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뇌는 나보다 잘났다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뇌 과학
프란카 파리아넨 지음, 유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면 뇌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것 같은데, 의외로 ‘사회학적’인 뇌 과학을 다루고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오해를 줄이기 위한 뇌 공부다. 그 뇌 공부는 나의 뇌만 들여다본다고 끝나지 않는다. 뇌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성향이 발달했기 때문에 상대적인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다. 


뇌는 늘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고, 끊임없이 그에 맞춘다. 우리의 뇌는 언제나 타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얼마나 자주 주변 사람을 생각하는지! 그러니 뇌를 외따로 관찰하면 뇌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뇌는 ‘복수’로 일한다. 그러므로 두 개의 뇌로 시작해 보자. p. 9-10


 독일인 저자가 쓴 뇌 과학 이야기라고 해서 지레 지루하고 재미없을 거라 걱정을 했었다. 그런 독자들의 생각을 읽었는지 저자는 의외로 풍부한 유머감각을 선보인다. (「우리는 외집단의 사람을 특히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꼭 부정적인 단순화가 아니라도 고정관념을 갖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한다는 식의 관념이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집단에게 이런 식의 범주를 적용한다.」 p. 308)  

 단지, 농담을 던져놓고, ‘(농담)’, 혹은 ‘농담이다.’ 이런 식으로 사족을 붙이는 걸 보면 고정관념이 맞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뇌에 대한 연구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밝히는데, 그러 것치고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쏟아낸다. 빼곡하게 관련 지식이 들어 차 있다. 거의 매 단락마다 새로운 정보가 담긴 느낌이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것도 그렇고 밀도가 높아서 읽어내기 쉽지가 않았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평범한 수준의 책 두께에 비해 종이가 굉장히 얇은 것 같다;;) 유머 감각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과학 정보들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과학 정보를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 사회적 문제를 끌어온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성격이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가 본인의 주장하는 바를 은근히 흘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근거로 가지고 온 정보량이 워낙에 방대해서 산만해졌을 수도 있겠다.  


 책 전체에 걸쳐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답을 뇌에서 찾아보려는 뇌 과학자의 고민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본인의 분야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한 셈이다. 하지만 그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우리는 갈등하지 않기 위해 다음의 것들을 고려해볼 수 있다. 뇌의 각 구역들과 신경세포, 감정 전염 여부, 호르몬, 인류의 진화사, 각종 실험 결과들을 말이다.” 어려운 뇌 과학을 돌고 돌아 사회적 정의와 윤리 문제를 이성적으로 설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복잡한 설득에 사람들이 변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갔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저자의 의도가 그렇게까지 거창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저자는 정확하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는 뇌를 좀 더 알게 되었고,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 다음번에 걸림돌을 만나면 넘어지지 않고 쉽게 건너뛸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래도 걸려 넘어지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왜 넘어졌는지 정도는 알 것이다. 왜 넘어졌는지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뇌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이다. 뇌 혼자서는 역부족이니 말이다. p. 354


 그럼에도 흥미로운 사실들로 가득 찬 좋은 대중 과학서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급소를 때리는 날카로운 지적들도 상당하다. 사실 우리는 상대를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갈등을 빚는다.(내가 독일인 저자의 유머감각을 지레짐작했듯이 말이다) 그 말은 반대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많은 문제가 풀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두뇌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피지기면 갈등은 없다’. 


타인도 자기만의 머리와 생각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유레카를 외치며 완벽히 내면화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모두 자신만의 입장이 있음을 파악한 뒤에도 두고두고 오랜 세월에 걸쳐 학습해야 하는 내용이다. 정확히 말해 우리는 그 사실을 결코 터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에겐 타인만의 생각과 입장이 있음을 매번 새롭게 기억해야 하며, 그때마다 속으로 꽤나 부대껴야 한다. p. 126


우리는 보통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추론한다. 자기가 모르면 타인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이고, 자기가 알면 상식이라 생각한다. 상식이라는 그 정보가 얼마나 최근에 자기 머릿속에 들어왔는지는 상관없다. 지금 막 누군가의 도움으로 어떤 문제의 답을 알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자기 입장과 감정은 보편적인 것이며, 자신이 가진 능력은 다른 모든 이를 평가하는 잣대이자 우습게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137


 많은 정보들을 소개하는 저자는 인간 두뇌의 가능성과 한계성 모두를 다룬다. 그 모든 기능들과 효과들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뭐든 적당한 게 좋다, 지나치면 해가 된다, 그런 얘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지만 저자가 주목한 것은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는 인간 두뇌의 유동성 그 자체였다. 저자는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경두개자기자극법은 자기와 타인 사이의 경계가 밀려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 경계는 때로 굉장히 명확해지고, 때로 상당히 모호해진다. 이는 지금까지 다룬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인간은 폐쇄적 개체들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타자를 지각하고, 우리의 뇌 속에는 타인의 감정과 생각이 계속 돌아다닌다. 우리의 말과 행동 역시 상대의 머릿속에서 갖가지 것들을 유발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열린 시스템’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구분하는 것과 열려 있는 것이 필요하다. p. 122-123


 그래서 저자의 소박한 의도는 사실 소박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대범하고 광범위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할 일이 많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더욱 좋아질 수 있도록 현실을 바꾸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p. 317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뇌를 이해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거나, 아니거나.  


결론을 내려 보자. 인간은 그 어떤 종보다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협력하고, 공감하고, 학습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여 유익을 이끌어 내는 것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또한 공동체와 국가를 이루어서 뭔가를 할 수도 있다. p. 353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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