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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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때로 사물, 사람, 세계 등에 대한 인식 체계에 깊이 관여한다. 혐오의 언어가 빠른 속도로 증식하는 것에 비하면 저항의 언어는 늘 순탄하지 못하다. 내가 말하는 ‘저항의 언어‘는정확한 언어에 가깝다.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쓴다는 것은 정확하게 보려는 것, 정확하게 인식하려는 것, 권력이 정해준 언어에의구심을 품는다는 뜻이다. 권력이 저항의 언어를 항상 진압하는 이유다. 그 대신 권력의 기준으로 왜곡된 언어를 적극적으로유포한다.
권력의 망언이 난립하는 가운데서도 이에 맞서는 언어들도 지치지 않고 생성된다. 바로 그 지점에 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끌고 갈 화두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어휘를 쓰는 것이 때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만 그것은 아름다움 자체가 많이 오해받고 있어서다. 아름다움은 노동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땀을 흘리며 무한히 타자를품어낸다.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는 "아름다움은 선에 대한 우리들의 갈망을 반추하는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고통과 연대하고 권력에 저항하며 정상성에 균열을 내어 세상에 충격을 주는 행위. 저항과 연대에는 언제나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 P8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가진 모순은 《고통받는 몸》에서 일레인 스캐리 Elaine Scarry가 한 문장으로 잘 정리했다. "예술가들이 너무나 성공적으로 괴로움을 표현한 탓에 예술가 집단이 가장 진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그래서 도움이 절박하게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의도치 않게 관심을 빼앗을 위험"이 항상 도사린다.
즉, 고통의 표현은 때로 그 고통을 권력으로 바꾼다. 창작을 통해 고통을 다루기보다 창작을 하는 나의 고통에 대해 더욱 열심히 말하는 창작자들이 실로 많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문학에서 육체적 고통이 제대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으며,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시각 예술에서 질병이나 출산처럼 인간의 몸이 겪는 고통이 거의 다뤄진 적 없다고 지적했다. 존버거John Berger는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이전에 어떤 유럽 화가도 육체노동을 작품의 주제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켜줬다. 시골에서의 노동, 곧 농부의 노동은 버거의 표현대로 ‘유화라는 언어‘가 무시해왔던 주제다. - P13

은폐된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구체적인 서사를 채우는 일은 비명을 언어화하는 작업이다. 비명 속에서 말을 찾고 고통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갈 때 고통의 연대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청자가 있는 고통은 조명받는다. 그러나 남들이 들어주는고통은 절반의 고통일 뿐이다. 언어로 정리할 수 없거나, 비명이되어 쏟아지는 소리로만 존재하여 고통의 청자를 만날 수 없을 때, 그래서 그 고통이 철저히 소외될 때, 고통은 진정 고통으로 존재한다. 설명되지 않는, 혹은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듣지 않으려는 몸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일은 그 자체로 운동이다. 은폐되어 보이지 않는 고통을 보이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고통의 주체를 새롭게 인식시키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산업재해처럼, 약자들의 고통일수록 오랫동안 이름이 없었다. 육체노동의 고통, 여성의 몸이 겪는 고통, 임신한 흑인 여성의 몸에 닥치는 위험 등에는 구체적인 서사가 있지만 권력이 없을수록 고통을 말하기 어렵고, 또 말한다 해도 들어줄 청자가 없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고통이야말로 진정한 고통이 아닐까. - P22

"태초에 노동이 있었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구처럼, 노동은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숭배의 대상도 패배의 징표도 아닌, 살아 있는 자의 행위다. 노동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은 오히려 노동과 삶을 분리시킨다. 나는 노동해방은 가능하지 않으며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해방‘을 말할수록 노동은 소외된다. 노동 해방에 관해 말하기보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그것이 우리가 하지 못한 ‘공부‘일 것이다. - P35

