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나온 타계 15주기 박완서 대표 단편선 '쥬디 할머니'는 '소설가가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책소개를 보면 "『쥬디 할머니』는 박완서 단편문학의 뛰어난 성취를 새로이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책으로, 31명의 한국 대표 소설가에게 ‘박완서 단편 소설 전집’(전7권, 문학동네, 2013)에 수록된 97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최고의 작품 2~3편을 추천받아 최종 10편을 선해 엮었다"고 한다. 종이책 책날개뒤에 31명의 추천자 명단이 있다. 그런데 누가 어떤 단편을 추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추천사 같은 것도 없다. 뭐 사정이야 있겠지만 독자로서 좀 아쉽다. 심지어 책날개가 있을 리 없는 전자책에는 추천자 명단 자체가 실려 있지 않다.


cf. 출간 전 주간 문학동네에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이 선공개로 게재되었다. https://weekly.munhak.com/articleDetail/96 순위가 제일 높은(추천자들이 가장 많이 고른) 단편은 '도둑맞은 가난'이고 그 다음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고.

Red and Pink Roses, 1940 - Francisc Sirato - WikiArt.org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표현은 김현승 시인의 시 '눈물'이 원천이다.
* 눈물 / 김현승 https://raincat.com/poem/7021?ckattempt=2





느닷없이 웬 은하계냐구요? 제가 너무 견딜 수 없을 때 외는 주문이 바로 은하계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죠. (중략)

대강 이 정도가 제 주문의 요지예요. 그걸 다 어디서 주워들었느냐고요? 집에 굴러다니는 『소년우주과학』인가 하는 책에서 본 거예요. 아이들이 어려서 보던 꽤 낡은 책이니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가 틀리게 외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구요. 틀려봤댔자죠, 뭐. 백만 광년이나 십억 광년이나 어차피 제 상상력이 미칠 수 있는 한계 밖의 수치니까요. 정확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천문학적 단위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망망한 바닷가의 모래알만도 못하게 극소화시키는 효과는 그만이에요. 그 모래알에 붙어사는 인간의 운명이나 수명 따위도 덩달아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죠.

이제 아시겠어요? 그 소리가 왜 저한테 주문이 되는지. 잠시 동안이라도 제 태산 같은 설움이 안개의 입자처럼 미소하고 하염없어져요. 이젠 뜻 같은 건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정확도 같은 건 더구나 문제도 안 되고요. 그 소리만 일단 달달달 외고 나면 조건반사처럼 나른하고도 감미로운 허무감에 잠기게 되거든요. 형님, 그동안 제가 그렇게 살았다우. 주문이 계속해서 효과가 있었더라면 형님한테 가르쳐드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글쎄 그 주문 가지고도 도저히 안 될 때가 있더라구요. 안 듣는 주문이 돼버렸으니까 가르쳐드린 거예요. -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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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호원숙)에 인용된 박완서의 첫 작품 '나목' 속 개성만두이다.

개성 만두 (출처: 중앙일보 )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450100






[개성 만두는 생김새부터가 유머러스하거든요. 얄팍하고 쫄깃하게 잘 주무른 만두 꺼풀을 동그랗게 밀어서 참기름 냄새가 몰칵 나는 맛난 만두소를 볼록하도록 넣어서 반달 모양으로 아무린 것을 다 시 양끝을 뒤로 당겨 맞붙이면 꼭 배불뚝이가 뒷짐 진 형상이 돼요.] 어머니의 첫 소설 『나목』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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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의 베르그송 편을 읽고 있다.

Inscription sur un pilier du Panthéon de Paris à la gloire d'Henri Bergson, philosophe Auteur Piero d'Houin, Inocybe pour Wikipédia Année 2006


앙리 베르그송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9b1857b





본능과 지성은 다른 하나가 없이는 결코 완전하게 존재하지 못하지만, 대체로 지성은 인간에게 재난을 초래하는 불운인 반면 본능은 개미나 벌이나 베르그송에게나 최선의 상태를 보여 준다. 지성과 본능의 구별은 베르그송 철학의 근본인데, 많은 부분이 일종의 샌드퍼드와 머턴152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본능은 착한 놈이고 지성은 나쁜 놈이라는 식이다.

152 * 토머스 데이(Thomas Day)(1748~1789)가 루소의 『에밀』의 영향을 받아 쓴 아동 소설 『샌드퍼드와 머턴의 내력(The History of Sandford and Merton)』에 등장하는 두 소년. 농부의 아들인 샌드퍼드는 신사 계급의 아들인 머턴이 노동의 의미와 게으른 부자의 사악함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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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를 계속 읽자.

베르그송의 묘 Par ManoSolo13241324 (위키미디어커먼즈)


창조적 진화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0c1858a












베르그송의 비합리주의는 정치와 무관한 영역, 예컨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1856~1950)에게서 더 큰 호감을 얻었으며, 그의 『므두셀라에게 돌아가라』150는 순수하게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사상을 구현한 작품이다.

150 * 버나드 쇼가 쓴 다섯 편의 연작 희곡이다. 에덴동산부터 1920년대까지 진행된 극적 우화를 통해 창조적 진화라는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므두셀라’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구약 시대 족장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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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 '체호프 희곡선'(박현섭 역)의 해설로부터 옮긴다. 

Taganrog. Monument to Anton Pavlovich Chekhov By Alexxx1979 (위키미디어커먼즈) 타간로그는 체호프의 출생지이다.






스물한 살 의대생 시절에 첫 장막극 「플라토노프」(1881년,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를 들고 공연을 부탁하기 위해 유명한 ‘말리 극장’을 찾아갔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한 일화는 지난한 역정의 서막일 뿐이었다.

작가는 「플라토노프」로부터 8년 뒤에 장막극 「이바노프」(1889)를, 그리고 다음 해에 장막극 「숲의 정령」(1890)을 발표했지만, 두 작품의 공연 또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숲의 정령」은 그로부터 7년 뒤에 발표된 「바냐 삼촌」의 원시 판본으로 간주되며, 「이바노프」는 훗날 평자에 따라 「갈매기」보다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 시기에 체호프의 극작술은 아직 그 본령을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체호프는 「숲의 정령」 이후 6년 동안 장막극에 손을 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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