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 내용 자체가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우리나라에도 많지 않나? 

그렇다면 이 책의 어떤 점이  

‘일본 아마존 에세이 부문 1위’에 오르게 만든 걸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책을 끝까지 읽어냈고, 

나는 ‘공감·위로 에세이’의 어떤 새로운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봤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독자의 편을 드는 위로나 

독자의 마음을 계산하는 공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독자는 그렇게까지 엎드려 절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상술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기본에 충실하는 게 먼저다. 

우선은 작가가 솔직하게 자기 생각과 얘기를 풀어놓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나 위로를 불러일으키려 노력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단지 솔직하고 무심한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면 독자는 알아서 위로를 받고 공감을 얻는다. 

(마치 SNS나 유튜브에서 ‘진정성’을 중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적당히 속이는 건 모두가 알아챈다.)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은 말로만 남을 구할 수 있으니까. p. 197-198

 

이 책의 작가도 위로나 공감에는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태도로 글을 써 내려간다.  

글에는 솔직함이 묻어나고, 내보일만한 일관된 가치관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글들은 듬성듬성 흩뿌려져 있다.  

문장들이 파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적인 지점이다. 

모든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런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기 글을 늘어놓는 것뿐이다. 

독자는 그 파편화된 글을 읽어내려 가다가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은 무시하면 되는 거고,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면 거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것은 좀 더 능동적인 ‘위로와 공감 얻기’라고 볼 수 있겠다. 

진정성 있는 문장들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독자가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어디서부터 펼쳐 봐도 상관이 없다. 

정독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각자 꽂히는 문장이나 문단을 주섬주섬 주워가면 그만이다. 

 

그렇게 파편화가 계속되다 보면 일관성이 깨지는 일도 일어난다. 

책의 초반부에는 이런 남자는 이렇다, 이런 여자는 이렇다 하면서 

이성의 유형을 단정 짓는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쌍팔년도’라는 표현이 절로 나올 정도) 

그런데 후반부에는 오히려 그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당신 앞으로 아무하고도 사귀지 마. 그 사람한테 실례야. 남의 가치관이나 뜬소문에 의존해서 연애하는 사람을 어느 누가 만나겠어? 그러면 당사자가 너무 불쌍하잖아.” p. 302

 

“(…)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죽어서라도 지켜야지. 남들한테 휘둘리면 안 돼. 

혼자서 연애해. 그리고 혼자서 실연해.” p. 303

 

책의 모순된 태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가지 중에 마음에 드는 걸 골라잡으면 그만이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글을 늘어놓다 보니, 

어찌 보면 같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이 표현이 마음에 안 든다면, 이 표현은 어때?’ 하고  

친절하게 인용하기 좋은 형태로,  

간직하기 좋은 형태로 계속해서 제안하는 느낌이다.  

같은 챕터 안에서도, 큰 주제 안에서도, 책 전체를 통해서도 

같은 말은 계속해서 다른 문장으로 변주된다. 

‘이 중에 하나라도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겠지!’ 

그리고 읽다 보면 분명히 마음에 드는 문장이 하나쯤은 있다. 

 

책 전체의 일관된 주제나 기승전결이나  

점진적인 서술 따위는 상관이 없다. 

내가 꽂힌 문장이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그저 그 문장에 감탄하면서 몇 번이고 되뇌며 마음에 새기게 된다. 

‘미래형’ 공감·위로 에세이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작가는 모든 글을 핸드폰으로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글은 SNS에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고도 한다. 

이 책의 특징인 ‘파편성’, ‘다양한 변주로 다시 제시하기’ 같은 것들이 

작가의 글을 SNS에 적합하게 만들어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SNS처럼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서치>같은 영화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책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춰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앞으로는 이런 식의 글쓰기나 책들은 더 많아지고  

더 많은 인기를 얻을지 모르겠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독자의 자유도를 제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꽉 짜인 구성에, 

저자의 가르치려는 태도가 도드라지는 에세이라면, 

적어도 젊은이들이 열광하거나  

SNS에서 인기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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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분명히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투항해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일본군, 항왜(降倭).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김충선(일본명 사야가).