플랫폼 노동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통하지만 물리적으로 각자 다른 시공간 속에서 홀로 이동하기에 동료들을 만날 수 없다. 누군가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의 시간은 치밀하게 지배받는다. 그들은 채팅방을 통해 식사시간과 화장실 출입까지 보고한다. 정보의 비대칭과 소통 창구의 독점 속에서 노동자들은 감시받지만 동료와 연결되기는 힘들다. 다시 말해, 인간은 고립되고 데이터는 연결되었다. 기업 입장에서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들의 소통과 연대를 막을 수 있는최적의 형태다. - P62

출판계만이 아니라 패션과 외식 산업 등에서도 ‘할머니‘는 그야말로 ‘힙‘한 키워드다. 시장은 빠르게 움직인다. 할머니와 밀레니얼의 합성어인 ‘할매니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할머니들의 패션과 입맛 등은 할매 감성이라 불리며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할머니에 대한 환호에는 젊은 여성들의 미래에 대한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 있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에 대한 문화적 소비를 마냥 긍정하긴 어렵다. 시장에서 소비되는 감성과는달리 실제 많은 할머니들의 삶은 빈곤하기 때문이다.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는 빈곤의 할머니화가 되었다. 미래에 ‘~한 할머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현재의 여성 노인 빈곤에 대한 불안을 보여준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소망에는 역설적으로 가난과 질병,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포함되어 있다. - P73

목소리는 몸을 벗어나 존재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역사는 약자의 목소리를 묵살한다. 대신 몸으로만 재현한다.
묵살은 잠잠히 죽인다는 뜻이다. 여성의 주체적 경험이 지식화되거나 역사화되지 못하도록 방해받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이들을 피해자의 위치에만 한정해서 바라보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옥주는 5·18 여성동지회를 만들어 투쟁했던 여성들과 연대한 ‘연결된 몸‘이었고, 폭력의 목격자이며 저항의 참여자로서
‘말하는 몸‘으로 살아왔다.《광주, 여성》에 담긴 여성들의 이야기는 내가 관념적으로 이해하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개념을 전복시켰다. 과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누구의 감정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5.18에 참여한 여성들에게는 ‘더불어 죽지 못한 죄의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 여성들의 관심은 오롯이 삶"이었다는 편집자의 말처럼 실제 이 여성들의 구술에는 온통 연결에 대한 갈망, 새로운 배움에 대한 희망, 증언하고자 하는 의지 등이 드러나 있었다. - P155

18세기에 올랭프 드 구주 Olympe de Gouges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관습과 문화 속에서 차별을 인식하며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렇게 인권의 범주를 확장시켜왔다. 여성이 권리를 주장하고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것은 끊임없이 ‘남성 자유인‘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진행되었다. 구체적 존재들이 지워진, 막연한 ‘시민‘이라는 개념은 공허하다. 이제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날로 높아져서 동물의 권리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정체성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싸우고 연대하며 흩어진다. 각자의 정체성에 함몰되는 싸움이 아니라, 타자가 주체가 되는 투쟁을 통해 싸움의 영역을 넓힐수록 인권의 영역도 확장된다. - P175

"조물주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이 다양성입니다." 성공회 사제이며 신학자인 패트릭 쳉Patrick S. Cheng의 《급진적인 사랑》의 발간사는 참으로 아름답다. 퀴어 신학을 이해하는 입문서로서 쳉의 글도 좋지만, 이 책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발간사에서 이미 ‘정신이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장미가 민들레를 혐오하거나 멸시하지 않듯이, 모든 차이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며 존중받을 일이지, 결코 혐오나 차별의 조건이 아닙니다." 우주의 다양성은 우리가 다 파악할 수도 없이 심오하며 거대하다. 인간 개개인을 하나의 우주로 인식한다면 그 안의 무궁무진한 다양성은 결코 부정당할 수 없다. - P193

태도가 마음이며, 형식이 내용이고, 언어가 곧 정치다. - P210

관심 없음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행위는 그 문제를 모르고 싶다는 주장이며, 관련 사안에 대해 듣고 싶지 않다는 말하기 방식이다. 다시 말해, 나는 앞으로도 모르겠다는 선언이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게 권력이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각이 없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앎을 적극적으로 모르려고 하고, 모르지만 판단할 수 있다는 확신이 모이면 바로 죄의식 없이 폭력을 저지르게 된다. 듣기 괴로운것 중에 하나는 ‘산업‘과 ‘시장‘을 늘 중심에 두고 ‘어쩔 수 없다‘를 반복하는 목소리다. - P287

