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인포메이션 - 만화로 배우는 정보와 검색의 모든 것 어메이징 코믹스
맷 업슨 외 지음, 케빈 캐넌 그림, 노승영 옮김 / 궁리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과제를 하는 학생들(특히 대학생들)이나 초보 연구자들이 보고서를 쓸 때 활용할 수 있는 A to Z를 담아낸 책이다. ‘연구주제 정하기’부터 ‘출처 표시하기’까지 전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상당히 솜씨 있게 담아냈다. 광범위한 범위를 압축, 정리해내는 솜씨가 특히 대단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다룬 주제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만 골라도 책 한 권을 써야 해요. 정보 문해력은 기술이지만, 정보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생각해보면 과학이자 예술이기도 하죠. p. 116

 

 각 단계와 주제마다 연습문제까지 붙어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책 자체가 아주 친절하다.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쓰고 있고, 중학생 정도부터는 문제없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무리 만화로 다룬다고 해도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이렇게 친절하게 전달해주는 책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사실 도서관의 분류법 같은 것은 전산화되기 전부터 존재했으니까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해본 사람은 정말 극소수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대학생이라고 해도 보고서 한 번 쓰려면 허둥대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효율적으로 정보를 찾아내 사용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적을 것이다.  

 

 정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고, 그 상태로 대학교에 들어가서 갑자기 자기 주도적인 논문과 보고서를 쓰려고 하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고등학생들이 대학생이 되기 전에 좋은 훈련을 하기에 최적화된 책이다. 

 

 어렸을 적에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책이라는 것의 우주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최근의 전자화된 문서들까지 생각해보면 정보는 실감이 안 날 정도로 큰 우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실제 우주처럼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정보의 분류법을 보다 보면 카오스에 가까울 정도로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정보의 우주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정확한 지점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분류법이다. 이것을 익히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길을 잃고 헤매야 한다. 

 

온 우주가 펼쳐져 있지만 모든 별을 볼 수는 없어요. 너무 많고 너무 멀어서 수많은 별은 어렴풋한 빛조차 볼 수 없죠. 깊은 우주에는 무한한 양의 물질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어요. 맨눈으로는 못 보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p. 81

 

 때문에 도서관 분류에 대한 교육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부록으로 ‘한국십진분류법’이 실려 있는 것도 상당히 유용해 보였다. 세계적으로 그 분류법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정보를 찾는 일은 일종의 가능성과 확률의 문제다. ‘어떻게 하면 그 확률을 비약적으로 올릴 것인가’에 대한 최적의 방법을 알려주는데, 생각해 보면 검색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책이 안내하는 방법들은 실생활의 검색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개념들이 많았다.  

 

 검색어를 더 정확하게 입력하는 법(p. 49)은 말할 것도 없고, 주제 검색(p. 51) 같은 경우는 헤시 태그 검색을 떠올리기도 했다. 절단 검색이나 와일드카드(p. 57)같은 경우는 데이터베이스 검색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웹 검색 챕터(5장)에 이르러서는 일반 웹 검색의 원리나 웹 검색에서의 고급 검색 방법 같은 유용한 정보들도 소개된다. 

 

 압축된 내용이라고 해서 대략적이기만 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업계 간행물 중 대중지와 전문지를 구분하는 팁을 보자. 

 

“간행물의 제목과 기사가 대상 독자나 직업군을 강조하는가? 공통주제가 있는가? 광고가 기사 내용과 관계가 있는가?” p. 65

 

 학술지를 구분하는 법도 있다. 

 

학술지 제목은 대개 주제 분야를 나타내며, 학술지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저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요. 논문 제목은 아주아주 구체적이고 전문적이며 길어요. 논문 자체도 분량이 많으며, 논문을 뒷받침하는 차트, 그래프, 표, 그림이 실리기도 해요. 군더더기나 무의미한 이미지는 하나도 없어요. p. 66

 

 이런 식으로 깨알 같은 팁으로 가득 차 있다.  