만약 그가 원래 조선인이었다면?

그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목을 끌다가 

이순신에 의해 조선인으로 귀화했다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밌는 상상들이 빼곡히 끼어들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임진왜란의 정황은 확실히 새로웠고, 

특히 조총(일본 말로 ‘뎃포’)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들은 눈을 사로잡았다.

  

히로는 뎃포를 들어 가장 좋은 명중률이 나오는 화약량(약 2.5g)을 포장해 둔 종이를 풀고 흑색 화약을 흘려 넣었다. 총구 구경은 탄환 구경보다 조금 컸다. 이 구경과 탄환 구경을 결정하는 것은 옛날 고쿠와리라고 이야기하던 매우 중요한 사격 요소 중 하나였다. 탄환이 구경에 비해서 너무 작으면 위력과 명중률이 낮아지고 너무 딱 맞으면 두세 발 쏜 뒤 더 이상 탄환이 들어가지 않게 된다. 

화약량은 그 사격음에서 적정량을 알 수 있었다. 적으면 ‘수둥’하며 박력 없는 음이 나며 과하면 ‘펑’하며 폭발음에 가까워진다. 화약을 적정량 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p. 188

  

그리고 아주 악랄하게 그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캐릭터도 빼놓을 수 없다.

초중반까지 그는 강력한 악역을 맡아서 긴장감을 끌어낸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는 이야기가 급격하게 무너진다.

먼저 주인공 히로(훗날 김충선이 되는)의 동기 자체가 

상당히 수동적인 것부터가 문제다.

아무리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인물이라고는 해도,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주변 사정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주인공은 매력이 없다.

그 능동성으로 이야기가 동력을 얻는 것이기에 이야기도 힘이 잃는다.

히로는 항상 누군가를 볼모로 잡히거나, 협박에 못 이겨 움직인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히데요시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p. 227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인공 히로가 조선에 투항하는 과정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혼란스러운 정체성 속에 있던 주인공이

조선을 선택하는 이유가 느닷없이 ‘혈통’이나 ‘민족’인 것으로 그려진다.

그것도 아주 본능적으로 그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핏줄이 땡겨서’인 것이다.

그전까지의 수동성은 모두 핏줄이 안 땡겨서였던 건가? 

아니, 근데 그 시대에 민족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긴 했을까.

  

일본군인지도 모르고 이 노인은 기꺼운 마음으로 차를 내왔다. 조선의 병복을 입고 있는 자신은 노인을 속이고 있었고 노인의 성의나 마음도 기만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한없이 끌리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자신도 모르는 그 무엇이 피에 흐르고 있는 것인가. p. 261


히로가 원래 조선인이었다는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 설정이 나중에 히로가 조선으로 귀화를 결심하는 

이유가 되는 게 문제다.


그는 전쟁 중에 죽어나가는 조선인들을 보며 계속해서 괴로워한다.

아기 때 일본으로 건너 간 후 한 번도 조선에 와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일본 제일의 용병 출신의 히로가 ‘무고한 희생자’ 운운하면서 

조선 백성을 가엽게 여기는 것은 일본 백성의 목숨과 

조선 백성의 목숨을 다른 무게로 대하고 있다는 말밖에 안 된다.

조선 백성은 좋은 백성이고, 일본 백성은 나쁜 백성인가.

  

이순신이 사야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조선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네. 정말 좋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남은 생은 정말 좋은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게 어떤가?” p. 367

  

게다가 작가는 초반에 히로의 정체성 변화를 암시하며 

공들여 ‘세계시민주의’를 주창했다.

하지만 뒷부분에 가서는 편협한 민족주의로 이야기를 축소시켜버린 것이다.


“어느 곳이든 네가 살고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면 

되는 거야. 그곳이 고국이고 고향이 되는 거지.” p. 115

  

“이제 결정권은 너에게 넘어갔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네가 직접 결정해야 해. 

너 이외의 다른 사람이 그것을 결정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p. 130

  

국적마저 선택할 수 있다는 진보적 사상을 깔아놓고

종국에 선택하는 건 핏줄이나 민족이라는 낡은 개념이다.

