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읽기 시작한 '박완서 朴婉緖 :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 1931년~2011년' 프롤로그에 김병익(언론인 출신으로 '문학과 지성' 동인이었다)이 머리글을 썼다. 제목은 '못 가 본, 새로운 길의 더 아름다움 - 박완서 선생의 구술 총서 발간의 의미'이다. 


이 글에 나오기를 김병익은 고 박완서 작가가 1970년 여성동아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었을 때 동아일보 기자로서 인터뷰를 한 인연이 있고 2007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의 해설을 썼다. (그리고 김병익은 박완서와 함께 4인 공동산문집 '아름다운 성찰'(1999)을 간행한 적이 있고 박완서가 세상을 떠난 해인 2011년에 나온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 - 박완서 문학앨범'에도 글을 실었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못 가 본 길을 향해'란 소제목이다)에서 필자는 박완서를 "개성의 변두리 마을에서 자란 평범한 한 시골 소녀'(31쪽)라고 썼는데 읽는 나는 어쩐지 '평범'이란 단어가 거슬린다. ( '변두리'나 '시골'이란 단어가 더 거슬리는 독자도 있으리라.) 


글쎄, 평범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대신 비범한 소녀라고 썼다면 내 맘이 좋았을까. 그것도 글쎄올시다. 결론적으로 평범과 비범 둘 다 필요 없지 않을까. 어떤 단어를 쓰고 안 쓰고는 당연히 쓰는 자의 자유이나 내 보기엔 그렇다는 말이다.


cf. 박완서가 태어나고 자란 북한 개풍 박적골의 옛집 확인 https://v.daum.net/v/2026061915373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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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일반인 관람이 가능한 박완서 아카이브 전시가 열리고 있다. 8월 말까지. * 박완서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https://lib.snu.ac.kr/about/notice-news/notice/?mod=document&uid=369639


오래 전에 사 두기만 하고 여태 펼치지 않은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예술사 구술총서 '박완서 朴婉緖 :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 1931년~2011년'은 고 박완서 작가 별세 다음 해인 2012년에 출간되었다. 1931년 가을에 태어나 2011년 초에 돌아가셨으니 만 팔십을 못 넘겼다.


기록을 위한 첫 면담이 2008년 7월 4일에 이뤄진다(35쪽). 작지만 신기한 우연이다. 바로 오늘이 7월 4일이니까. 2008년의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지금은 토요일, 토요일 밤의 열기가 느껴지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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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st Road, 1867 - 1869 - Fyodor Vasilyev - WikiArt.org


cf. '숲의 정령'이란 제목으로도 번역되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이탄을 몸소 캐내고, 숲을 가꾸는 건데요……. 어쩐지 이상해요. 한 마디로 당신은 나로드니키* ...... *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의 청년 귀족과 급진적 지식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본주의적 사회주의. 또는 그런 사상을 가진 집단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짧게 말씀드리면, 당신의 숲, 이탄, 수놓아진 셔츠, 그 모든 것은 자만이자 잘난 척하는 것, 거짓이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저이는 멋지게 말하지만, 그게 미사여구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어! 오로지 숲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말하면서 나무나 심고 있는데……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정신병일 가능성도 많잖아……. (두 손을 얼굴을 감싼다) 모르겠어! (운다) -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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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희곡전집 수록작 '숲의 수호신'(김규종 역)으로부터 옮긴다. 

Forest path, c.1870 - Ivan Kramskoy - WikiArt.org








필요해서 벌목하는 건 가능하지만, 숲을 파괴하는 것은 그만둬야 합니다. 모든 러시아의 숲은 도끼에 찢겨져나가고, 엄청난 수의 나무가 죽어가고 있어요. 길짐승과 날짐승의 보금자리는 황폐화되고, 하천은 얕게 말라가고 있으며 기막힌 풍경은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게으른 인간이 몸을 숙여 땅에서 땔감을 주워 올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보여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걸 난로에 태워버리고, 창조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하는 것은 무분별한 야만인이나 하는 짓이에요.

앞으로는 절대로 숲이나 의학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당신이 그것에 대해 말을 하고 나면, 마치 도금하지 않은 그릇으로 식사를 했다는 느낌이 온종일 들거든요. 안녕히 계십시오. (나간다) - 1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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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는 '바냐 삼촌' 과 비슷한 희곡을 먼저 쓴 적이 있다. 아래 글은 체호프 희곡 전집(김규종 역)이 출처이다.

Ceremony in Memory of Anton Chekhov in Badenweiler 1908, 25 July, photo taken in the Chekhov Museum in Badenweiler By Brücke-Osteuropa (위키미디어커먼즈)






성숙한 극작가 체호프의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 화장기 없는 초창기 체호프를 볼 수 있는 희곡이 <숲의 수호신>이다. 낭만성과 사실주의, 이상과 현실, 소설과 드라마의 요소가 상호 충돌하면서 불협화음을 내는 희곡이다. 죽을 때까지도 출간이나 공연을 고려하지 않았던 극작가의 완강한 태도가 작품을 바라보는 그의 입장을 웅변한다. 그럼에도 훗날 <바냐 외삼촌>의 골간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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