1910년 미국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Ella Wheeler Wilcox의 시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 The Voice of The Voiceless> 이후, 이는 운동 캠페인 구호로 자주 등장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의미로 이 구호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는 인도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 베트남계 미국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VietThanh Nguyen 등에 의해 오늘날 꾸준히 비판받는 구호이기도 하다. 로이는 목소리 없는 자들은 없다고 주장했고, 응우옌은 목소리 없는 자들을 위해 목소리 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없어지는 그 구조를 부숴버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들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목소리 없는 자들은 없다. 듣지 않거나 침묵을 강요당할 뿐이다.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대학생 친구가 없어도 전태일의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여야 한다. - P296

나와 참석자들의 관계만이 아니라 그들간의 관계도 있다. 강연이 열리는 그날 그 장소에서 주변 지역의 활동가들이 만남을 가진다. 비대면 강의에서는 이런 관계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의 강의만 남는다. 물론 온라인도 장소다. 나는 온라인 장소에서 강의라는 목적에 충실히 임한다. 이를 두고 물리적 거리를 ‘극복‘한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의 ‘극복‘은 달리 말하면 장소감의 ‘상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간을 공유하지만 그 시간 동안 공유하는 장소 경험이 없는 것이다. - P322

이야기를 짓는 능력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능력에 초점을 맞춰보면, 타인의 서사를 이해하려는 태도는 실제로 윤리적 변화를 만든다. 예를 들어 장애인 시설에서 일했던 사회복지사가 발달장애인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자.

"지원주택 중간평가 때 자신이 바라는 걸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했더니, 호민 씨가 큰 네모에 크기가 다른 동그라미 3개를 그렸어요. 네모는 집을, 큰 동그라미는 호민 씨를, 중간 동그라미는 영미 씨를, 작은 동그라미는 아기를 의미하는 거였어요. 또 지원주택에 살면서 무엇이 좋은지를 물었더니 네모 3개를 그렸어요. 큰 테두리 네모는 집을, 작은 네모 2개는 텔레비전과 침대를 의미하는 거였어요. 자신의 집, 가구, 그리고 가족을 갖고 싶어 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왔지요. 어떤 형태로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 소통의 의미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낀 시간이었어요. 소통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건데 많은 사람들은 글씨를 맞게 써야 되고 말을 똑바로 해야 한다고만 생각해요. 의사소통의 의미를 거기에만 두고 있으니까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요." - P344

연민은 강한 정치적 힘을 만든다. 그럼에도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따른다. ‘불쌍한 존재‘는 너무도 무력하다. 부당하게 고통받는 존재들은 그저 이 세계의 ‘불쌍한 존재‘라는 틀에 갇힐 뿐이다. 그렇게 연민의 대상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타자의 불쌍함이 나의 사회적 참여의 감정적 원천이 될 때, 이는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에 저항하는 연대 의식으로 향하기보다 불쌍한 대상을 도울 수 있는 나에 대한 우월감으로 빠지기 쉽다. 불쌍한 대상들이 더 이상 불쌍해 보이지 않을 때 순식간에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통은 재현되지 말아야 하는가. ‘재현되어야 하는가 재현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올바른 답을 끌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고통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 P349