 

 더불어 이 책의 훌륭한 점은 검색과 연구 조사에 대한 깊이 있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고, 저자들의 소재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미덥고 꾸준한, 친숙한 별자리를 볼 수는 있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는 없어요. 그 너머를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해요. 하지만 이 모든 쓰레기가 시야를 가리고 주의를 혼란시키기에, 안 보이는 게 많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심지어 깨닫지 못하기 십상이죠. 더 멀리 더 깊이 볼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해요. p. 81

 

(정보나 전문가의) 권위는 만들어진 개념이며 상황에 따라 달라져요. 즉 우리는 누구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이해하는 나름의 체계를 만들지만, 이 체계의 토대는 우리 자신의 경험, 편견, 기존 체계와의 상호작용이에요. p. 92

 

명심하세요. 연구는 모든 연구자들이 공유하고 기여하는 집단적 과정이에요. 여러분 또한 연구자로서 남의 연구를 바탕으로 연구 과정에 기여하는 셈이에요. 남이 해놓은 연구를 이용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게 핵심이에요! 연구가 해마다 확장되는 것은 사람들이 과거의 결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론에 이르고 과거의 발견을 바탕으로 새로운 발견을 하기 때문이에요. p. 99

 

 만화는 작화도 안정적이고 그림체가 귀엽고 예뻐서 친근한 느낌이 든다. 확실히 내용 이해에 도움을 주는 면도 있지만 매 컷마다 쏟아져 나오는 유머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내용의 밀도가 있는데 거기에 다시 만화의 유머도 밀도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식 유머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다.  

 

 책을 읽고 나면 뭔가 자신감이 샘솟는다. 뭐라도 조사 보고서를 써볼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아직 한 번만 읽어봤기 때문에 확실히 마스터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자신감이 생긴다. 역시나 이런 책은 계속 옆에 두고 백과사전처럼 이용하기 좋은 것 같다. 책의 맺음말에도 그런 성격이 드러난다. 

 

모두에게 행운을 빌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바르게 인용하고, 그리고 명심하세요. 이 책을 가지고 계신 한…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p. 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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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방패다 -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힘
최경훈 지음 / 쉴드에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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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좋은 책이다. 다 읽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초반에는 걸리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지켜야 한다. 우리 자신의 생각, 자신의 상상력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책 읽기다. 사람들은 책을 읽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고 지켜나갈 수 있다. 책의 내용에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책에서 찾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분별력이 생기고 생각이 지켜진다. 내용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p. 11


 우선 ‘책만 읽으면 된다’는 과격한 주장에 반발심이 들었다. 모든 책은 훌륭한가? 그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고전? 고전은 무조건 좋은 책일까. 어떤 책은 광고와 다를 바 없는, 오히려 더 심한 프로파간다 아니던가. 생각은 어디에나 있다. 책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 읽는 비판적 능력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단순화시키기도 한다)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딱딱한 저자의 어조에 거부감도 들었다. 자주 논리를 들이미는데, 논리가 옳다고 그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때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인간 아닌가. 어린 학생 가르치는 듯한 교조적 어조로 들리기도 한다. 상당히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뒷부분으로 가면서 이런 첫인상은 뒤바뀐다. 처음에는 무의미했던 논리들이 점점 팩트 폭행으로 다가온다. 결국 나는 그 논리를 수긍하고 녹다운 되고 말았다. 저자가 내세우는 방패는 방패이긴 한데 방어무기가 아니다. 방패에 얻어맞은 느낌이다. 분명히 초반만 잘 견뎌낸다면 얻어 갈 게 많은 책이다. 

 

우리는 모두 달린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달리고 있는 걸까? 지금 우리 옆에 거북이처럼 보이는 사람들, 즉 내 멋대로 경쟁자로 설정한 그들은 과연 정말 느린 걸까?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달리고 있기에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린 걸까? 5,800만 명은 과연 동일한 결승점으로만 달려야 하는 걸까? p. 224


 저자가 말하는 방패는 한국 사회의 획일성을 타파하는 최선의 방편으로서의 독서다. 방패가 아니라 창, 아니 그것보다는 오함마에 가깝다. 때려 부순다는 면에서 말이다. 각 챕터의 주제인 개인의 생각, 개인의 경제, 직장, 교육, 국민 주권, 진실과 인류애까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격파해 나간다. 획일성은 관성 때문에 바뀌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획일성 타파는 곧 관성에 대한 타파다. 

 

지금 관성이 이끄는 삶을 살고 있진 않은가? 삶이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아서 누가 운전대에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그 선택이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을 선택한 이유가 오로지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이다’밖에 없다면 그것은 관성이 이끄는 삶이다. p. 219

 

 그런 타파는 독자들을 어느 정도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느 정도 사회의 흐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가치관이 개인적 가치관으로 내재된 상태에서 사회를 깨부수는 비판은 개인을 깨부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저자는 초지일관 불친절하게 밀어붙이며 절대 달달한 말로 포장해주지 않는다. 진실을 직시하려면 그것은 불가피하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 

 

진실을 마주보기가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고개 돌린다고 진실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삶의 한 자락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진실이다. p. 154

 

 저자가 말하는 ‘좋은 책’의 기능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자신의 책을 ‘좋은 책’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한 듯하다. 

