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aladin.co.kr/790598133/15061862 작년 오늘 포스트에 이어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으로부터 아래 옮긴 글에 인용되고 언급된 책은 디디온의 '상실'이다.

Still Life of Flower - Arshile Gorky - WikiArt.org






작품 속에서 디디온은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며 느낀 슬픔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슬픔과 대조시킨다.

[슬픔이 다가올 때는 어떠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그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감정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여든다섯 생신을 며칠 앞두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흔한 살이 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으며, 두 분 다 몇 년 동안 노환을 겪은 후였다. 각각의 경우에 내가 느꼈던 것은 슬픔과 외로움(나이가 몇이든 간에 버려진 아이가 느낄 만한 외로움), 가버린 세월, 하지 못한 말, 마지막에 두 분이 느껴야 했을 고통과 무기력감, 육체적인 굴욕감을 함께 나누지 못한, 아니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한 내 무능력에 대한 후회였다.]

나는 책에 완전히 몰입했고, 위의 구문으로 자주 돌아가고는 했다.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슬프기는 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 할 수 있는 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어머니의 고통과 무기력함과 육체적인 굴욕감을 인식하고 달랠 기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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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9j0772a 오늘은 전태일 기일이다. '전태일 불꽃이 된 노동자'(오도엽)로부터 옮긴다.



[전태일 54주기…사랑은 언제나 바보들의 것]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166950.html





"노동자도 당당하게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있어. 우린 이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어. 공장주인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말이야. 그러니 우리 재단사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야. 바보처럼 살았다는 걸 알아야 바보 신세를 벗어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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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11-15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곡님 편안한 한 주 보내셨나요.
11월은 10월보다 더 빠르게 가는 것 같아요.
이번주 따뜻했지만 다음주는 다시 많이 추워집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서곡 2024-11-16 09:01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주가 좀 바빠서 후다닥 지나갔네요 어느새 주말입니다 감기는 다 나았는데 추워진다니 조심해야겠습니다
 


제1인터내셔널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9j1873a


세인트 마틴 홀 (1850) By Numerous Engravings * 인터내셔널 창립총회가 열린 장소.






제1인터내셔널은 전문직 종사자, 공장 노동자, 일부 이데올로그, 그리고 한두 명의 수상쩍은 모험가들로 구성된 기묘한 혼합체였는데, 이들 가운데 지성,혁명의 경험, 의지력 면에서 마르크스에 견줄 만한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인터내셔널은 그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지만 수입에는 보탬이 되지 못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철도회사의 접수원 자리에 지원했지만 다 헤진 옷과 위협적인 외모가 고용주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을 리없다. 더욱이 그의 지원서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접수조차 되지 못했다. - 9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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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Museum Library (2005) By http://www.cgpgrey.com, CC BY 2.0







당시 런던은 독일인 망명자들의 집합소였다. 그들은 대개 해체된 혁명위원회들의 구성원들, 추방된 시인과 지식인들, 혁명이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영국에 정착해 있던 모호한 급진주의적 성향의 직공들이었다.

마르크스는 매일같이 대영박물관의 열람실에 갔다. 대개 오전 9시에 가서 열람실이 문을 닫는 오후 7시까지 있었다. 귀가 후에는 밤늦게까지 줄담배를 피우며 연구에 몰두했다. - 8 런던에서의 망명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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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과 1848년의 세계 https://ws.or.kr/article/20064






『공산당 선언』의 시작과 끝부분은 요약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잘한 요약도 원문이 담고 있는 본질적 특징과 힘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선전의 도구로서 『공산당 선언』에 필적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산당 선언』이 후속 세대들에게 미친 지대한 영향은 종교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견줄 데가 없다. 마르크스는 이 문건 하나만으로도 불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 18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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