바로 그 쓸모에 연연하지 않음을 드러내기, 그것이 계급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노동하는 손이 아니라 예쁘게 꾸며진 손, 실용적인 작업복이 아니라 불편하지만 보기 좋은 옷, 같은 음식이라도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정갈한 상차림은 아름다움이 계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배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을 경시하거나 경계하는 이들은 아름다움이 현실의 복잡한 문제들을 가린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속임수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쉽다.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점 때문에 때로 아름다움은 두려움을 자아낸다. "바다에서 가장 무자비한 종족들이야말로 사악한 광휘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슈미얼은 바다가 음흉하고 기만적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은 때로 권력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의지는 권력 의지와 연결된다. 아름다움은 모방을 추구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적 경험의 축적이 세계관의 확장이 아니라 지배력 강화로 향할 때 아름다움은 권력이 된다. - P353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대상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 끊임없이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움과정의로움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실천이다. 아름다움은 분배되어야 한다. 가장 윤리적인 것이 가장 전위적이다. 윤리가 낡음이되어갈수록 끈질기게 윤리를 고민해야 한다. 아름다움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느냐, 분배와 돌봄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의 의미는 다른 방향으로 향할 것이다. 인간이 품은 모방 욕구는 아름다움을 복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
권력화된 아름다움인가 분배하는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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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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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고 고대 사상가들은 주장하였다. 그리스 철학자들에 따르면 학문, 예술, 정치 같은 자기개발 활동에 시간을 투여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된다. 실제로 학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school‘은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a‘에서 나온 것이다. 여가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곧 학문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 P21

사람들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의 사회적 활동 영역에 시간을 엇비슷하게 투입한다. 첫째 영역은 안면이 없는 사람, 동료, 급우로 채워진다. 이 ‘공적‘ 영역에서는 한 사람의 행위가 남들의 평가를 받게 되고, 또한 한정된 자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든가 아니면 협조적 공생 관계가 맺어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 공적 행위 영역이라고사람들은 흔히 강조한다. 위험 부담도 크지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둘째 영역은 가족이다. 아이에게는 부모와 형제이며 어른에게는 배우자와 자식이다. 요즘 들어서는 뚜렷한 사회적 단위로서의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고 사실 가족의 정의를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구성 형태로 못 박기도 어려운 노릇이지만, 사람에게는 유달리 끈끈한 정을 느끼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며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강한 책임감을 느 - P23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오직 그의 행동에만 무게를 두면서 행동주의 심리학자처럼 구는 반면, 스스로를 돌아볼 때는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행동보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더 중시하면서 마치 현상학자처럼 구는 모순된 자세를 종종 보이곤 한다. - P28

의도의 경우는 에너지가 단기간에 투입되는 반면, 목표는 좀 더 장기적으로 투입된다. 우리가 도달하려는 자아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다. 테레사 수녀와 마돈나라는 가수의 삶이 판이하게 다른 것은 두 사람이 평생토록 자신의 주의를 투입하는 목표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관된 목표의추구 없이 일관된 자아를 만들어나가기는 어렵다. 뚜렷한 목표의 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제대로 투입해야 한 사람의 경험에 질서가 생긴다. 예측이 가능한 행동, 감정, 선택에서 드러나는 이 질서는 시간이 흐르면 개성 있는 ‘자아‘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 P35

당신에게 스키가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면 그 장면에 당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넣어보라. 그것은 성가대에서 부르는 합창일 수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일일 수도 있고, 춤이나 카드놀이, 독서일 수도 있다. 혹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당신도 일을 좋아한다면 까다로운 외과 수술이나 피가 마르는 거래처와의 상담에 몰입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또는 좋아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엄마와 아기와 놀 때처럼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순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순간의 공통점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그런 경험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 P42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티끌만큼도 없다. 자의식은 사라지지만 자신감은 평소보다 커진다. - P45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고난도의 동작을 하면서 짬을 내어 행복감에 젖는다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외과의나 고난도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행복을 느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 P46

그러므로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가장 보람찬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루의 활동을 설계해야 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습관과 사회적 관성의 압력이 워낙 크게 작용하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지, 어떤 일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밤에 일기를 적거나 하루 일과를 반성하는 버릇을 들이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과연 무엇인지를 차분히 추려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활동이 명확히 드러나면, 바람직한 활동은 빈도를 늘리고 그렇지 못한 활동은 빈도를 줄이는 새로운 실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 P54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차츰 의욕과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고, 불안감만 조성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붕괴되는 이런 최악의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의 샘을 의식에서 지워주는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 - P85