 

작가들은 책의 기능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냥 살아온 대로만 살아가는 것은 편하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해지면 자신의 상황에 대한 진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당신 안에 양심과 자유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p. 85

 

 획일성 타파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다. 나답게 산다는 것. 그것은 모두 똑같은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길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행복의 첫걸음이다. 사회적인 억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내가 될 수만 있다면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남을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그 자체로 그 삶은 충만해진다. 

 

1등이 되려다가 2등으로 죽는 것보다, 나 자신이 되려다가 나 자신으로 죽고 싶었다. 하루를 살아도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다 가고 싶었다. 만약 죽기 전에 관에 누워 마지막 한 마디를 전하고 갈 수 있다면 “1등은 역시 힘들구나…”보다 “나는 나로 살아서 행복했다”라고 말하고 싶다. p. 99

 

 그렇게 얻어낸 자유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가치를 향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이다. 나답게 사는 것에 이어 ‘인간답게’ 사는 것을 제시한다. 내가 유일한 존재로서의 본질을 발현해야 하듯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본질이 실현됐을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해진다. 

 

사실 거의 모든 사회문제의 이면에는 ‘인간성’이 숨겨져 있다. 그것이 이 세상에 숨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비밀이다. 인간성이란 인간의 본질을 말한다. 인간의 본질은 당신의 느낌을 말한다. 사랑, 공감, 믿음, 신념, 감동, 기쁨 등을 느낄 수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런 감정을 충실히 느끼며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답게 사는 것이 가장 후회 없는 삶이 되는 것이다. p. 211-212

 

 그리고 그 모든 인간의 문제는 결국은 사랑을 향해야 한다. 사랑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으로 설명된다. 증오라는 감정 또한, ‘사랑의 완벽한 부재’로 설명된다. 그 사람이 지독하게 악마적인 것은 곧 그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랑은 인간이 느끼는 것 중에 최고의 감정이다. 사랑은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무의미해 보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열쇠이다. p. 250-251

 

 논리적으로 본질을 파고들어 얻은 결과 치고는 상당히 의외의 결론이다. 팩트로 폭행하다가 막판에 감정에 호소하는 느낌. 그리고 그 목소리는 분명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순진한 생각이라고 폄하할 수는 있을지언정, 틀린 생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혹은 저자의 도덕적, 긍정적, 희망적인 태도에 반발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나치게 절망에 익숙해 있다. 한쪽만 바라본다고 나머지 반쪽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희망은 언제나 세상의 반쪽으로 거기 있어왔다. 

 

 내용은 유익한데 반해, 오히려 책과 연결 짓는 논리가 빈약한 편이다. 책 제목을 생각했을 때 치명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책이란 것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의 알리바이 정도로 전락한다. 책을 통해 배워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도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저자가 말하는 책이라는 것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이 세상에 고유한 책이다. 걸어 다니는 한 권의 책이다.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고, 그것은 정말 실체가 있고 실존적인 것이다. 그 단단한 책들이 이 세상에 많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옆에, 그리고 매일같이 마주하는 일상에 있다. 그 사람을, 그 책을 읽어 보자.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책이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책은 생각이다. 사람을 통해 당신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다만, 분명 세상에는 그다지 유익하지 않은 책도 있을 수 있다. 그 책을 피하는 길보다 반면교사로 삼는 길을 찾자. 그리고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무슨 책일까?’, ‘나는 어떤 책일까?’, ‘어떤 책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자. p. 163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 방패로서의 책은, 책 자체가 아니라 책을 흡수한, 좋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 개개인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이루는 혁명은 지나치게 간접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책이 지성과 논리로 무장된 우리 개개인이라면, 그것만큼 빠르고 직접적인 혁명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에둘러 가지 않고 지름길을 택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좋은 책임을 알아채고 나니 막판에 가서는 편집이 아쉬웠다. 좋은 내용을 너무 엉성한 편집으로 엮어냈다. 앞서 말했듯이 도입부 부분의 불친절함이나 과격함도 그렇고, 오타나 잘못된 정보도 간간이 눈에 띈다. 중복되는 이야기나 불필요한 이야기도 꽤 됐다. 그런 부분을 걷어냈다면, 그리고 더 예쁘고 눈에 띄는 표지였다면 훨씬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지 않았을까. 내용만으로 승부 짓기에는 출판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너무 많다. 남 걱정 잘 안 하는 편인데(사실 나 자신이 제일 걱정거리라), 책 내용이 좋다 보니 별 걱정을 다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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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투 퀸 1
무소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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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풍의 황실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소설이다. 하지만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배경의 리얼리티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얼핏 왕좌의 게임 같은 판타지 소설의 갈등 구조도 떠오르지만, 훨씬 치정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퀸’이 되는 이야기가 핵심이 되는데, ‘황제’나 ‘황후’ 같은 단어들과 ‘퀸’이라는 단어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함께 나오고 있다. 판타지 소설다운 분위기라고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퀸(Queen)은 여왕이나 왕비를 뜻하는 단어일 뿐, 황후를 뜻하지 않기도 하다. (황후는 ‘Empress’) 하지만 판타지이기도 하고, 로맨스가 핵심인 가볍게 즐기는 이야기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설정이나 시대 배경 같은 것은 최소한의 수준만 유지돼도 상관없어 보인다. 