  

작가는 아마도 다수 독자들의 통속적인 민족주의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쪽으로 상업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 같다.

때문에 작품 속 이순신의 모습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다르게 상당히 평면적이고

익히 알려진 성인(聖人)의 모습에 머문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사랑 말고는 다른 욕망은 모두 제거된 듯한 느낌.

또 다른 예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대비를 의식해서 인지, 

전쟁을 맞이한 선조는 과도하게 옳은 말을 늘어놓는다. 

  

“모두 그대들의 당쟁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야. 황윤길과 김성일이 서로 당이 다르니 의견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아니면 황윤길의 의견을 김성일이 따르게 되면 배알이 꼬였나? 수가 뒤틀렸어? 아니야, 아니지. 전쟁을 준비하게 되면 그대들이 가진 권력이 흔들리게 되니 그게 불안했겠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혹여나 놓치게 될까 봐! 혹여 자신의 입에 들어가지 않고 바닥에 흘릴까 봐!” p. 247

  

이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왜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도망이나 쳤던 것일까.

  

작가가 초반에 보여줬던 가능성은 

이런 편협한 애국 주의보다 훨씬 앞서나가는 것이었다.

히로가 오히려 국가관이나 민족관에 자유로웠다면 어땠을까.

그런 그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더 넓어진 인류애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히로의 모습에서 

오늘날 난민들의 모습이 겹쳐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꼼꼼한 자료 조사로 리얼리티를 확보하려던 소설은 

오히려 민족주의라는 기묘한 판타지로 완성되었다.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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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들의 비밀 - 세상을 바꾸는 0.1% 혁신가들의 특별한 성공 법칙 8가지
멜리사 실링 지음, 이주만 옮김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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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나 혁신가들의 괴짜 같은 성향들과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외부적 요인까지 분석한다. 

 

‘나는 혹시 괴짜 천재, 창의력 대장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하지만 천재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신이 평범한 둔재에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그럼 이 책은 소수의 괴짜들을 위한 책일까? 

 

이 책의 진정한 활용성은 둔재인 나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 

더 나아가서는 나의 자녀, 혹은 나의 부하 직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에 있다.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까지 나아간다. 

 

책의 대부분은 에디슨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괴짜들의 

재밌는 일화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서는 둔재들을 위한 팁을 정리해준다. 

소수의 괴짜들에게서 힌트를 얻어 

다수의 범인들이 배울 점을 알려 주는 게 이 책의 강점이다. 

 

괴짜 천재들은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그리고 그들이 이룬 업적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해서도 

인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류에게 소중한 공공재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책’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는 지점이다. 

 

일론 머스크, 토머스 에디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니콜라 테슬라, 벤저민 프랭클린은 (적어도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지식 자원과 기술 자원을 책을 통해 얻었다. 열렬한 독서가들답게 이들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아인슈타인 주변에는 또한 도움을 주는 몇몇 동료가 있었으며 머스크와 에디슨 역시 똑똑한 인재로 구성된 팀이 혁신 활동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훗날 깨닫게 되지만 어릴 때부터 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p. 342

 

상당수의 혁신은 전문분야 종사자가 아닌 문외한들에게서 나왔다.  

우리는 대다수가 서로의 분야에 문외한이 아닌가.  

우리는 어떤 분야의 혁신을 불러올 잠재력을 가졌다. 

 

때문에 공공 도서관이나 공적으로 공개된 논문은 중요하다. 

미래의 우리 아이들, 

어린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 에디슨과 마리 퀴리들이 

더 많은 도서관에서 더 많은 책을 읽으며 

혁신을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시간이나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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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클래식 클라우드 6
백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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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클래식 클라우드 페이스북 페이지에 소개되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1199451826840391/posts/1849327921852775/)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처음 읽어봤는데 정말 재밌게 읽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기획이 참 좋다.

해당 예술가의 팬이라면 누구나 환호하면서 볼 책이다.

팬들을 대신해 작가가 다녀온 여행기 같은 느낌인데, 이게 대단한 호사다.