대부분의 직업은 반복적이고 일차원적인 활동으로 바뀌었다. 매일 하는 일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슈퍼마켓 진열대에 물건을 쌓거나 단순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라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활동이 이루어지는 전체 맥락을 늘 염두에 두고 자신의 행동이 전체에 미칠 영향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직업이라도 세상을 전보다 살 만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인상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 P134

삶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을 통제하는 힘이다.
바깥에서 오는 자극이나 도전이 나의 관심을 앗아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흥미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서 둘 사이에는 피드백 관계가 형성된다. 어떤 대상에 흥미를 가지면 당연히 관심도 더 쏟게되고, 거꾸로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히 흥미도 높아지게 마련인 것이다. - P166

즐거움을 주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력이 쌓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관계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의 태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자가 되기 위해 기도를 하고 훌륭한 이두박근을 얻기 위해 운동을 한다면 활동의 의미는 반감된다. 활동 그 자체를 즐길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대수롭지 않으며 나의 관심을 다스리는데서 희열을 맛보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관심의 방향을 좌우하는 힘은 유전 명령과 사회 관습, 우리가 어릴 적에 익힌 버릇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고 우리 의식에 어떤 정보가 들어올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역은 나 자신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우리는 봐야 하는 대로 보는 타성, 기억해야 하는 대로 기억하는 타성,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을 숭배하는 사람에 대해서나 박쥐나 국기에 대해서 느껴야 하는 대로 느끼는 타성에 젖어 있다. 인생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그런 타성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생물학과 문화가 정해놓은 교본을 점점 더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이다. 삶의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 P169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자기의식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느냐다. 불가에서는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지혜를 익힌 사람은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성패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그에게는 보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만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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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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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호르몬을 가장 크게 증가시키고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까지 가장 오래 걸리는 급성 자극은 다름 아닌 사회적 평가 위협 social evaluative threat 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위협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혈압, 우울증, 심장병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가장 크게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 P55

교수가 되고 보스턴으로 연구년을 떠난 2019년, 나는 이번에는 그가 가르치는 학부 수업을 청강했다. 「빈곤, 인종주의 그리고 건강Poverty, Racism and Health」이라는 제목의 수업이었다. 차별이 어떻게 발생하고 인간의 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탐구하는 그 수업에서 데이비드 윌리엄스는 맨 마지막에 항상 유튜브 등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진행되는 사회운동들을 소개했다. 그 운동들의 가치는 알 수 있었지만, 수업의 전반적인 흐름과 약간 거리감이 느껴져 그에게 왜동영상들을 보여주는지 물었다.
"하버드의 학부생들, 특히 흑인 학생들이 이 수업을 듣고서 몇 번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 내용은 너무나 좋은데, 수업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힘들고 우울해진다고. 어떤 희망들을 함께 이야기해 주면 안 되냐고." 그러고 보니, 그는 언제부터인가 발표를 하는 자리마다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케네디 Robert Kennedy의 말을 인용한다.
"한 인간이 이상을 좇아 떨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불의에 맞서 싸울 때마다, 희망의 작은 물결ripple of hope이 세상에 보내진다. 그렇게 쌓인 물결들은 억압과 차별이라는 가장 강력한 장벽조차 무너뜨리는 파도를 만들어 낸다." - P66

‘강화된 경계심 측정‘ 설문지로 실제 차별 경험이 아니라 차별을 경험할 것 같다는 우려만으로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가령 집을 떠나기 전에 미리 오늘 어떤 일을 당할지 걱정하고 무시나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삶을 해칠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설문지로 인해 1990년대 중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중요한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당시 여러 도시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정해진 시간마다 혈압을 측정했을 때, 낮에는 젊고 건강한 흑인과 백인의 혈압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밤에 잠을 잘 때면 백인의 혈압 감소폭이 흑인보다 더 컸다. 밤에도 흑인의 혈압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늘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 긴장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 마치 잠이 들었을 때도 온전히 긴장을 놓지 못하고 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최근에는 낮에 차별을 경험한 흑인들의 경우 밤에도 혈압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여럿 나왔다. 차별적인 환경은 삶의 모든 시간에 악영향을 줄 수있다. - P73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가 외부인과 만날 때,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지 연구했습니다. 어떤 만남은 편견과 혐오의 재생산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만남이 상호 이해로 이어지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는 그 만남이 위로부터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더라도 인종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교장이, 기업주가, 대통령이 없다면 그 만남은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의 확대로 이어집니다. 저는 한국의 정치가 지난 2년 동안 이동권 투쟁의 목소리를 방관했다는 몇몇 사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가장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싸우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악화시킨 적극적 개입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P96