 

 그리고 아무래도 계급 호칭들이 한자어로 표기되고 있고, 말투마저 조선시대 궁에서 쓴다고 해도 어색할 것 없는 말투다. 그러다 보니까 등장인물의 이름만 아니라면 동양풍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한 느낌인데, 이때 중간중간 서구풍 명칭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 조성을 돕고 있기도 하다. 로맨스 소설계에 한해서 서양풍과 동양풍은 다분히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우선 치정물답게 정적을 향한 독자의 분노를 끌어내는 방식이 확고하다고 느껴졌다. 독자의 강력한 감정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분명 큰 무기다. 단지 후반부로 가면서 주인공과 조력자들이 도덕적으로 선을 넘게 되면서 선악 구분이 조금 희석되기도 한다. 이후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악녀에게 연민을 가질 여지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 여지도 있어 보인다. 단순한 구도를 넘어서서 캐릭터가 좀 더 복잡해지면 이야기는 더 풍성해질지는 모르지만 단순한 쾌감을 주기는 힘들어진다. 앞으로 작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독자가 작품에 원하는 바가 분명한 장르물이다 보니까 클리셰들이 여러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죽일 듯이 싫어하는 남녀 사이가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상당히 불가항력적으로 이뤄진다. 마음의 변화라는 것은, 특히나 연정의 마음이라는 것이 늘 그런 느닷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서도, 좀 더 다양한 변주를 주지 않는 면이 아쉬웠다.  

 

 황제와 황후라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빈번히 혼자 있는 상태가 된다. 여주인공이 혼자 있는 상태가 되면 곧 황제가 나타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어김없이 뒤이어 비가 내린다.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독자가 이 장르에 원하는 것이기도 할 테니 딱히 불만은 없다. 

 

 작품의 핵심과도 같은 문장, “언니 대신 내가 퀸이 될게.”를 처음 봤을 때는, 언니라는 라이벌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여동생의 욕망으로 읽혔다. 어찌 보면 심술 맞아 보이는 그 욕망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로 선량하게 포장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런 심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소설에서 결혼은, 제아무리 황후가 되는 결혼이라고 해도 불행의 가능성을 내포한 독이 든 성배다. 그 독은 남편의 또 다른 여자를 뜻한다. 곧 남편의 바람이라는 독이 든 성배인 것이다.  

 

 그리고 먼저 결혼한 언니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동생이 있다. 착하기만 하고 요령 없는 언니는, 남자의 바람에 의해(악녀에 의해) 처참하게 실패한 결혼 생활을 한다. 그런 언니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던 동생은,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언니보다는 영악하고 모진 면도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내가-언니 대신 겪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시간을 되돌려 ‘언니 대신 퀸이 되는’ 이야기 밑에 흐르는 감정이다. 

 

 언니 대신 결혼을 한 동생은 정적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그 분노는 자신과 언니 이중의 것이기에 훨씬 강렬하다. 하지만 그 분노에 쉽게 꺾이는 악녀라면 재미가 없다. 악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더 위험한 음모를 꾸민다. 그래서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못하고 계속된다. 아마 영원히 안 끝날지도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인 페트리지아는 든든한 여성 공동체를 구성한다. 자신의 언니 페트로닐라, 호위 무사인 라파엘라, 시녀인 미르야. 이들의 공동체는 신분 차에도 불구하고 평등하다. 황제로 대표되는 남성적 공동체는 권위적이고 수직적이다. 황제는 함부로 모두에게 반말을 한다. 그런 권위주의는 황제 본인에게도 해롭다.(또 다른 클리셰인 남자 주인공의 ‘상처받은 여린 마음’은 그런 뉘앙스를 풍긴다) 페트리지아의 여성 공동체가 상대적으로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사실 <레이디 투 퀸>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권력의 정점에 서는, ‘왕비’가 아닌 ‘여왕’이 최종 목적지이길 기대했다. 물론 1권의 내용만으로 결론 내리기 힘들겠지만, 그런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인 페트리지아가 황제를 대신한 섭정을 통해 느끼는 것은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한 황후는 힘이 없다’라는, 다소 김 빠지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다시 ‘남편의 여자’라는 자리로 돌아와 ‘남편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 ‘남편의 권력’을 대리하는 치정 싸움에 집중하게 된다. 권위주의에 대한 염증을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자기에게 직접 주어진 권위를 거부하고 남자를 통해 권위를 얻으려 하는 건 우스꽝스럽다.

