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우리들의 이야기 - 1980년 5월,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광주서석고등학교 제5회 동창회 엮음 / 심미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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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목포 구도심, 국도1호선과 2호선의 기점임을 알리는 표지석 뒤로 일제강점기 시절 (구)일본영사관 건물이 서 있는데, 지금은 사적 제289호로 지정, 근대역사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근대역사관 본관에 전시되어 있는 '결전' 식기. 우리 입장에서는 해방의 그날이 다가오던 무렵,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모든 쇠붙이를 징발해갔다. 놋그릇을 수탈하고 대신에  사기 밥그릇을 공급했는데, 주발에는 ‘결전(決戰)’이라는 글씨를 로고처럼 새겨놓았다. '두껍아, 두껍아' 살피다가 떠올린 동요 한 대목이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이 어느덧 39주기를 맞이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해보니 5.18 이전과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해보니 프로야구가 생겼고, 때가 되어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흑백TV 시대가 가고 컬러TV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국풍81>이라는 듣보잡 축제를 아마도 컬러TV로 보았을 것이다. 야구광인 형님을 따라 멀리 시골 농촌마을에서 광주까지 가서 무등경기장에서 열리는 프로야구를 관전했던 기억이 있고, 오래지 않아 그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랬구나, 역사의 저 편으로 잊히기를 바라는, 세력들이 있었구나, '결전' 식기를 보다가 왜 이런 기억을 상기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랬구나, 역사의 저 편으로 잊히기를 바라는, 세력들이 있었구나,

39주기를 맞이하는 5월의 첫 날, 의미 있는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인터뷰에 문득 저자 중 한 분이 등장했다. '편의대'라는 낯선 이름, 현역 군인들이 근무하는 군부대 이름이라는데 부마항쟁 때도 광주  5.18 때도 이들이 시위군중 속에서 이른바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미군의 정보원으로, 보안사 일원으로 당시 활동했다는 두 분의 증언도 폭풍 급이었지만, '편의대'라는 단어를 기억의 창고에 보관하게 된 일이야말로, 2019년 5월 광주의 특별한 일이 아닐까 싶다.

 

당시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공수부대가 집단 발포를 할 때 총상을 입은 사람, 시위대원으로 위장한 계엄군 ‘편의대’에 의해 고문을 받고 영창에 갇힌 사람,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진압할 때 가까스로 탈출한 사람, 가두방송으로 유명한 전옥주 씨의 가족이 자취방 옆집에 살아 누나가 간첩혐의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사람, 공수부대원에게 붙잡혀 전남대와 광주교도소에서 46일간 고초를 당한 사람---.

 

광주광역시 한 고등학교 5회 동창생들이 자신들이 체험한 5월 광주 이야기를 엮은 책,
『5.18, 우리들의 이야기-1980년 5월,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광주서석고등학교 제5회 동창회 지음, 심미안, 2019-05-01) 이야기다. 이 책은 광주서석고 제5회 동창회(회장 임영상)에서 1980년 5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동기들의 5·18민주화운동 체험담을 기록한 것이다. 모두 12명으로 구성된 ‘5·18체험담출판준비위원회’는 한 사람이 각 30여 명의 동기들을 대상으로 2년여 동안 체험담을 수집, 정리했다.
준비위원 중 한 사람인 고재철 님(광주 전남공업고등학교 교사)의 <역사의 현장이 된 자취방>이 첫 번째 글인데, 누나와 여동생, 셋이서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였는데, 2층 옆방에 살던 부부 중 아저씨의 여동생이 가두방송으로 유명한 전옥주 씨였다는 것. 인터뷰에서 소개된 '편의대' 부대원의 활동을 증언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시민군 트럭에서 검도를 가르치는(이 학교는 체육시간의 일부를 검도에 할애한다) 선생님이 타고 있어 조우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당시 광주서석고 3학년이던 졸업생 61명이 참여했다(아래 사진은 이 책의 뒷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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