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의 광복절이 지나고 오늘은 팔월의 일요일이다. 근래 읽은 산문집 '그리운 동방'(김소진) 3부 책글 편에 '팔월의 일요일들'(파트릭 모디아노) 서평이 실려 있다. 꼭 이십년 전 이 즈음 발표했다.


Image by G-tech from Pixabay
이따금씩 소설의 ‘소‘자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해볼 때가 있다. 굳이 대설이라 이름 붙이지 않은 것은 아마 소설이 우리의 삶이란 어떤 일사불란한 대의 명분과 명확한 의미의 사슬로 엮인 게 아니라, 사실은 덧없는 파편과 우연의 연속임을 잘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일까?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팔월의 일요일들』은 그렇게 파열해버린 인간들의 희미한 삶의 자취를 가감 없이 더듬어보는 게 소설의 몫이자 잔잔한 감동의 원천임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표면적 모티프는 실종이다. 종적 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이 소설에서 실종은 인간 관계의 돌연한 단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과거 속으로 파묻혔거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관계망들을 새롭게 들춰보고 또 반추하는 계기가 된다.
줄거리나 구성은 몹시 통속적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철저히 기억의 힘에 의존해 빚어졌다는 점에서 비통속적이다. 왜냐하면 기억이란 너무나 배타적이며 개인적이어서 타자의 섣부른 개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이미 흘러가버린 어떤 막연한 느낌이나 인상에 대한 집착이어서, 장이 유일하게 행복감에 젖어 추억하는 팔월의 일요일들이란 어쩌면 가공의 시공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책을 덮으면서 막 떠오른다. (경향신문 1996년 8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