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는 여인(궁녀)의 구강 구조까지 클로즈업을 하는 등 표음문자이자 '설형문자'인 한글의 창제원리를 디테일하게 소개한다.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을 영화를 통해 대중들이 알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한 편의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고, 사실이 그렇다. 천만관객 국내 영화가 너무 많아서인지, 이 영화의 관객이 채 100만을 넘지 못하는 현 상태가 아쉬운 이유다. [영화 <나랏말싸미>(THE KING'S LETTERS, 2018 제작, 2019.07.24 개봉, 954,800명(2019.08.31, 영진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01. 말은 있는데 문자가 왜 없을까, 한글창제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주의(主義)는 프레임(frame)이 그렇듯, 맹목적일 때 고착화될 때 위험해진다.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고, 세월이 흘러 한때 사론이 정론으로 자리바꿈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主義)는 주의(注意)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이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이것만은 우리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세 가지 정도를 꼽으라면 그 첫째가 한글이다. 셋 중 하나로 조선후기에 시작된 민화(民畵)를 꼽기도 한다. 일본의 강점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된 것이 아니라, 상인세력들의 급부상과 양반계급의 몰락 등 자발적인 근대화의 싹을 '민화'의 제작과 거래, 소유 등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광화문 한복판에 세종대왕상이 서 있는 것은 타당하다. 세종대왕이 주도한 한글창제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며, '민족주의'를 얘기할 때, 제1근거가 된다. 그런데, 왜 한글을 창제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결과적으로 애민(愛民)에 따른 훈민(訓民)의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의 4대 왕에 이르러 왜 갑자기 이런 사업이 추진된 것일까? 그 계기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거창한 이유가 아니고 (어쩌면 사소한) '호기심'의 발로라고 본다. 말은 있는데 왜 그 말을 기록할 문자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사소한 호기심은 문자혁명을 이룩했다.
조선창업 프로젝트를 주도한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 공정하게 경쟁하고 건강한 갈등이 있는 그런 나라를 꿈꾸었다. 한쪽으로 치우침으로써 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경계한 것. 세종대왕은 아버지 태종과는 다른 방식으로 왕권 강화책을 도모하는데, 창제한 한글은 결정적인 무기가 된다. 중앙집권의 강화, 민심을 왕정에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문자의 발명이었다. 특권(양반)층이 반발하는 것 또한 당연했다. 한글 창제와 반포를 두고 왕권과 신권이 극렬하게 신경전을 벌인다. 이 영화에서도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창제할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 출발이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에피소드(잘 기억나지 않는다)를 부각시켜야 했다.
철학이든 과학이든, 하드웨어이건 소프트웨어이건 새로움 또는 새로운 것의 창조는 이 호기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불편함의 발견인데, 이 발견이 곧 호기심이고 호기심 때문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고 그 궁금증을 풀었을 때, 발명품이 탄생한다. 한글의 탄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종대왕 제위 시에 현대의 과학에 힘입은 발명품처럼 그런 새로운 창안 품들이 속속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두루 감안할 때, 세종대왕은 호기심이 무척 많은, 그러나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실천적으로 결과물을 낸 과학자이자 언어 철학자가 된다. 이 영화의 영어명은 <THE KING'S LETTERS>다. 난독증도 아니고, 한글의 실체, 한글이 가진 힘을 제대로 홍보한 영화가 역사왜곡 논쟁의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올해 아니 내년쯤의 한글날 TV영화로 방영하는 1순위 영화가 될 것인데, 새삼스럽게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호기심’에 대해 살핀다.
#2. ‘지혜 사랑’(철학) 원천은 호기심, 당대 현실에 대한 실망감에서 시작
"플라톤과 그를 따랐던 많은 철학자에 따르면,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철학의 원천은 호기심입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왜 전지전능한 신이 있는데도 악이 있는지, 무엇이 선을 선으로 만드는지 궁금해 합니다. 심지어 아이들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스벤 브링크만 지음, 다산초당) 29면
덴마크 사람. 철학 강연으로 유명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벤 브링크만의 ‘강의록’(책) 중 일부다. 철학은 우리가 1)지닌 개념을 검토하고, 2)더 명료하게 질문하고, 3)보다 더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철학이 호기심에서 시작된다는,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과는 좀 다른 관점이 있다. 현대 철학자 사이먼 클리츨리의 의견인데, 철학이 ‘실망감’에서 나왔다는 것. 우리 마음에 있는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실망감'이 정치철학에 대한 필요를 낳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열망을 낳았다는 것이다. 한편 크리츨리는 철학은 ‘신이 없다는 실망감’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폭력적이며 불공정한 세상'에서는 선이 끝끝내 승리할 때가 드물고, 악인이 행복하게 살기도 합니다."(앞의 책)
그렇다면 플라톤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는 철학의 출발점이 '호기심'이란 것과, 현대 정치철학의 출발점이 '실망감'이라는 의견은 상호 충돌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학교에서 배웠거나 인터넷에서 읽었거나 역사적 인물로서의 소크라테스도 좋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에서, 크세노폰의 진솔한 회상에서 만나는 보다 진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떠올려도 좋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고, 그것을 억제할 수가 없어 아테네 시내를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지성들, 권력을 쥔 정치가들,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들을 만나 공개토론을 진행했다. 