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GRITY NEW YORK
정인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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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이 커서 첫인상은 시원시원한 느낌이었다.  

큰 판형 덕분에 사진들이 크고 보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비교적으로 내용은 많이 빈약한 편이다. 뉴욕 여행을 다녀온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훑어보는 느낌? 

 

뉴욕에 가봤던 사람이라면 굉장히 시시하게 보지 않을까.  

그보다는 뉴욕에 관한 책을 읽어봤던 사람이라도 시시하게 볼 정도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뉴욕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관광 엽서 사진과 뻔한 내용으로는 경쟁력이 없어 보인다. 역시 장점은 큰 판형뿐인가. 두께가 얇아서 앉은 자리에서 읽힌다는 것도 장점이겠다. 

 

뉴욕에 대한 아주 대략적인(아주, 아주 대략적인) 개요로 시작한다. 큰 판형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지도 부분에도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 D.C.라면 세계의 수도는 뉴욕이다. 정치, 경제, 미디어, 음악, 뮤지컬, 문화, 패션, 박물관, 대학,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뉴욕은 세계의 수도가 되어 왔다. p. 7

 

흔히들 미국에서 가장 미국다운 도시라고 하면 시카고(Chicago)를 이야기한다. 반면 뉴욕은 미국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복합적으로 집합해 있다. 뉴욕은 세계의 수도인 것이다. p. 27

 

여러 가지 상징물들을 훑어보던 책은 갑자기 뉴욕의 수제버거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뉴욕을 넘어 서부와 중부까지 아우르는 햄버거 가게 설명은 관광지 설명 보다 훨씬 디테일하다. 저자의 버거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사진들의 면면을 보다 보면 세계의 수도답게 서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전형적인 도시 모습이 종종 보인다. 도시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한 듯 보였다. 

 

지금은 뉴욕 패션과 쇼핑의 중심인 소호. 한때 신진 예술가나 여류작가들이 모였던 개성 넘치는 곳이었지만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 렌트비는 해가 거듭할수록 오르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이 떠난 자리는 프랜차이즈들이 점령하여 버렸다. p. 61

 

세련된 도시는 어디나 비슷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뉴욕만의 멋이 느껴지는 곳은 역시 전통적인 양식으로 지어진 빌딩들이나, 소호 같은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장소들이었다.  


유홍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에 보면 도시에서는 시간의 변화를 느끼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변하는 액정 화면을 들여다본다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뉴욕 사진들을 보면서는, 그런 변화의 역할을 수많은 광고판들과 그래피티들이 맡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거대한 공원들도 그런 역할을 하겠지만 이 책에는 뉴욕의 공원 이야기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도시가 어디서나 비슷하듯이, 도시인들도 어딜 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서울에서 만난 지 3주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난 지인과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승현이의 공부와 일, 이번 학기 마치고 승현이가 가야할 군대 등 여러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 끝은 다이어트로 귀결되었다. 작년 여름 그리고, 얼마 전 겨울 서울에서 보았을 때에도 우리 대화의 주제는 다이어트였는데, 지구 반대편 뉴욕까지 와서도 동일하니 다이어트는 남녀노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중요한 주제임을 실감했다. p. 68

 

도시인의 고민거리도 비슷비슷할 것이다. 

뉴욕이 다른 점은 세계인이 모이는 도시라는 점이다. 확실히 ‘세계의 수도’라는 별명다웠다.  

 

브루클린 브리지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 중 하나이기 때문인지, 걷기에 딱 좋은 날씨 덕인지 다리는 양옆으로 브루클린으로 가는 사람들과 맨해튼으로 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물론, 주변에선 한국말도 들렸고, 중국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외국어 등 영어 빼고 다 들리는 것 같았다. p. 71


하지만 저자는 그 세계의 관광객들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고 한다.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대다가 저자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의아해 한다. 

 

마치 처음 온 사람처럼 사진을 찍어 대어 ‘나 뉴욕 자주 온 사람 맞나?’라고 자문할 정도였으니…. p. 71

 

자주 왔다는 이유로 자신을 뉴욕 시민에 더 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 왔던 자주 왔던 관광객은 관광객일 수밖에 없고 외국인은 외국인일 뿐이다. ‘세계의 수도’라는 별명으로 은근히 시민의 지위를 얻어냈던 저자는 다른 외국 시민의 등장에 자신을 더 특별한 지위에 올려놓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뉴욕이란 도시가 주는 허영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급작스럽게 한국인으로 회귀한다. 

