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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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용 자체가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우리나라에도 많지 않나? 

그렇다면 이 책의 어떤 점이  

‘일본 아마존 에세이 부문 1위’에 오르게 만든 걸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책을 끝까지 읽어냈고, 

나는 ‘공감·위로 에세이’의 어떤 새로운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봤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독자의 편을 드는 위로나 

독자의 마음을 계산하는 공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독자는 그렇게까지 엎드려 절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상술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기본에 충실하는 게 먼저다. 

우선은 작가가 솔직하게 자기 생각과 얘기를 풀어놓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나 위로를 불러일으키려 노력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단지 솔직하고 무심한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면 독자는 알아서 위로를 받고 공감을 얻는다. 

(마치 SNS나 유튜브에서 ‘진정성’을 중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적당히 속이는 건 모두가 알아챈다.)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은 말로만 남을 구할 수 있으니까. p. 197-198

 

이 책의 작가도 위로나 공감에는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태도로 글을 써 내려간다.  

글에는 솔직함이 묻어나고, 내보일만한 일관된 가치관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글들은 듬성듬성 흩뿌려져 있다.  

문장들이 파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적인 지점이다. 

모든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런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기 글을 늘어놓는 것뿐이다. 

독자는 그 파편화된 글을 읽어내려 가다가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은 무시하면 되는 거고,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면 거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것은 좀 더 능동적인 ‘위로와 공감 얻기’라고 볼 수 있겠다. 

진정성 있는 문장들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독자가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어디서부터 펼쳐 봐도 상관이 없다. 

정독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각자 꽂히는 문장이나 문단을 주섬주섬 주워가면 그만이다. 

 

그렇게 파편화가 계속되다 보면 일관성이 깨지는 일도 일어난다. 

책의 초반부에는 이런 남자는 이렇다, 이런 여자는 이렇다 하면서 

이성의 유형을 단정 짓는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쌍팔년도’라는 표현이 절로 나올 정도) 

그런데 후반부에는 오히려 그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당신 앞으로 아무하고도 사귀지 마. 그 사람한테 실례야. 남의 가치관이나 뜬소문에 의존해서 연애하는 사람을 어느 누가 만나겠어? 그러면 당사자가 너무 불쌍하잖아.” p. 302

 

“(…)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죽어서라도 지켜야지. 남들한테 휘둘리면 안 돼. 

혼자서 연애해. 그리고 혼자서 실연해.” p. 303

 

책의 모순된 태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가지 중에 마음에 드는 걸 골라잡으면 그만이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글을 늘어놓다 보니, 

어찌 보면 같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이 표현이 마음에 안 든다면, 이 표현은 어때?’ 하고  

친절하게 인용하기 좋은 형태로,  

간직하기 좋은 형태로 계속해서 제안하는 느낌이다.  

같은 챕터 안에서도, 큰 주제 안에서도, 책 전체를 통해서도 

같은 말은 계속해서 다른 문장으로 변주된다. 

‘이 중에 하나라도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겠지!’ 

그리고 읽다 보면 분명히 마음에 드는 문장이 하나쯤은 있다. 

 

책 전체의 일관된 주제나 기승전결이나  

점진적인 서술 따위는 상관이 없다. 

내가 꽂힌 문장이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그저 그 문장에 감탄하면서 몇 번이고 되뇌며 마음에 새기게 된다. 

‘미래형’ 공감·위로 에세이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작가는 모든 글을 핸드폰으로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글은 SNS에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고도 한다. 

이 책의 특징인 ‘파편성’, ‘다양한 변주로 다시 제시하기’ 같은 것들이 

작가의 글을 SNS에 적합하게 만들어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SNS처럼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서치>같은 영화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책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춰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앞으로는 이런 식의 글쓰기나 책들은 더 많아지고  

더 많은 인기를 얻을지 모르겠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독자의 자유도를 제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꽉 짜인 구성에, 

저자의 가르치려는 태도가 도드라지는 에세이라면, 

적어도 젊은이들이 열광하거나  

SNS에서 인기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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