논쟁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인 양, 그의 분주한 행보는 호기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당대의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초기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철학자라면,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현실(정치를 포함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실망감'에서 (플라톤이) 철학하고 교육효과를 늘리려 집필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있었고, 당대에도 직접 혹은 간접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소피스트(연설가들)들이 있었지만, 서양철학의 진정한 출발은 소크라테스-플라톤이라도 보는 데 이의는 없을 듯하다. 서양철학의 전통은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때로는 동양의 사상과 교류했다. 철학자를 뜻하는 영어 'philosopher'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는 '지혜 사랑'을 직접 언급한다. 철학자들에게는 있지만 소피스트들에게는 없거나 결여되어 있는 것, 그 차이를 설명하면서다. 최근 발간된 『철학의 역사』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을 발견한다.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중시하는 지혜란 단지 어떤 대단한 인물이 참이라고 말해주었다는 이유로 믿는 게 아니라 논쟁하고 추론하고 질문하는 데에 바탕을 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지혜는 수많은 사실을 아는 것이나 어떤 일을 하는 법을 아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한계 등 우리 존재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한 것과 거의 흡사한 일을 하고 있다." -『철학의 역사』12~13면, 나이절 워버턴, 소소의책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거의 대부분이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당수는 자문자답,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 하는 질문이다. 질문은 관심, 질문은 문득 고개를 쳐든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앞서 사이먼 클리츨리의 의견(철학은 실망감에서 출발한다)은 소크라테스 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관점에서 아테네를 바라보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기에 미워할 수도 있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테네 정치가들(실력자들)이나 명망가들, 투표권을 가진 시민의 상당수에게 소크라테스는 존재 자체가 불편함이었다. 사형판결로 자명했고, 자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계의 실재에 대한 객관적인 앎, 과학의 출발점도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당대의 아테네 시민들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테네 시내를 배회하는 소크라테스를 불편하게 여겼을까? 호기심의 어두운 면이 있다.
#3. 수다에는 수다 자체 못지않은 큰 악덕이 따르는데, 호기심이다.
플루타르코스(기원후 50년 이전~120년 이후)의 철학에세이 「수다에 관하여」에서는 수다와 관련된 호기심의 실체가 드러난다. 수다에는 수다 자체 못지않은 큰 악덕이 따르는데, 호기심이란다. 수다쟁이는 (무엇이건) 말을 많이 할 수 있기 위해 많이 듣고 싶어 한다는 것, 세상사 이것저것, 근동의 장삼이사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호기심을 갖고, 필요 이상의 호기심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 가짜뉴스가 판치는 작금의 세상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특히 자신의 수다에 새로운 소재를 공급하기 위해서 비밀스러운 또는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꼬치꼬치 캐묻고 돌아다닌다. 그들은 얼음을 손에 들 수 없으면서도 놓으려고 하지 않는 어린아이들과도 같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다쟁이는 남의 비밀을 가슴에 품지만, 그곳에 간직하지 못하면 마치 뱀에게 물리듯 그 비밀에 물리고 만다고. 동갈치나 독사는 새끼를 낳다가 터져 죽는다는데, 비밀도 입 밖에 나오면 누설자를 파멸케 하기 때문이다." -『수다에 관하여_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12장 508c~d
앞서 수다쟁이는 "말을 많이 할 수 있기 위해 많이 듣고 싶어 한다"고 했다. 상대방의 의견을 귀를 기울이는 '경청'은 그 자체로는 훌륭한, 특히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미덕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하려고 듣는, 곧 정보수집 차원에서 ‘엿듣거나’ ‘캐묻는’ 경청은 지양되어야 하는데, 그 동력이 호기심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인용에서는 수다쟁이의 호기심보다는 비밀을 간직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폐단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과도한 호기심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사형된다. 이후 500년이 지난 기원후 100여 년 무렵, 플루타르코스는 수다 관련 글을 썼다. 그런데 이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그리스(아테네)의 황금시기에 쏟아진 저작들과 작품들도 두루 읽고, 사례를 수집하여 집필했음을 인용과 주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처럼 '섬김' 수준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당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할 뿐 아니라 곳곳에서 이야기좌판을 펼치는 수다쟁이, 성가신 존재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보통 사람들로서는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며, 이것저것 관심사가 아닌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대화를 엿보았다면 그랬으리라. 소크라테스 자신이 '캐묻지 않은 삶을 살 가치가 없다'(<변론>)고 재판과정에서 당당히 밝혔다. 그간의 삶이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죽어 저세상에 가서도 이런 철학의 방법론을 고수할 생각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수다는 제자 플라톤에 의해 정리되고 보완됨으로써, 서양철학의 아침 해, 둥근 해로 떠올랐음에도 말이다. 플루타르코스는 같은 책에서 '수다'라는 고질적인 병에서 벗어나는 처방을 한다. 여기에 거론되는 소크라테스를 보면, 소크라테스를 그렇고 그런 수다쟁이쯤으로 폄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호기심은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50%의 확률로 잘못 그리고 과도하게 작동하면 수다쟁이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는 등,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갖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허기나 갈증을 느끼지 않는데도 먹거나 마시도록 유혹하는 먹을거리와 마실 거리를 피하라고 권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수다쟁이는 가장 마음에 들거나 평소 지나치게 심취하는 화제는 조심해야 하며, 그런 화제에서는 밀려오는 말의 물결에 완강하게 저항해야 한다." -『수다에 관하여_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 22장 513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