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로베르트 발저) 수록작 '초록'(1911)으로부터 옮긴다.





세상 어떤 색도 초록만큼 이 행성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을 표현해주지 못한다. 초록은 세상의 명예이자, 가장 위대하고 장엄한 색이다. 또한 색의 출발점이자 총체이자 자랑이다. 초록은 색의 영혼이다.

초록은 죽음이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 이것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우리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나는 안다. 그것도 정확히 안다. 꽃피는 봄은 시간이 갈수록 인간에게 점점 더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사실을. 봄이 되면 만물은 수분을 흠뻑 머금고, 온통 초록으로 춤을 춘다. 그러면 인간의 모든 일이 환한 대낮의 미친 짓거리처럼 이상해 보인다. 사실 초록에도 광기 같은 것이 있다. 꽃을 피우는 것도 광기가 아니면 뭘까? 파르르 떨리는 반짝임은 광기다. 분명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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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조지 손더스)로부터 옮긴 아래 글은 첫 편인 단편소설 '마차에서'(체호프) 에 관한 내용이다.

Landscape with carts - Ivan Shishkin - WikiArt.org


cf. '마차에서'는 '여교사'로도 번역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에너지의 전이 체계로 생각할 수 있다. 에너지는 바라건대 앞의 몇 페이지에서 만들어지는데, 요령은 뒤의 페이지에서 그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마리야는 불행하고 외롭게 창조되었으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더 구체적으로 불행하고 외로워졌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만들었고 또 써야만 하는 에너지다.

우리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그녀가 그렇게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이 이야기의 에너지는 그녀가 약간 숨통이 트이기를 바라는 우리의 희망 안에 쌓이고 있다.

앞쪽에서 이야기는 말했다. "옛날에 외로운 사람이 있었다." 이야기는 "그런데 멋지지 않아? 그 외로운 사람이 다른 외로운 사람을 만났고 이제 둘 다 외롭지 않아" 하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쪽으로 가기를 거부하여 이제 더 심오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외로운 사람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여기가 나에게는 이 이야기가 크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외로움은 진짜이고 심각해서 그 안에 갇힌 우리 일부에게는 빠져나갈 쉬운 길이 없으며 가끔은 아예 출구가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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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오월이다. 나무들에 물이 잔뜩 올랐다. 채소책을 찾는다. 종종 채소책을 읽는다. 채소 먹는 것보다 채소책 읽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채소강박에 비해 채소를 별로 많이 먹지 않는 나, 또 채소책을 읽자. '단단'이란 필명의 작가가 쓴 '매일매일 채소롭게 - 작지만 단단한 변화의 시작은 채소였어'를 골랐다. 부제의 '단단한 변화'에서 딴 필명인가 보다. 아래 내용과 비슷하게 나도 샐러드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By Jengod (위키미디어커먼즈)







예전에는 채소 섭취를 늘리려면 샐러드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상추나 새싹잎, 로메인 등을 작게 잘라서 드레싱을 뿌려 먹는 샐러드만 알던 그 시절에는 그리 맛있지는 않지만 몸에 좋으니까 채소를 먹는다고 생각했다. 샐러드용 채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자극적인 드레싱도 별로였다. 엄마가 해 주던 나물은 맛있지만 손이 많이 갈 거라고 생각해 지레 겁을 먹고 도전하지 않았다.  

한 가지 채소로 다양하게 해 먹기 시작하면서 채소의 매력을 알아 갔다. 세상에 관심 갖고 바라보면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채소라고 예외일까. 다양하고 예쁘고 재미있는 채소. 아직도 만나지 못한 제철 채소가 한가득이다. 서둘러 만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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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버지니아 울프)에 실린 캐서린 맨스필드에게 버지니아 울프가 1921년에 쓴 편지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캐서린 맨스필드 동상 (뉴질랜드 웰링턴) Photo By Ballofstring 위키미디어커먼즈






내가 당신에게서 정말 많이 존경하는 점은 당신의 투명성입니다. 내 것은 흐려지고 있거든요.

내게 당신은 매우 곧장 똑바로 가는 것처럼 보여요. 유리처럼 완전히 투명하게, 정제되고 영적으로요. 하지만 다시 제대로 꼼꼼히 읽어 봐야겠습니다. 나는 다만 모든 사실주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오직 생각과 느낌만 있고 컵도 없고 식탁도 없는 것. 당신의 다음 책‡은 언제 나오나요?

‡ 1922년 출간된 《가든파티》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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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에서 처음 다루는 작품은 체호프의 단편소설 '마차에서'이다.

Illustration to Anton Chekhov's In the Cart By Aleksandrs Apsītis (위키미디어커먼즈)


In the Cart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In_the_Cart '마차에서'는 '여교사'라는 제목으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세상에서 지금 막 처음으로 추락하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얼마 전에 추락했고 추락한 자신의 상태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이제는 특별히 화를 내지도 않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녀는 추락했고, 지금도 추락하고 있고, 아마 계속 더 추락할 것이다.

마리야는 이 일에 발언권이 없으며, 이야기의 중심인물이자 가장 영리하고 가장 자의식이 강한 사람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결과를 감당하며 그냥 앉아 있으려 한다.

외로운 여자가 연인 후보를 우연히 만난다.
우리는 이제 이 단계를 지나서 다음에 이르렀다.
외로운 여자가 연인 후보를 우연히 만나는데, 이 사람은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그녀는(또 우리는) 어차피 이것이 공허한 희망임을 깨닫고, 찻집에서는 거의 수모를 당하고, 여행의 외면적인 목적(물건 구입)은 무효가 된다.

왜 체호프는 마리야의 삶에서 이날을 선택하여 서술했을까? 다른 식으로 물어보자. 오늘 마리야에게 무엇이 달라졌나? 우리가 첫 페이지에서 만난 여자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에게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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