마치 병실에 누워 있는 대부호가 개인 작가를 고용해서 여행을 시킨 것 같다.

같이 작품도 읽어주고, 예술가의 공간도 방문해주고(사진도 찍어다 준다), 인물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라 쓰고 뒷담화라 읽는다)도 들을 수 있다.

포만감이 대단하다.

     

아마도 현실이란 족쇄에 발목 잡힌 독자들을 위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서글퍼진다.

그만큼 현실도피적인 느낌도 강하다. 푹 젖어서 봤다.

이미 나온 시리즈도 모두 욕심나고, 다음에 어떤 예술가의 책이 나올지 너무 기대된다.

     

하지만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과도하게 친절한 코스요리는 독자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게으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예술가의 작품을 접하지 않고도 마치 작품을 아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예술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질 위험이 크다.

이 책이 주는 포만감 때문에 이 책만으로 만족한다면 누군가가 대신 바라봐 준 시각에서 머무르고 말 것이다. 병실에 누워 누군가 떠먹여 주는 것만 받아먹는 꼴이 된다.

그래서 호사는 호사이되 굴욕적인 호사다. 가장 좋은 건 직접 작품을 접하고 스스로 생각을 모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우려가 들 정도로 책이 꼼꼼하게 잘 만들어진 느낌이다.

백민석 작가는 정말 맛있게 떠먹여 준다. 

나만 해도 헤밍웨이 작품은 『노인과 바다』 밖에 안 읽어 봤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헤밍웨이를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정말 재밌는 전기(傳記)는 사전 지식이 없어도 재밌었던 것 같다.

애플 제품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을 때도 『스티브 잡스』는 재밌었다.

너바나 노래라고는 제일 유명한 ‘그 곡’ 밖에 모르면서도 『평전 커트 코베인』은 감동적이었다.

     

그만큼 작가 선정이 가장 중요한 부분 같다.

내가 읽은 <헤밍웨이> 편의 백민석 작가님은 정말 훌륭한 길잡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시각이 워낙에 절대적인 시리즈다 보니

지나치게 편협하거나 함량 미달인 작가가 맡게 된다면 끔찍한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와 장소,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구성인데,

때로는 겉돌기도 하는 것 같다. 확실히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파리’ 부분은 이상적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모든 걸 떠먹여 주는, 게으른 독자를 위한 책이다.

좋게 말하면 전문가가 총집결한 헤밍웨이의 정수를 맛보는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시작해 자연스레 예술가와 작품에 접근할 수 있다는 면에서 훌륭한 입문서임에 분명하다.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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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뇌는 나보다 잘났다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뇌 과학
프란카 파리아넨 지음, 유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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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면 뇌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것 같은데, 의외로 ‘사회학적’인 뇌 과학을 다루고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오해를 줄이기 위한 뇌 공부다. 그 뇌 공부는 나의 뇌만 들여다본다고 끝나지 않는다. 뇌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성향이 발달했기 때문에 상대적인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다. 


뇌는 늘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고, 끊임없이 그에 맞춘다. 우리의 뇌는 언제나 타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얼마나 자주 주변 사람을 생각하는지! 그러니 뇌를 외따로 관찰하면 뇌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뇌는 ‘복수’로 일한다. 그러므로 두 개의 뇌로 시작해 보자. p. 9-10


 독일인 저자가 쓴 뇌 과학 이야기라고 해서 지레 지루하고 재미없을 거라 걱정을 했었다. 그런 독자들의 생각을 읽었는지 저자는 의외로 풍부한 유머감각을 선보인다. (「우리는 외집단의 사람을 특히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꼭 부정적인 단순화가 아니라도 고정관념을 갖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한다는 식의 관념이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집단에게 이런 식의 범주를 적용한다.」 p. 308)  

 단지, 농담을 던져놓고, ‘(농담)’, 혹은 ‘농담이다.’ 이런 식으로 사족을 붙이는 걸 보면 고정관념이 맞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뇌에 대한 연구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밝히는데, 그러 것치고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쏟아낸다. 빼곡하게 관련 지식이 들어 차 있다. 거의 매 단락마다 새로운 정보가 담긴 느낌이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것도 그렇고 밀도가 높아서 읽어내기 쉽지가 않았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평범한 수준의 책 두께에 비해 종이가 굉장히 얇은 것 같다;;) 유머 감각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과학 정보들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과학 정보를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 사회적 문제를 끌어온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성격이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가 본인의 주장하는 바를 은근히 흘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근거로 가지고 온 정보량이 워낙에 방대해서 산만해졌을 수도 있겠다.  