사회적 약자들의 싸움에 연대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의 투쟁을 함부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연구자는 이미 존재하는 사실관계에 따라서, 그 데이터에 기반해 세상을 이해한다. 그런 합리성은 종종 보수적인 현실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역사는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의 질서에 도전하며 판에 균열을 만들어 낸 이들이 열어왔다. 많은 경우, 연구자의 언어는 그 변화를 사후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 P108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과거와 어떻게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 P155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회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푸는 대신, 큰 칼을 휘둘러 자르는 것은 칼을 휘두른 이를 영웅처럼 보이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웅적 결정은 종종 상황을 악화시킨다. 면세점 노동자였던 홍 씨는 과거 회사의 엄격한 ‘꾸밈 지침‘과 관련해 "면세점 직원들은 상품보다 빛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상품을 빛나게 하기 위해 인간이 희생되어선 안 되듯이, 정책을 돋보이게 하려고 주거취약지에 머무는이들의 삶을 지워서는 안 된다.
재난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약자를 먼저 덮친다.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의 연쇄를 막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적이고 성급한 대책 발표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정책으로 생겨날 영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난한 협의 과정이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의지와 인내이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은 그 지난한 조율 과정 없이도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 힘이 있다.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어 ‘합리적‘이라고 인정받기 쉬우니까. 면밀한 검토와 협의 없이 선포되는 정책은 약자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투정이나 무능함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참사 대책이 결국 미래의 또 다른 참사를 만드는 시작이 아니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가. - P161

첫째, 학제의 차이입니다. 제 부족한 이해가 맞는다면 교수님의 공부는 사회를 관찰하고 그 변화의 동력과 과정을 기술하는 학문인 반면에, 제 공부는 어떻게든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을 살려내야 하는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응용과학입니다. 저는 의학을 공부한 보건학자이니까요. 그런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는 당장 예방할수 있는 이유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항상 앞에 있다보니, 마음이 많이 급합니다.
둘째로, 저는 연구자이지만 제가 비평가가 아니라 무대위에 올라와 있는 플레이어라고 생각합니다. 제 학문에서도 거리를 두고 시스템을 관찰하고 보다 냉정하게 분석하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려면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과정이 과학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생산되지 않은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누군가가 매우 의도적으로 준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와 내 동료들이 변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하며 당장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현실이 변화할 가능성은 요원합니다.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과학의 자정능력도 실은 그 구체적인 과정을 바라보면 누군가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P177

리 배지트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인 것은 맞지만, 정말로 변화를 원한다면 전략이 필요하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던 2019년리 배지트를 만나 반동성애 운동이 점점 더 세력을 키워가는 한국의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그녀는 "반동성애자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뒤에서 작동하는 힘을 분석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 P232

그런 과정을 겪으며 우파의 반동성애 진영 싱크 탱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그들을 보며 배운 점도 있다.
더 나은 내용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그 내용을 사람들과나눌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두고 경쟁하지만 대중과의 소통은 다르다. 과학적으로 튼튼한 언어와 대중에게 설득력 있는 언어는 다를 수 있다. 내 연구는 동성 커플이 어떻게 차별을받고 복지 혜택을 빼앗기는지 보여주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연구 결과는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내가 결혼한 것은 복지 혜택 때문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사람들에게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봤다. 결론은 사랑이고 헌신이었다. 그래서 동성 커플의 사랑과 헌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려 애썼고, 이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다. - P238