 

 이것을 로맨스 소설 장르 자체의 한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변하고, 주 독자층인 여성들의 욕망이 변화한다면, 자연스레 장르는 변화하게 될 것이다. 장르의 문제는 곧 독자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그런 고민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여성 공동체에 대한 우호적인 표현도 그렇고, 사냥대회에 나서는 활동적인 여주인공의 모습, 남자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적극성 등이 그렇다. 앞으로는 더 많이 변하게 될 거라고 본다.

 

 인터넷에 연재되는 웹소설을 책으로 엮어냈음에도 한 권의 이야기로서 기승전결의 완성도를 잘 갖추고 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이르면 숨겨진 비밀들을 암시하는 등,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드는 미덕도 갖추고 있다. 과연 페트리지아가 황후의 자리 이상을 노리게 될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여자들의 치정 싸움에 머물게 될지는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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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 사회 -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
백욱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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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안의 과정과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는 재미가 상당한 책이다. 물론 현재의 우리와 연결고리가 분명할수록 더 재밌고, 번안의 결과가 우스꽝스러울수록 더 재밌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선 『번안 사회』라는 제목과 ‘제국과 식민지를 거쳐 번안된 근대와 서양’이라는 주제는 단번에 내 시선을 붙들었다. 근대와 근대화에 대한 책은 꽤 읽어봤지만, ‘번안’이라는 키워드는 뭔가 막힌 곳을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80년대 변두리 서울에서 자란 나는 나를 둘러싼 것들에서 괴이한 이질감을 느끼곤 했다. 레스토랑은 레스토랑이 아니었고, 햄버거는 햄버거가 아니었고, 핫도그는 핫도그가 아니었다. 조잡한 그림으로 덧그려진 불법복제 만화는 명백히 뭔가를 감추려고 했고, 캐릭터 상품들은 어딘지 모르게 엉성했다. 매스컴에서는 모두들 국산 제품이 좋다고 주장했지만, 실생활에서 국산을 구입하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들뿐이었고, 뭔가 다른 것을 찾던 나는 결국 대안을 찾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예 모든 정보가 통제된 상태였다면 모르겠지만, TV에선 AFKN이나 더빙판 외화, 헐리우드 영화가 판을 쳤다. 팝송도 지금과는 다르게 가요의 일부처럼 인기가 많았다. 나는 모든 것을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상품에 한정해서라면, 분명히 누군가 나를 속이고 있었다.  

 

 변두리긴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나에 비해 지방, 그것도 도시가 아닌 곳에서 자란 사람들의 경우는 훨씬 심했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 시골 친척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내 또래 사촌들이 즐겨보는 만화책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했던 기억이 난다. 모두들 자랑스럽게 그 만화책을 <드래곤볼>이라고 주장했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드래곤볼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큐 점프>에 정식 연재 중인 ‘별책부록’ <드래곤볼>을 모으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만화는 <타이의 대모험>(<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중 하나)이라는 만화의 해적판이었다.  

 

 이런 혼란을 일시에 정리해준 것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1990년에는 번안의 영역이 점차 별 볼 일 없어진다. 번안을 거부하는 세대가 등장하고, 번안이 무력해진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소득 증대, 여행 자유화와 인터넷의 대중화를 통해 말 그대로 ‘지구촌’ 시대가 전개된다. 이제 근대적인 것은 일본적인 것, 서구적인 것, 미국적인 것을 넘어 ‘전 지구적’인 것이 되었다. (…) 이제 더빙이 필요 없는 자막의 시대가 되었다. p. 168-169

 

 비로소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무엇이 번안판이고 무엇이 원본인지를 구분할 정보처를 확보한 것이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고, 뭐든 그 근원이 무엇인지 파헤치고자 했다. 진짜가 뭔지 알고 싶었다. 왜곡된 형태가 아니라 원본 그대로의 본래 모습을 말이다. 나는 우뢰매의 디자인이 일본 애니메이션 <닌자전사 토비카게>에서 표절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후레쉬맨>의 아류로 알고 있던 <바이오맨>이 실은 후레쉬맨보다 먼저 나온 작품임을 알게 됐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시기를 거치게 된 것일까. 왜 <슬램덩크>의 ‘쇼호쿠’는 ‘북산’이 되었을까. 왜 우리는 한일전에서 <마징가Z>의 주제가를 응원곡으로 부르게 된 것일까. 

