 난무하는 나라의 이미지,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은 영국의 속국(?)으로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의 이야기이다.

인류사에서 이들만큼 고난을 격은 민족은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나라였다고도 하는데,

한국인이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이라는 묘사가 있듯이

남과 북의 분단, 피 식민지의 경험과 강렬한 민족정신, 음주 가무를 즐기는 민족성, 노인공경과 대가족의 전통, 자녀 교육열 등이 유사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강대국 곁에서 겪은 수난의 역사로 한 (恨)의 정서가 공통으로 흐른다 하는데

유럽 국가들 중 민족적 자부심이 가장 강한 나라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며,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 성장, 정치적 자유 등이 전통적 가치와 성공적으로 결합된 나라로 꼽힌다. 유럽의 최빈국에서 10년 만에 고도로 성장하여 선진국으로 도약해 1인당 GDP가 세계 3위이다.

북아일랜드의 종교적인 갈등은 영국계 이주민(신교파)들이 대다수인 사회에서의 소수 구교파들에 대한 차별이 주를 이루어 대립한다.

이분법적인 종교 상황은, 이분법적 정치 상황을 대변하고, 물 건너(영국), 길 건너(국가수호자-영국의 일부이기를 원하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국가와 이곳(국가 반대자-아일랜드로 독립)을 양분한다.


정상적인 죽음이 드문 곳, 폭력적인 죽음이 난무한 이곳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극단적이다.

비극적인 사건들은 끈질기고 견고한 정치적 문제를 근간으로 끊임없이 일어난다.

가족 중, 끔찍한 죽음을 겪은 이가 없는 이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래서 피해 망상의 시대이고, 칼날 위에 선 시대이고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시대, 혼란의 시대에 '나'는 서있다.

이곳은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한 취급을 받고, 말들은 왜곡되고 날조되고 과장된다.

'나'와 '밀크맨'의 불륜설처럼..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굳이 변명하려 들지 않는다.

어차피 엄마도, 가족도 믿어주지 않으므로..

이 극단적이고 끔찍한 시대, 전장이나 다름없는 그 거리에서는 어떤 관점을 갖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19세기의 안전하고 문학적인 생각에 빠져 지내는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책 읽는 일을 즐긴다. 그리고 달리기를 즐긴다.

그런데 일촉즉발의 이 사회에서는 그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안전하지 않아서, 자연스럽지 않아서, 튀기 때문에 위험하단다.

이 사회는 온갖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해 상식적인 것이 상식이 아니고 상식이 아닌 것이 상식인 사회, 상식이라는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한 취급을 받는 곳이다.

'나'보다 스물세살이 많은 유부남 '밀크맨'이 국가 암살단이 쏜 총에 맞아 죽은 날은, '나'를 오랫동안 스토킹 해오던 '아무개 아들 아무개'가 내게 총으로 찌르려 들며, 고양이 같은 년이라고 욕을 한 날이다.

열여덟의 '나'는 10명의 자녀들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죽었고

'나'의 큰언니는 자신을 배신한 전 애인을 잊지 못하고 큰 형부와 사고 친 후 결혼을 했는데

이 자는 '나'와 언니들에게 끈질기게 접근하고 치근덕댄다.

'나'와 '밀크맨'의 루머를 만들어낸 이도 바로 이 큰 형부이다.

'밀크맨'은 책 읽으면서 걷고 있던 '나'에게 접근했다.

위험하다고 자신의 차를 타라고..'나'는 그 차에 타지 않으려고 끝끝내 버틴다.

그 후로도 그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 나타나고 사라져버린다.

 

-이하생략-

https://blog.naver.com/su430/222529543862

 

 

내가 19세기 문학에 치중하는 까닭 중 하나가 전화 같은 현대적이고 골치 아프고 불편한 물건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지기 직전에 다음 약속을 정했고 일단 한 약속은 꼭 지켜졌다. 우리가 대체로 전화를 불신하는 까닭은 전화가 기술적인 물건이고 비정상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했지만 ‘더러운 수작‘이나 비공식적 도청이나 국가의 감시 도구로 쓰인다고 본 탓이 컸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사적인 용도로는 전화를 쓰지 않았다. 사적인 용도란 연애 같은 민감한 용도 말이다. 34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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