 

국내 유명 쇼 프로그램 덕분인지 덤보에 다다르자 우리 주위에는 90%가 한국 사람이었으며, 대부분이 커플이거나 여자들이었기에 우리처럼 남자 둘이 온다면 이성 교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여겨지기에 딱 좋아 보였다. 그런 것을 느꼈는지 둘 다 너무 어색해했다. 문제는 순진한 두 청년은 쑥스러워서인지 서로의 사진만 찍은 후 주변의 ‘한국’ ‘여자’ ‘사람’에게 가서 사진을 요청하거나 찍어 주겠다는 말조차 걸지 않았다. ‘승현이는 정말 뉴욕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 착실한 청년인 것 같다.’ 결국 승현이가 외국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해서 둘이 함께 간단한 사진을 남겼다. p. 74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깨닫게 되었다. 시컴시컴한 남자 청년 두 사람이 모이면 카페보다는 함께 걷는 것이 훨씬 덜 어색하다는 것을. p. 77


‘세계의 수도’ 어쩌고 하며 뉴욕 시민의 지위로 올라섰던, 그래서 특히나 현지 햄버거 맛집을 자랑스럽게 소개해주던 저자는 갑자기 전형적인 ‘시컴시컴한’ 한국 남자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이런 면이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세계의 수도라면 이런 극동아시아의 ‘시컴시컴한’ 남자들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는 원래 그런 곳이다. 그 나라의 국민이라면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 곳.  

 

뉴욕은 특별한 곳이다. 전 세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개성 있는 곳이며 그곳에선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p. 77

 

9. 11 테러 당시 뉴욕에 있던 기억을 회상하던 저자는 다시 세계 시민으로 돌아와 죄책감을 느낀다. 이것은 뉴욕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에 가까운 감정이다. 아무도 추궁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뉴욕 시민을 자처하면서 갖게 되는 책임감이랄까. 

 

나 자신에게는 그때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아 온 물음이 있다. “나는 과연 그들이 아닌 내가 산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다행이다?”…“맞다.”, “다행이다.”, “감사하다.” 하지만 그러한 감사함 속에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든다. p. 93

 

그리고 그 시민의식은 미국의 가치를 지향한다. 그가 생각하는 미국의 가치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더 높고 숭고한’ 것이다.  

 

흔히 자본주의의 끝을 볼 수 있는 곳을 미국 뉴욕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 자본이 모이는 가장 과열된 도시 한복판인 로어 맨해튼에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단순히 이곳이 그라운드 제로이기 때문이 아닌 자본주의를 넘어선 더 높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미국 사회의 윤리의식을 나타내어 준다고 생각한다. p. 96

 

마지막 9.11 테러 추모 건축물 부분에 이르러 저자는 거의 순수한 미국인, 혹은 뉴요커다. 마지막 당부를 읽다 보면 뉴욕을 ‘자주’ 가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뉴욕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곳에서 오래 살고 있는 사람 같다. 뉴욕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뉴요커들은 그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을까. 

 

부디 앞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건축물에 대한 감상과 더불어 짧게나마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가볍지 않은 축복을 기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아울러 9/11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에게 소소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들의 이름은 이곳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데 있다. 적어도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p. 96

 

책 내용 자체보다는 저자의 투명한 욕망이 드러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보면 뮤지션들이 쿠바에서 뉴욕으로 초청돼 공연을 하게 된다. 그중 한 명인 이브라힘 페러가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뉴욕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는다. 뉴요커들은 쿠바의 이국적임을 멋있게 생각해서 그를 초청했는데, 정작 이브라힘 페러는 뉴욕의 모습에 매료된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내가 진작에 이곳에 왔어야 했는데.’ 뉴욕은 확실히 그런 곳인 것 같다. 환상을 주고, 그 환상의 일부가 되고 싶게 만드는. ‘뉴요커’라는 단어에는 그런 환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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