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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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수협공판장에서는 왁자지껄 경매시장이 펼쳐진다고 한다. 그렇고 그런 항구가 아니니까, 볼만할 것이다. 가까이에 있지만 아직 가보지는 못하였다. 후미진 어디쯤에서 소매도 가능은 하다는데, 낮에 지나다보니 소매를 금하는 문구가 있다. 그래도 '야매' 구입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어쨌든 그러므로, 보다 가까이에 있는 □□시장에서 반(半)건조 생선을 비롯해 필요한 것은 구할 수 있다.
 

‘가격차이야 좀 있겠지, 그러니까 도매고 소매지’ 그런데 도·소매 시장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 문제라면 문제이겠지‘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있고, 마땅히 밥을 해먹을 상황도 아니라서 한두 개씩 삶의 소품들을 사서 배치하는 동안 매식을 했다. 혼밥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격도 그렇거니와, 아예 문전박대. 외로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이름이 중하(중간 크기의 새우)라던가, 가는 식당다 간장에 절인 그 반찬이 나오는 것이다. 수염과 머리를 뚝 떼어버리고 양념된 간장(게장 양념과 별 차이는 없는 듯)에 빠뜨리는 그런 반찬.
 

‘왜 가는 집마다 이것이 있지요,’ 하니 ‘얼마 전에 많이 잡혀서’,

싼값에 공급되었다는 얘기다. 사실 백반 하면 전라도 백반인데, 깔리는 반찬이 많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단가를 생각하면 고민이 깊어진다. 많이 잡혀서 쌀 때 다량을 확보해서 말리거나(반건조) 절일 수 있다면, 그렇게 가격 저항을 이겨내면서 다양한 찬거리를 확보하는 것. 해서 나는 내가 만드는 첫 반찬으로 간장에 절이는 중하(간장새우)에 도전했다.

깐 바지락도 사가고, 가끔 반건조 생선도 한 묶음씩 사가는 나를 시장 입구의 할머니가 눈여겨보신 모양이다. 마침 중하가 적잖게 잡혔나 보다. 가는 집마다 특유의 플라스틱 바구니에 쌓여 있다. 기회다. 해서 그동안 간장게장(꽃게장은 아니다)을 서너 차례 사먹으면서 비축해준 게장국물을 떠올리고는 만 원어치 중하를 샀다. 하루 전 5천원어치를 사다가 삶아먹은 적이 있는데, 씻어서 데쳤더니 새우 수엽들이 엮어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간장새우는 반 토막인 것이 밥상에 올랐던 것이구나. 해서 문득 사장 할머니에게 문의했다.

 

"요것들, 머리랑 수염 떼고 간장에 담가야지요,"

했더니 할머니 말씀, “아이고 잘도 해묵소, 어지간한 여자들보다 낫소! 요새 젊은 것들은 뭣이 뭔지도 모르고…….” 그나마 '주부'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칭찬으로 느꼈는데(사실 나는 어지간한 식재료에 대해서는 고급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이 분야의 일을 좀 했던 사람이다) 생각할수록 집이 가까이올수록,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장 사장 할머니에게 이런 느낌을 얘기하면 이해하실까, 요리는 여자가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그분에게…….”

 

주문한 책이 왔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2년에 첫 발간된 양귀자의 개정판 소설이다. 읽다보니 책으로는 처음 읽는 것임을 알았다. 아마도 영화로 본 모양이다. 그때는 샐러리맨으로 정신없을 때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중하 1만원어치를 구매하면서 받은 이상한 느낌을 사장 할머니에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나의 리뷰다.

 

"나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하나의 시작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러므로 나는 반을 이루었다." -강민주의 노트에서(책 269면)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사례가 될 수 있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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