 

 저자는 이런 대한민국의 특징을 ‘번안 사회’로 명명하고, 그 근원을 식민지 시대로까지 거슬러 가서 파헤친다.  

 

서양식과 원래 우리 것 사이에 일본식(왜식, 화식)이 하나 더 끼어든다. 일본도 서양의 힘으로 개항된 반식민지 체제를 경험했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흉내 내고, 베끼고, 자신의 것과 어떤 식으로든 결합시켰다. 일본은 그대로 베끼기도 하고 상황에 맞게 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차용하기도 하면서 번안의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다. 식민지 조선은 그런 일본을 다시 베껴 냈다. p. 271-272


 일본이 곧 근대였고, 일본이 건네준 서구 문물이 곧 원본이나 마찬가지였던 시대에 우리는 원본을 접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일본을 통해 한번 왜곡된 근대를 우리 식으로 다시 한 번 왜곡시킨다.


 

모방과 번안은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모방을 또 모방하면 원본의 윤곽이 흐려지고 알맹이가 빠져나가면서 원본이 자리 잡았던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맥락이 사라진다. 그래서 모방된 문화를 다시 모방하면 원본과 다른 ‘이상한 번안물’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탈맥락화가 번안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장점으로 작동할 수도 있겠으나, 번안은 대체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타인의 모방물을 모방하게 되기 때문이다. 탈맥락화의 장단점은 결국 번안물을 만들고 수용하는 주체의 취향과 행위, 문화적 역량에 따라 판가름 난다. p. 301

 

 식민시대 당시 그나마 원본을 직접적으로 수용해 우리 식으로 번안한 것은 기독교였다. 원본이라고 볼 수 있는 외국인 선교사가 직접 와서 전달했고, 번안 작업에 조선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당대 성경과 찬송가의 번안 수준은 상당히 높았고 이미 초기에 그 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전통문화가 아직 남아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새롭게 들어온 근대문화(그나마 이중으로 왜곡된 근대문화)는 전통문화와 무분별하게 섞이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고, 그 모습은 필히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잘못된 절충과 융합은 꼴이 말이 아니다. 맥락에 맞지 않아 모양새가 안 나오는 조잡한 흉내, 설익은 모방을 ‘키치’라고 부른다. ‘짬뽕’이나 ‘잡탕’이라는 일상용어도 막무가내 혼합과 융합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단어다. 서양의 산물과 동양의 문물, 근대의 산물과 전통의 유물이 만나고 충돌할 때 각각이 어떤 위치에 서는가에 따라 그 ‘꼴’이 만들어진다. 그 꼴이 자연스럽지 않거나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할 땐 ‘꼴불견’이 된다. p. 212

 

 폐쇄적인 사회는 저질 번안을 유지시키는데 한몫한다. 중국에는 정식으로 판권을 구입해 제작한 중국판 ‘프로듀스101’이 존재하지만, 아류 프로그램도 함께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그것의 원본이 일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의 폐쇄적인 통제는 저질 번안을 유지시키긴 하지만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군사독재 시대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어이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제대로 된 번안의 시기를 놓치고 만다. 경제부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본제국주의를 번안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베트남 파병이 소개된다. 

 

식민지 시대의 외부로부터 강요된 모방은 신문물의 힘에 압도된 대중의 수동적 모방과 수용을 낳았다. 1960년대의 외부적 강제자 없이 진행된 자발적 모방은 자신이 모방한 대상을 철저하게 감추었다. 박정희는 식민지 조선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1960년대 한국에 적용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모방을 감추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베트남 파병이 식민지 시대 징용·징병제의 또 다른 모방이자 변형이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p. 116

 

 하지만 군사정부의 서슬 퍼런 통제에도 원본에 대한 열망을 막지는 못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참전을 통해서라도 외국에 나간다는 경험은 중요하다. 그만큼 원본을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파견된 장병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한복판에서 고국에 없는 풍요를 접하게 된다. 한국군 장병들에게 베트남전은 외국 문물을 직접 접하고 습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p. 120

 

 이미 세계화를 지나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했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정보는 왜곡 없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아직 번안의 수준을 뛰어넘어 원본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문화적인 식민지 상태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 근대를 완전히 소화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번안의 단계를 뛰어넘어 원본이 되려는 시도들도 이뤄지고 있지만 지름길은 없다. 그동안 청산하지 못한 번안들을 차근차근 다시 살펴봐야할 때다.

