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투 퀸 1
무소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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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풍의 황실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소설이다. 하지만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배경의 리얼리티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얼핏 왕좌의 게임 같은 판타지 소설의 갈등 구조도 떠오르지만, 훨씬 치정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퀸’이 되는 이야기가 핵심이 되는데, ‘황제’나 ‘황후’ 같은 단어들과 ‘퀸’이라는 단어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함께 나오고 있다. 판타지 소설다운 분위기라고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퀸(Queen)은 여왕이나 왕비를 뜻하는 단어일 뿐, 황후를 뜻하지 않기도 하다. (황후는 ‘Empress’) 하지만 판타지이기도 하고, 로맨스가 핵심인 가볍게 즐기는 이야기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설정이나 시대 배경 같은 것은 최소한의 수준만 유지돼도 상관없어 보인다. 

 

 그리고 아무래도 계급 호칭들이 한자어로 표기되고 있고, 말투마저 조선시대 궁에서 쓴다고 해도 어색할 것 없는 말투다. 그러다 보니까 등장인물의 이름만 아니라면 동양풍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한 느낌인데, 이때 중간중간 서구풍 명칭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 조성을 돕고 있기도 하다. 로맨스 소설계에 한해서 서양풍과 동양풍은 다분히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우선 치정물답게 정적을 향한 독자의 분노를 끌어내는 방식이 확고하다고 느껴졌다. 독자의 강력한 감정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분명 큰 무기다. 단지 후반부로 가면서 주인공과 조력자들이 도덕적으로 선을 넘게 되면서 선악 구분이 조금 희석되기도 한다. 이후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악녀에게 연민을 가질 여지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 여지도 있어 보인다. 단순한 구도를 넘어서서 캐릭터가 좀 더 복잡해지면 이야기는 더 풍성해질지는 모르지만 단순한 쾌감을 주기는 힘들어진다. 앞으로 작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독자가 작품에 원하는 바가 분명한 장르물이다 보니까 클리셰들이 여러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죽일 듯이 싫어하는 남녀 사이가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상당히 불가항력적으로 이뤄진다. 마음의 변화라는 것은, 특히나 연정의 마음이라는 것이 늘 그런 느닷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서도, 좀 더 다양한 변주를 주지 않는 면이 아쉬웠다.  

 

 황제와 황후라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빈번히 혼자 있는 상태가 된다. 여주인공이 혼자 있는 상태가 되면 곧 황제가 나타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어김없이 뒤이어 비가 내린다.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독자가 이 장르에 원하는 것이기도 할 테니 딱히 불만은 없다. 

 

 작품의 핵심과도 같은 문장, “언니 대신 내가 퀸이 될게.”를 처음 봤을 때는, 언니라는 라이벌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여동생의 욕망으로 읽혔다. 어찌 보면 심술 맞아 보이는 그 욕망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로 선량하게 포장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런 심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소설에서 결혼은, 제아무리 황후가 되는 결혼이라고 해도 불행의 가능성을 내포한 독이 든 성배다. 그 독은 남편의 또 다른 여자를 뜻한다. 곧 남편의 바람이라는 독이 든 성배인 것이다.  

 

 그리고 먼저 결혼한 언니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동생이 있다. 착하기만 하고 요령 없는 언니는, 남자의 바람에 의해(악녀에 의해) 처참하게 실패한 결혼 생활을 한다. 그런 언니를 가슴 아프게 바라보던 동생은,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언니보다는 영악하고 모진 면도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내가-언니 대신 겪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시간을 되돌려 ‘언니 대신 퀸이 되는’ 이야기 밑에 흐르는 감정이다. 

 

 언니 대신 결혼을 한 동생은 정적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그 분노는 자신과 언니 이중의 것이기에 훨씬 강렬하다. 하지만 그 분노에 쉽게 꺾이는 악녀라면 재미가 없다. 악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더 위험한 음모를 꾸민다. 그래서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못하고 계속된다. 아마 영원히 안 끝날지도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인 페트리지아는 든든한 여성 공동체를 구성한다. 자신의 언니 페트로닐라, 호위 무사인 라파엘라, 시녀인 미르야. 이들의 공동체는 신분 차에도 불구하고 평등하다. 황제로 대표되는 남성적 공동체는 권위적이고 수직적이다. 황제는 함부로 모두에게 반말을 한다. 그런 권위주의는 황제 본인에게도 해롭다.(또 다른 클리셰인 남자 주인공의 ‘상처받은 여린 마음’은 그런 뉘앙스를 풍긴다) 페트리지아의 여성 공동체가 상대적으로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사실 <레이디 투 퀸>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권력의 정점에 서는, ‘왕비’가 아닌 ‘여왕’이 최종 목적지이길 기대했다. 물론 1권의 내용만으로 결론 내리기 힘들겠지만, 그런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싶다. 주인공인 페트리지아가 황제를 대신한 섭정을 통해 느끼는 것은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한 황후는 힘이 없다’라는, 다소 김 빠지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다시 ‘남편의 여자’라는 자리로 돌아와 ‘남편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 ‘남편의 권력’을 대리하는 치정 싸움에 집중하게 된다. 권위주의에 대한 염증을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자기에게 직접 주어진 권위를 거부하고 남자를 통해 권위를 얻으려 하는 건 우스꽝스럽다.

 

 이것을 로맨스 소설 장르 자체의 한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변하고, 주 독자층인 여성들의 욕망이 변화한다면, 자연스레 장르는 변화하게 될 것이다. 장르의 문제는 곧 독자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그런 고민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여성 공동체에 대한 우호적인 표현도 그렇고, 사냥대회에 나서는 활동적인 여주인공의 모습, 남자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적극성 등이 그렇다. 앞으로는 더 많이 변하게 될 거라고 본다.

 

 인터넷에 연재되는 웹소설을 책으로 엮어냈음에도 한 권의 이야기로서 기승전결의 완성도를 잘 갖추고 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이르면 숨겨진 비밀들을 암시하는 등,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드는 미덕도 갖추고 있다. 과연 페트리지아가 황후의 자리 이상을 노리게 될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여자들의 치정 싸움에 머물게 될지는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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