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드 누네즈 장편소설 '친구' 첫 머리에 이탈리아 여성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글이 한 문장 인용된다('미리보기'를 통해 읽을 수 있다). 그 글이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산문집 '작은 미덕들'에 실려 있는데 '친구' 인용문으로 시작하는 문단을 옮긴다. 글 전체가 다 좋지만 후반부에 위치한 이 부분 이하는 특히 강력하다. 이 글의 제목은 '나의 일'이다.

By Loretta Junck - Torino, Aiuola Natalia Levi Ginzburg, CC BY-SA 4.0 나탈리아의 결혼 전 성이 '레비'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슬픔을 달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이 우리를 어루만지고 달래주리라는 착각에 빠질 수 없다. 내 인생에서 쓸쓸하고 공허한 일요일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뭔가를 쓸 수 있기를 열렬히 바랐다. 글을 쓰며 고독과 권태를 위로받고, 문장과 단어가 날 어루만지고 달래주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줄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일은 나를 항상 거부했고 나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일은 위로나 오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친구가 아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피가 날 정도로 채찍을 휘두를 수 있는 주인이며 고함을 치고 정죄하는 주인이다. 우리는 침과 눈물을 삼키고 이를 악물고 상처의 피를 닦고 주인을 섬겨야만 한다. 그가 원할 때 섬겨야 한다. 그러면 그는 우리가 일어서서 두 발로 확실히 땅을 딛고 서게 도와줄 것이다. 광기와 섬망을, 절망과 열병을 이겨내게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명령하길 바라며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할 때 우리 말에 귀 기울여주려 하지 않는다. - 나의 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ingri 2025-02-25 0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좋네요^^

서곡 2025-02-25 11:30   좋아요 1 | URL
책 표지도 독특하지요 ㅎ
 

이탈리아 여성 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산문집 '작은 미덕들'로부터 옮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브루초주 [Abruzzo]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Costume of Scanno (Province of Abruzzo in the Kingdom of Naples), 1820 - Michela De Vito - WikiArt.org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에 나탈리아의 남편 레오네가 쓴 글이 실려 있다.

Bagnoli costume (Province of Abruzzo in the Kingdom of Naples), 1820 - Michela De Vito - WikiArt.org


고 서경식 작가의 '내 서재 속 고전'과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에 이 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정의의 실천 게을리 말라는 우리 모두에 대한 유서] https://v.daum.net/v/20140126195008179 참고.





겨울의 끝자락이 되자 우리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불안감 같은 게 깨어났다. 어쩌면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올 수도 있었다. 마침내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우리들의 유형 생활도 끝나야만 했다. 세상과 우리를 갈라놓은 길들이 더욱 짧게만 보였다. 우편물들이 더 자주 도착했다. 우리의 동상은 서서히 아물었다. - 아브루초에서의 겨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에세이 '작은 미덕들'에 수록된 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브루초주 [Abruzzo] (유럽지명사전 : 이탈리아)

Abruzzo wedding - Pasquale Celommi - WikiArt.org


'작은 미덕들' 전에 번역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파시즘 시대 이탈리아 유대인 가족의 초상, 밀어로 빚다] https://v.daum.net/v/20160425133502515






2월이 되자 공기는 축축하고 부드러워졌다. 회색의 무거운 구름들이 하늘에 떠다녔다. 한 해는 눈이 녹으면서 홈통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집 안으로 물이 흘러내려 방 안은 진짜 늪이 되어버렸다. 우리 집만이 아니라 온 마을이 다 그랬다. 물기가 없는 집은 단 한 집도 없었다. 여자들은 창문에서 양동이의 물을 비우고 빗자루로 물을 문밖으로 쓸어냈다. 우산을 펴놓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도 있었다. 도메니코 오레키아는 어떤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눈의 흔적이 지붕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아리스티데는 홈통을 수리했다. - 아브루초에서의 겨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년 오늘의 포스트로부터: 무민 연작 '마법사가 잃어버린 모자'의 한 장면이다. 폭풍이 닥친 후 바닷가에 밀려온 물건 중 배 앞에 붙이는 선수상이 있는데 아름다운 아가씨의 형상이다.


선수상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2s0293a

May 1909 By Alfred Pearse * 선수상 사진을 찾다가 발견했다. 여성참정권 캠페인이다.






헤물렌이 물었다.
"그런데 왜 등이 없을까요?"
스노크가 대답했다.
"당연히 뱃머리에 달아야 하니까 그렇지.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이해하겠네!"
스너프킨이 말했다.
"모험호에 달기에는 너무 커. 정말 아쉬운걸!"
무민마마가 한숨을 쉬었다.
"어머, 정말 아름다운 아가씨인데 어째! 이렇게나 예쁜데 마냥 기뻐할 수가 없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식탁 위의 책들 -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종이 위의 음식들'(정은지)로부터 옮긴다.

작년 2월의 내 밀크티 사진이다. 오늘은 올해 2월의 마지막 일요일, 곧 3월이다.






나는 매일 아침 직접 홍차를 끓인다. 찻주전자와 머그를 정성껏 데우고 물이 팔팔 끓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행여 식을세라 찻주전자에 재빨리 물을 붓고 머그에는 우유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듬뿍 넣는다. 다 우려진 차를 따르기 시작하면 우유는 점점 진해진다. 언제 멈춰야 할지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따끈한, 하지만 너무 뜨겁지는 않은 밀크티가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나가면 나는 일상을 이어갈 작은 용기를 얻는다. 비록 설탕은 넣지 않았을지언정 그것은 틀림없이 노동자의 홍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