 

번안 기간을 줄일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에 답하기는 어렵다. 배경이 형태보다 빨리 변하면 쓸모없는 흉물이 남고, 형태가 배경보다 빨리 변하면 너무 전위적인 생산물이 된다. p. 103

 

 저질 번안이 용인되는 시기는 끔찍한 ‘짝퉁’의 시대였다. 자신이 짝퉁인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배나 더 비참한 시기다. 사실 짝퉁이란 단어는 ‘원본’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책에도 언급되지만, 과거에는 ‘나이롱’이라는 말이 쓰였다. 원본이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원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우리는 원본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부터 원본을 갈구해 왔다. 한 번도 짝퉁이 되기를 원했던 적은 없다. 그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열망이 우리를 분명히 원본의 자리로 올려놓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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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08-31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보관함에 넣어 봅니다.

Bookbuff 2018-08-31 22:08   좋아요 0 | URL
번안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근대화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ㅎ 감히, 조심스레 추천합니다^^
 
INTEGRITY NEW YORK
정인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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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이 커서 첫인상은 시원시원한 느낌이었다.  

큰 판형 덕분에 사진들이 크고 보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비교적으로 내용은 많이 빈약한 편이다. 뉴욕 여행을 다녀온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훑어보는 느낌? 

 

뉴욕에 가봤던 사람이라면 굉장히 시시하게 보지 않을까.  

그보다는 뉴욕에 관한 책을 읽어봤던 사람이라도 시시하게 볼 정도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뉴욕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관광 엽서 사진과 뻔한 내용으로는 경쟁력이 없어 보인다. 역시 장점은 큰 판형뿐인가. 두께가 얇아서 앉은 자리에서 읽힌다는 것도 장점이겠다. 

 

뉴욕에 대한 아주 대략적인(아주, 아주 대략적인) 개요로 시작한다. 큰 판형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지도 부분에도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 D.C.라면 세계의 수도는 뉴욕이다. 정치, 경제, 미디어, 음악, 뮤지컬, 문화, 패션, 박물관, 대학,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뉴욕은 세계의 수도가 되어 왔다. p. 7

 

흔히들 미국에서 가장 미국다운 도시라고 하면 시카고(Chicago)를 이야기한다. 반면 뉴욕은 미국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복합적으로 집합해 있다. 뉴욕은 세계의 수도인 것이다. p. 27

 

여러 가지 상징물들을 훑어보던 책은 갑자기 뉴욕의 수제버거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뉴욕을 넘어 서부와 중부까지 아우르는 햄버거 가게 설명은 관광지 설명 보다 훨씬 디테일하다. 저자의 버거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사진들의 면면을 보다 보면 세계의 수도답게 서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전형적인 도시 모습이 종종 보인다. 도시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한 듯 보였다. 

 

지금은 뉴욕 패션과 쇼핑의 중심인 소호. 한때 신진 예술가나 여류작가들이 모였던 개성 넘치는 곳이었지만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 렌트비는 해가 거듭할수록 오르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이 떠난 자리는 프랜차이즈들이 점령하여 버렸다. p. 61

 

세련된 도시는 어디나 비슷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뉴욕만의 멋이 느껴지는 곳은 역시 전통적인 양식으로 지어진 빌딩들이나, 소호 같은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장소들이었다.  


유홍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 보면 도시에서는 시간의 변화를 느끼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변하는 액정 화면을 들여다본다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뉴욕 사진들을 보면서는, 그런 변화의 역할을 수많은 광고판들과 그래피티들이 맡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거대한 공원들도 그런 역할을 하겠지만 이 책에는 뉴욕의 공원 이야기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도시가 어디서나 비슷하듯이, 도시인들도 어딜 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서울에서 만난 지 3주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난 지인과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승현이의 공부와 일, 이번 학기 마치고 승현이가 가야할 군대 등 여러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 끝은 다이어트로 귀결되었다. 작년 여름 그리고, 얼마 전 겨울 서울에서 보았을 때에도 우리 대화의 주제는 다이어트였는데, 지구 반대편 뉴욕까지 와서도 동일하니 다이어트는 남녀노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중요한 주제임을 실감했다. p. 68

 

도시인의 고민거리도 비슷비슷할 것이다. 

뉴욕이 다른 점은 세계인이 모이는 도시라는 점이다. 확실히 ‘세계의 수도’라는 별명다웠다.  

 

브루클린 브리지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 중 하나이기 때문인지, 걷기에 딱 좋은 날씨 덕인지 다리는 양옆으로 브루클린으로 가는 사람들과 맨해튼으로 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물론, 주변에선 한국말도 들렸고, 중국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외국어 등 영어 빼고 다 들리는 것 같았다. p. 71


하지만 저자는 그 세계의 관광객들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고 한다.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다가 저자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의아해 한다. 