 책 전체에 걸쳐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답을 뇌에서 찾아보려는 뇌 과학자의 고민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본인의 분야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우리는 갈등하지 않기 위해 다음의 것들을 고려해볼 수 있다. 뇌의 각 구역들과 신경세포, 감정 전염 여부, 호르몬, 인류의 진화사, 각종 실험 결과들을 말이다.” 어려운 뇌 과학을 돌고 돌아 사회적 정의와 윤리 문제를 이성적으로 설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복잡한 설득에 사람들이 변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갔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저자의 의도가 그렇게까지 거창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저자는 정확하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는 뇌를 좀 더 알게 되었고,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 다음번에 걸림돌을 만나면 넘어지지 않고 쉽게 건너뛸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래도 걸려 넘어지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왜 넘어졌는지 정도는 알 것이다. 왜 넘어졌는지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뇌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이다. 뇌 혼자서는 역부족이니 말이다. p. 354


 그럼에도 흥미로운 사실들로 가득 찬 좋은 대중 과학서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급소를 때리는 날카로운 지적들도 상당하다. 사실 우리는 상대를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갈등을 빚는다.(내가 독일인 저자의 유머감각을 지레짐작했듯이 말이다) 그 말은 반대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많은 문제가 풀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두뇌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피지기면 갈등은 없다’. 


타인도 자기만의 머리와 생각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유레카를 외치며 완벽히 내면화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모두 자신만의 입장이 있음을 파악한 뒤에도 두고두고 오랜 세월에 걸쳐 학습해야 하는 내용이다. 정확히 말해 우리는 그 사실을 결코 터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에겐 타인만의 생각과 입장이 있음을 매번 새롭게 기억해야 하며, 그때마다 속으로 꽤나 부대껴야 한다. p. 126


우리는 보통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추론한다. 자기가 모르면 타인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이고, 자기가 알면 상식이라 생각한다. 상식이라는 그 정보가 얼마나 최근에 자기 머릿속에 들어왔는지는 상관없다. 지금 막 누군가의 도움으로 어떤 문제의 답을 알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자기 입장과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며, 자신이 가진 능력은 다른 모든 이를 평가하는 잣대이자 우습게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137


 많은 정보들을 소개하는 저자는 인간 두뇌의 가능성과 한계성 모두를 다룬다. 그 모든 기능들과 효과들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뭐든 적당한 게 좋다, 지나치면 해가 된다, 그런 얘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지만 저자가 주목한 것은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는 인간 두뇌의 유동성 그 자체였다. 저자는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경두개자기자극법은 자기와 타인 사이의 경계가 밀려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 경계는 때로 굉장히 명확해지고, 때로 상당히 모호해진다. 이는 지금까지 다룬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인간은 폐쇄적 개체들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타자를 지각하고, 우리의 뇌 속에는 타인의 감정과 생각이 계속 돌아다닌다. 우리의 말과 행동 역시 상대의 머릿속에서 갖가지 것들을 유발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열린 시스템’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구분하는 것과 열려 있는 것이 필요하다. p. 122-123


 그래서 저자의 소박한 의도는 사실 소박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대범하고 광범위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할 일이 많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더욱 좋아질 수 있도록 현실을 바꾸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p. 317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뇌를 이해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거나, 아니거나.  


결론을 내려 보자. 인간은 그 어떤 종보다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협력하고, 공감하고, 학습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여 유익을 이끌어 내는 것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또한 공동체와 국가를 이루어서 뭔가를 할 수도 있다. p. 353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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