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진다.

짜장면 By 국립국어원, CC BY-SA 2.0 kr






엄마는 아빠를 또 만날 생각이 없었다. 딸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니까. 악착같이 돈을 벌기로 결심한 날이었으니까. 그래서 엄마의 것까지 계산하겠다는 아빠의 제안을 거절했다. 엄마는 자신의 칼국수값을 내면서 저는 딸이 있어요, 애엄마라고요, 라고 말했다. (사실 아빠도 엄마를 또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게 주인이 찜통에서 막 만두를 꺼내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그 안에 하얀색 만두가 가지런히 있는 것을 보면 누구든지 사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법이라고 아빠는 말했다.) 아빠는 만두 2인분을 사서 엄마에게 주었다. "아이에게 갖다주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빠는 엄마가 혼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하고 말았다. "어린이날 제가 짜장면 사줄게요."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민주 누나를 만나러 서울에 갔다. 그날 이외에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아빠도 한 달에 한 번씩 엄마를 따라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하면 둘은 헤어졌다. 엄마는 큰삼촌 집으로 가고 아빠는 남산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서울역에서 만나 돌아왔다. 민주 누나에게 짜장면을 사주겠다는 약속은 그해 어린이날이 아니라 다음해 어린이날이 되어서야 지킬 수 있었다. - 눈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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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은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고 와서 브레히트의 시 '의심을 찬양함'을 찾아보는 것으로 2020년 김승옥문학상작품집 작가노트를 시작한다.

By Adam Jones from Kelowna, BC, Canada - Bust of Bertolt Brecht by Fritz Cremer (1956) - Bert-Brecht-Haus - Augsburg - Germany, CC BY-SA 2.0






작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를 봤다. 공연 내내 ‘의심을 품는 것은 찬양할 만한 일이다!’라는 브레히트의 시구가 떠올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집을 찾아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펼쳐본 1992년판 『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마당). 그런데 전에는 그리 의식하지 않았던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생각 없는 사람들을/ 절대로 행동할 줄 모르는 생각 깊은 사람들이 만난다,/ 이 생각 깊은 사람들은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단을 피하기 위해서 의심한다." - 작가노트 | 의심을 찬양하는 의심(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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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출간된 '돌연한 출발 - 카프카 탄생 140주년 기념 단편선'(전영애 역)으로부터 옮긴다. '옆 마을'은 2부의 첫 글이다. 

A View of the Village - Willard Metcalf - WikiArt.org


프란츠 카프카 서거 100주년…전시·강연·낭독회까지 풍성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40602_0002757780&cID=10701&pID=10700 작년 기사이다. 카프카는 1924년에 별세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놀랍게도 짧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걸. 예를 들자면 한 젊은이가 — 우연히 맞닥뜨린 횡액이야 제쳐 놓더라도 —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조차도 그런 나들이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어떻게 옆 마을로 말을 타고 나설 작정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말이다. - 옆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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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르누스의 매직 아이-발터 베냐민의 시선으로 보는 오컬트와 미래'(김용하 지음) 중 베냐민(벤야민)과 브레히트에 관한 부분으로부터 옮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nfred Kindlinger님의 이미지


카프카 단편선 '돌연한 출발'(전영애 역)에는 '옆 마을'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베냐민과 브레히트는 1934년 8월 5일과 31일의 대화에서 카프카의 〈이웃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카프카의 작품 중 왜 유독 〈이웃 마을〉과 같은 소품에 주목하는지 궁금했다.〈이웃 마을〉에서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압축해서 전달한다. 할아버지는 인생무상을 말하면서 과거를 돌아본다. 그는 젊은이가 행복한 일상의 순간에 말을 타고 이웃 마을로 길을 떠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삶에서 행복과 불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나간 시간을 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젊은이의 삶에 대한 맹목적 결단을 이해하지 못한다. - 에필로그 사투르누스, 벌거벗은 행복을 관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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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인 엘리엇에게 큰 관심은 없었지만 데리다와 연결되어 있어 흥미를 가지게 된 책이다.

Table, 2001 - Jennifer Bartlett - WikiArt.org


T. S. 엘리엇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19000088





"우리가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세계는 테이블 위에, 그저 ‘저기에’ 펼쳐져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에게 있어서 초월경험은 현실 속에서 가능한 사건이 아니다. 그 대신 엘리엇이 미적 경험을 제시하면서, 엘리엇의 문학적 전환은 완성된다. 절대자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절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엘리엇의 철학적 입장은, 로고스의 존재는 편의상 인정하면서도 로고스중심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데리다의 해체론과 만난다. - 제4장 상대적 관념론 : 엘리엇 전기시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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