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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ㅣ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호불호가 있으나 그의 에세이는 그렇지 않다'는 어떤 이웃님의 글을 보다가 문득 이 에세이를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됨..
원래 에세이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지라 좀 망설이기도 했었으나,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라든가. 음악이라든가, 음식이라든가 등등 그의 글감에 대한 그의 생각과 소소한 것도 흘리지 않는 예리하고 차분한 관찰력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의 인생과 인생에 대한 태도를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음에 꽤나 유익했다.
제목처럼 전체적으로 차분하다. 장황하지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고 하여 억지스럽지 않고 심플하고 담백한, 세련된 작품이었다. 물론 일본의 문화(대중음악, 가정식)나 다른 작품 에서처럼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는 작가의 일본어 유희에 대해서는 번역이라는 중간 벽이 하나 있으므로, 또 잘 모르므로 한계가 있었으나 번역도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우주비행사의 원시적 광경에 입을 헤~벌리고 웃다가 빨간 떡 12개를 먹인다 하여 새빨간 거짓말이라 표현한다 함이 인상적였다. 그리고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무라카미가 버드나무를 좋아한다고 언급한 점이다.
나도 버드나무 무척이나 좋아한다. 일산 호수 공원에 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 두 그루는 물에 비춰서 네 그루가 되는데 산책할 때 그곳을 꼭 보아야 행복해진다.
어릴 때부터 봄이 되면 버드나무 가지에 물기가 오르고 이내 축축 늘어져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양새를 좋아해 자전거 타고 지나치다가 꼭 내려서 감상을 했던 버릇,
그런 버드나무를 나 말고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무라카미가 처음이었다. ㅋㅋ 공통점 발견에 설레던,,, 그는 '버드나무가 춤추는 소녀 같다고, 휘늘어진다고, 빙그르 턴을 돈다고 표현했고, 영미권에서는 그 가지의 흔들림이 흐느껴 운다고,
일본에선 머리 풀어헤친 귀신을 연상시킨다고, 중국에서는 연인들이 헤어질 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면 다시 돌아온다는'... 하면서 덧붙여 '버드나무라는 식물에는 의인화하고 싶어지는 생명력이 있다'라고 덧붙인다
음식이란 결국 ‘공기 포함인 것‘같다.
- 인생은 남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멋대로 흘러간다.
- 하지만 굵게 만 김밥이란 정말 참 훌륭하다. 여러가지 재료들이 모두 한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 나는 저녁 이후로는 거의 스케줄이 없는 농경민족처럼 생활하기 때문에
- 갓 튀겨낸 도넛은 색깔이며 향기며 씹었을 때 바삭한 식감이며 뭔가 사람을 격려하는 듯한 선의로 가득 차있다. 많이 먹고 건강해집시다. 다이어트 따위, 내일부터 하면 되지 않습니까.
- 인생에는 감동도 수없이 많지만 부끄러운 일도 딱 그만큼 많다. 그래도 뭐, 인생에 감동만 있다면 아마 피곤할 테죠.
- 음악이란 참 좋다. 거기에는 항상 이치와 윤리를 초월한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 얽힌 깊고 다정한 개인적인 정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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