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계보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시오도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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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은 늘 힘겹고 비참하다. 인간에게도 그렇다. 이를 전제로 헤시오도스는 우리에게 교훈과 함께 경고한다. 인간들은 땀 흘려 농사짓고 배를 타고 장사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었다. 그 어느 날부터? '그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다.

“헤시오도스는 그 원인을 인간들에 대한 신들의 시기심에서 찾는다. 인간들은 분수 이상으로 잘살고 싶어 하고, 그래서 신들이 그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는 것. 신들은 인간적 존재와 신적 존재의 차이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간들이 운명을 개선할 기회가 생기면 신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고통을 부과하여 그 ‘차이’를 유지한다. 이런 경향을 헤시오도스는 인류의 옹호자인 프로메테우스 이야기에서 발견한다. 

신들과 인간들이 재물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을 속여야 했다. 때문에 신들은 화가 나서 양식을 감춰버렸고, 인간들은 더욱 힘들게 양식을 구해야만 했다. 제우스는 불도 감춰버렸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들이 고도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벌로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가장 뻔뻔스럽고 교활하고 멋있게 치장한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갖은 악(惡)을 인간들에게 보낸다(<신들의 계보> 591~612행 참조).“ _『신들의 계보』 (천병희 옮김), <헤시오도스 작품의 이해> 중 정리.


신들의 시기심 발동, 인간 존재와 차이 유지하고 싶어

제우스가 이처럼 여자를 매력 있게 만든 것은 인간들이 "모두 자신의 재앙을 껴안으며 마음속으로 기뻐하게"(「일과 날」 58행) 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일과 날」에서 프로메테우스 관련 기술을, 90행까지는 「신들의 계보」를 따르는데, 이후부터는 독창적으로 전개한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인데, 정확한 번역은 '판도라의 항아리'다. 프로메테우스는 불(火光)을 훔쳐 인간들에게 선물하고 그 응징으로 제우스가 인간들에게 보낸 재앙이다. 이름난 절름발이 신(헤파이스토스)이 제우스의 계획에 따라 '얌전한 처녀와도 같은 것'을 흙으로 빚은 것. 그런데 「신들의 계보」에서는 '얌전한 처녀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뿐 이름은 없다. '판도라'라는 이름은 「일과 날」(47~105행)에서야 등장한다. 판도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과 날」은 자세하게 기술한다. 제우스의 명에 따라 헤파이스토스는 곧바로 '정숙한 처녀를 닮은 것을 흙에서 빚어냈고'(71행) 아테네는 그녀에게 허리띠를 두르며 치장해준다 등등.


'얌전한 처녀와도 같은 것'(신들의 계보)은 판도라(일과 날)

"……그러나 그녀의 가슴속에 아르고스의 살해자인 심부름꾼은/ 거짓말과 알랑대는 말과 교활한 기질을 만들었소./ 요란하게 천둥 치시는 제우스의 뜻에 따라, 신들의 전령은/ 안에다 목소리를 넣고는 이 여자를 판도라라고 이름 지었으니/ 올륌포스의 집들에 사시는 모든 신들께서 빵을 먹고 사는/ 인간들에게 고통이 되도록 그녀에게 선물을 주셨던 것이오." -「일과 날」 77~82행

판도라가 신들이 인간(들)에게 준 선물이라면 그 판도라,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것(82행). 따라서 선물의 주인은 판도라이므로 판도라가 개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녀에게 준 선물’이 그녀에게 부여한 여러 권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제우스가 보낸 선물은 '상자'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항아리(pithos), '판도라의 항아리'(천병희의 번역)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의 아내가 된다. 제우스의 선물을 수령한 이가 에피메테우스다. 그의 형 프로메테우스는 지혜롭기에 사전에 제우스의 의중을 간파하고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 당부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이름에 ‘사전에 생각하는 자’라는 의미가 답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형과는 대조적으로 동생은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에피메테우스)'이었다. 재앙을 당한 뒤에야 그런 줄 알게 되는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상자'가 아니라 항아리(pithos), '판도라의 항아리'다.

이들 형제의 출생(「신들의 계보」 511행 전후 정리)은 이렇다. 복사뼈가 예쁜 오케아노스의 딸 클뤼메네와 이아페토스 사이에서 아틀라스(1,하늘을 떠받들고 있는)가 태어났다. 클뤼메네는 또한 거만한 메노이티오스와 '꾀 많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프로메테우스(2-1)와 '얼빠진 에피메테우스를'(2-2) 낳았다. 

복사뼈가 예쁜 오케아노스의 딸 클뤼메네 & 이아페토스→아틀라스(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클뤼메네 & 거만한 메노이티오스→프로메테우스(사전에 생각하는), 에피메테우스(사후에 생각하는)

에피메테우스가 빵을 먹고 사는 인간들에게 끼친 최대의 재앙은 제우스의 선물, 판도라를 아내로 받아들였다.(<신들의 계보> 507행~514행) '머리가 잘 돌아가는' 프로메테우스가 속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제우스는 '얼빠진' 에피메테우스라는 틈새를 공략한다. 판도라는 '호기심'이 많았다. 본래 인간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처럼 판도라는 인간이 된 것이고, 그 항아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애를 태웠다. 집안 곳곳을 뒤져 항아리를 찾은 그녀는 마침내, 뚜껑을 열고야 만다.


"그러나 여자가 두 손으로 항아리의 큰 뚜껑을 들어 올려 그런 것들을/ 모두 내보내니, 인간들에게 그녀는 큰 근심을 안겨주었던 것이오./ 오직 희망만이 거기 부술 수 없는 집 안에, 항아리의 가장자리 아래 남고 밖으로 날아가지 않았는데,/ 그러기 전에 여자가 항아리의 뚜껑을 도로 놓았기 때문이오." -「일과 날」 94~98행


이와 관련하여 『이솝우화』 358편 중 제일 첫 번째 에피소드 <001.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를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에게 좋은 일은 자주 생기지 않지만 나쁜 일은 날마다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에 대한 해석이다. 


”좋은 것들은 허약한지라 나쁜 것들에 쫓겨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자 좋은 것들이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갈 수 있겠는지 제우스에게 물었다. 제우스가 좋은 것들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에게 다가가되 한꺼번에 몰려가지 말고 하나씩 가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쁜 것들은 가까이 사는 까닭에 늘 사람들을 공격하지만, 좋은 것들은 하늘에서 하나씩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드문드문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판도라(인간들이) 어떤 이유로, 문제의 항아리를 가끔 열 때만, 인간들에게는 좋은 일이 가끔 생긴다는 것일까? 호기심에 따른 결과는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과 부정이 있는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호기심이 발현되어야만 좋은 결과도 낼 수 있다는 것일까?  


<판도라의 항아리와 노동의 탄생2>로 이어짐. 

[알라딘서재]판도라의 항아리와 노동의 탄생2 (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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