사람이 나아가는 건 답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질문을 잃지 않아서 나아가는 거예요. 중요한 질문들을 놓지 않고 있어서, 삶에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어서 그 긴장으로 나아가는 거거든요.
자신의 정치적 진영을 옹호하는 수준에서 천안함 사건을 이해하면 그 긴장이 ‘정리‘가 되어버려요. 안심이 되고 편안해지거든요. 그럼 이 책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질문이 되지 못해요. 그렇게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걱정되지요. ‘과연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어줄 것인가‘, 혹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남는 이 찜찜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자기만족을 위한 글을 쓸 수는 없잖아요.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좋은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 글을 써서, 우리 모두 시스템의 일부였기에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미래도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P303

만약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게 100인데 10밖에 못 왔어요. 그럼 90만큼 남았다고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0만큼 견디고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세상이 나아가는 건 항상 힘겹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이루어 낸 작은 성과들, 어렵지만 겨우겨우 버텨낸 무언가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지 않으면 우린 항상 져요. 내내 초라해지고, 내내 지쳐요.
또 하나, 저는 역사의 일부 특별한 순간을 빼놓고는 객관적인 조건이나 정세에서 뚜렷한 희망이 있었던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래요. 그렇다고 "희망이 없다"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지요. 희망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정세나 조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희망은어떤 에너지이고 의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다 열심히 해봤는데도 세상이 바뀌지 않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을때, "세상에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할게 아니라 "나는 지쳤어"
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것 같고 그러면 이다음에, 아직 에너지가남아 있고 아직 그만큼의 좌절을 겪지 않은 다음 세대가 바통을이어받아서 또 다른 싸움을 해줄 거라고 믿거든요. 그렇게 역사는 이어달리기처럼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피해자들은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그 막막한 싸움을 견뎌내 준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사람들로 인해서 미세해 보일지 모르지만 변화는 축적되고 있고, 미래의 피해자들은 그 변화된 무대 위에서 살아가기에 조금은 다른 싸움을 할 수 있으니까요. 미래의 사람들도 분명여전히 상처를 받고 고통을 겪겠지만, 그 무대는 오늘을 견뎌낸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희망은 실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해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싸움으로 인해 근무 중 생겨난 사건으로 PTSD를 겪는 군인들이 국가유공자가 되는 길이 조금은 더 넓어진 것처럼요.
그리고 피해자분들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보상받고 위로받고자하는 마음도 있지만, 이분들 마음속에는 동시에 ‘이 고통을 다음세대의 누군가가 또 겪으면 안 된다‘는 바람도 있거든요. 그런 마음을 기억해 주는 것, 그리고 정확한 언어로 사건을 보려고 애쓰는 것이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 준 사람에 대한 가장 나은 형태의 예의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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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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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이것은 사랑에 관한 기록이지만, 나는 ‘사랑‘의 자리에 ‘행복‘을 넣어 다시 읽는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피동적으로 얻어지고 잃는 게 행불행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영영 그 얽매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매 순간 ‘방향‘을 선택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방향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선한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른다. 그 둘은 처음에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 행복은 선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낱말에 행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행복‘이 우리에게 가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가 ‘행복‘에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언가가 바로 망각이기를 바란다. 그 낱말은 죽은 조상에게 맡기고 그만 잊자고. 할 수 있다면 ‘불행‘도 잊자고.
기쁘고 슬플 것이나 다만 노래하자고. - P34

아끼는 영화에, 단짝인 두 소년이 밤에 만나 유성우를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한참 만에 창밖으로 별이 끝없이 떨어졌고, 둘은 번갈아 감탄하며 지켜봤다. 그런데 나중에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을 잃고 추모사를 읽는 중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보이는 척하며 웃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어깨에 온통 눈을 쓴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그 말을 가져다 허공에 건넨다.
‘혼자 걸었지만 같이 걷는 척 웃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환등기를 끈다. - P13

