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나온 타계 15주기 박완서 대표 단편선 '쥬디 할머니'는 '소설가가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책소개를 보면 "『쥬디 할머니』는 박완서 단편문학의 뛰어난 성취를 새로이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책으로, 31명의 한국 대표 소설가에게 ‘박완서 단편 소설 전집’(전7권, 문학동네, 2013)에 수록된 97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최고의 작품 2~3편을 추천받아 최종 10편을 선해 엮었다"고 한다. 종이책 책날개뒤에 31명의 추천자 명단이 있다. 그런데 누가 어떤 단편을 추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추천사 같은 것도 없다. 뭐 사정이야 있겠지만 독자로서 좀 아쉽다. 심지어 책날개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전자책에는 추천자 명단 자체가 실려 있지 않다.

Red and Pink Roses, 1940 - Francisc Sirato - WikiArt.org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김현승 시인의 시 '눈물'이 원천이다. * 눈물 / 김현승
https://raincat.com/poem/7021?ckattempt=2

느닷없이 웬 은하계냐구요? 제가 너무 견딜 수 없을 때 외는 주문이 바로 은하계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죠. (중략)
대강 이 정도가 제 주문의 요지예요. 그걸 다 어디서 주워들었느냐고요? 집에 굴러다니는 『소년우주과학』인가 하는 책에서 본 거예요. 아이들이 어려서 보던 꽤 낡은 책이니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가 틀리게 외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구요. 틀려봤댔자죠, 뭐. 백만 광년이나 십억 광년이나 어차피 제 상상력이 미칠 수 있는 한계 밖의 수치니까요. 정확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천문학적 단위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망망한 바닷가의 모래알만도 못하게 극소화시키는 효과는 그만이에요. 그 모래알에 붙어사는 인간의 운명이나 수명 따위도 덩달아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죠.
이제 아시겠어요? 그 소리가 왜 저한테 주문이 되는지. 잠시 동안이라도 제 태산 같은 설움이 안개의 입자처럼 미소하고 하염없어져요. 이젠 뜻 같은 건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정확도 같은 건 더구나 문제도 안 되고요. 그 소리만 일단 달달달 외고 나면 조건반사처럼 나른하고도 감미로운 허무감에 잠기게 되거든요. 형님, 그동안 제가 그렇게 살았다우. 주문이 계속해서 효과가 있었더라면 형님한테 가르쳐드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글쎄 그 주문 가지고도 도저히 안 될 때가 있더라구요. 안 듣는 주문이 돼버렸으니까 가르쳐드린 거예요. -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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