 

마치 처음 온 사람처럼 사진을 찍어 대어 ‘나 뉴욕 자주 온 사람 맞나?’라고 자문할 정도였으니…. p. 71

 

자주 왔다는 이유로 자신을 뉴욕 시민에 더 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 왔던 자주 왔던 관광객은 관광객일 수밖에 없고 외국인은 외국인일 뿐이다. ‘세계의 수도’라는 별명으로 은근히 시민의 지위를 얻어냈던 저자는 다른 외국 시민의 등장에 자신을 더 특별한 지위에 올려놓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뉴욕이란 도시가 주는 허영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급작스럽게 한국인으로 회귀한다. 

 

국내 유명 쇼 프로그램 덕분인지 덤보에 다다르자 우리 주위에는 90%가 한국 사람이었으며, 대부분이 커플이거나 여자들이었기에 우리처럼 남자 둘이 온다면 이성 교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여겨지기에 딱 좋아 보였다. 그런 것을 느꼈는지 둘 다 너무 어색해했다. 문제는 순진한 두 청년은 쑥스러워서인지 서로의 사진만 찍은 후 주변의 ‘한국’ ‘여자’ ‘사람’에게 가서 사진을 요청하거나 찍어 주겠다는 말조차 걸지 않았다. ‘승현이는 정말 뉴욕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 착실한 청년인 것 같다.’ 결국 승현이가 외국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해서 둘이 함께 간단한 사진을 남겼다. p. 74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깨닫게 되었다. 시컴시컴한 남자 청년 두 사람이 모이면 카페보다는 함께 걷는 것이 훨씬 덜 어색하다는 것을. p. 77


‘세계의 수도’ 어쩌고 하며 뉴욕 시민의 지위로 올라섰던, 그래서 특히나 현지 햄버거 맛집을 자랑스럽게 소개해주던 저자는 갑자기 전형적인 ‘시컴시컴한’ 한국 남자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이런 면이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세계의 수도라면 이런 극동아시아의 ‘시컴시컴한’ 남자들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는 원래 그런 곳이다. 그 나라의 국민이라면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 곳.  

 

뉴욕은 특별한 곳이다. 전 세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개성 있는 곳이며 그곳에선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p. 77

 

9. 11 테러 당시 뉴욕에 있던 기억을 회상하던 저자는 다시 세계 시민으로 돌아와 죄책감을 느낀다. 이것은 뉴욕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에 가까운 감정이다. 아무도 추궁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뉴욕 시민을 자처하면서 갖게 되는 책임감이랄까. 

 

나 자신에게는 그때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아 온 물음이 있다. “나는 과연 그들이 아닌 내가 산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다행이다?”…“맞다.”, “다행이다.”, “감사하다.” 하지만 그러한 감사함 속에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든다. p. 93

 

그리고 그 시민의식은 미국의 가치를 지향한다. 그가 생각하는 미국의 가치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더 높고 숭고한’ 것이다.  

 

흔히 자본주의의 끝을 볼 수 있는 곳을 미국 뉴욕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 자본이 모이는 가장 과열된 도시 한복판인 로어 맨해튼에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단순히 이곳이 그라운드 제로이기 때문이 아닌 자본주의를 넘어선 더 높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미국 사회의 윤리의식을 나타내어 준다고 생각한다. p. 96

 

마지막 9.11 테러 추모 건축물 부분에 이르러 저자는 거의 순수한 미국인, 혹은 뉴요커다. 마지막 당부를 읽다 보면 뉴욕을 ‘자주’ 가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뉴욕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곳에서 오래 살고 있는 사람 같다. 뉴욕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뉴요커들은 그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을까. 

 

부디 앞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건축물에 대한 감상과 더불어 짧게나마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가볍지 않은 축복을 기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아울러 9/11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에게 소소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들의 이름은 이곳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데 있다. 적어도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p. 96

 

책 내용 자체보다는 저자의 투명한 욕망이 드러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보면 뮤지션들이 쿠바에서 뉴욕으로 초청돼 공연을 하게 된다. 그중 한 명인 이브라힘 페러가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뉴욕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는다. 뉴요커들은 쿠바의 이국적임을 멋있게 생각해서 그를 초청했는데, 정작 이브라힘 페러는 뉴욕의 모습에 매료된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내가 진작에 이곳에 왔어야 했는데.’ 뉴욕은 확실히 그런 곳인 것 같다. 환상을 주고, 그 환상의 일부가 되고 싶게 만드는. ‘뉴요커’라는 단어에는 그런 환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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