반대로 어떤 이의 목소리를 아무래도 떠올릴 수 없어서 괴로울 때도 있다. 전화를 걸거나 다시 만나면 해결될 마음이지만,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형편도 있으니까. 그럴 때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얼굴에 비해 결코 사소하지 않다. 목소리는 눈동자와 입술과 손가락을 다 가진, 사무치게 쓰다듬고 싶은 몸이 된다. - P17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인간은 내면과 내면과 내면이 파문처럼 퍼지는 형상이고, 가장 바깥에 있는 내면이 외면이 되는 것일뿐. 외모에 관한 칭찬이 곧잘 허무해지며 진실로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려면 이렇게. 네 귓바퀴는 아주 작은 소리도 담을 줄 아는구나, 네 눈빛은 나를 되비추는구나, 네 걸음은 벌레를 놀라게 하지 않을 만큼 사뿐하구나).
그런 다음 나의 내면이 다시금 바깥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작고 무르지만, 일단 눈에 담고 나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단단한 세계를. - P25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내 손을 오래 바라본다. 나는 언제 행복했던가. 불안도 외로움도 없이, 성취도 자부심도 없이, 기쁨으로만 기뻤던 때가 있었던가. - P30

누군가의 삶을 에워싸고 떠도는 소문들을, 나는 언제나 냉담하게 듣는다. 슈니츨러의 소설 문장을 빌려와 말하자면, "한 인생 전체의 현실조차 바로 그 인간의 가장 내적인 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실의 나열에 솔깃해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 P101

흐린 날에는 모든 것이 떨어진다. 새는 날개를 떨어뜨리고(낮게 날고), 구름은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사람은 기분을 떨어뜨린다. 흔히 그보다 조금 부드러운 단어인 ‘가라앉다‘를 선택하지만 말이다.
나는 흐린 날을 다정히 맞는 편이다. 침침한 빛, 자욱한 사물들, 묵직하게 흩어지는 향. 흐린 날에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잠잠히 드러낸다. 내 안의 언어와 비언어들조차 소란스럽지 않다. 그 세계가 몹시 안온하고 충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햇빛은 온기를 주는 동시에 대상을 퇴색시킨다. 지나친 빛 속에서는 노출과다 사진 속 피사체가 그러하듯, 내가 배경 속에 희석되거나 본디와 다른 모습이 되고 만다.
그러니 진심이나 맹세는 흐린 날에 건네져야 할 것 같다. 햇빛은 사랑스럽지만 구름과 비는 믿음직스럽다. - P136

침잠은 표면적인 것과 멀어지므로 필연적으로 깊이를 얻는다(그것은 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무게도 얻는다. 내가 무게를 느낄 때를 곰곰이 따져보면, 거기에는 늘 지나친 자애와 자만이 숨어 있었다. 나를 크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우울해지는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나의 느낌이나 존재를 스스로 부풀리고싶어 하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체스터튼은 『정통』에서 그러한 무게의 해악을 설명하며, "자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라앉지 말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쾌활함 쪽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결국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 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위에 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무게에 지지 않은 채 깊이를 획득하는 일은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 P136

저녁이 안뜰에서 고요할 때,
그대의 책갈피로부터 아침이 떠오를 것이다.
그대의 겨울은 내 여름의 그늘이 될 것이고
그대의 빛은 내 그늘의 영광이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 함께 계속해 나아가자.

보르헤스, 「라파엘 칸시노스-아센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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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이다 -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개정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나무생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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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이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인문학의 만트라(mantra, 呪文)에 담긴 진정한 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덜 교만하고,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확신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약간은 소유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확신하기 쉬운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었다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 P39

이것은 미덕의 문제가 아닙니다-이는 우리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디폴트세팅, 즉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자기중심적인 본성과 자신이라는 렌즈로 만물을 보며 해석하도록 되어 있는 경향을 무슨 수로든 개조하든가 지워버리든가 하는 작업을 자기 과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태생적인 디폴트세팅을 이처럼 조절(adjust)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흔히 ‘잘 적응한(well-adjusted)‘, 즉 정신적·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이런 표현이 결코 우연히 생긴 묘사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 P50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 P59

나 자신이 바로 이 세상의 중심이며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욕구와 감정만이 세상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이어야 한다고 믿는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모드가 작동하고 있을 때, 나는 일상의 권태롭고 불만족스럽고 다사다난한 부분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P91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 P128

자각 있게, 어른스럽게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든 일입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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