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 현경이 미국의 교수가 된 후 학교가 제공한 넓은 아파트를 아름답게 꾸미는 과정이다.
Apartment View, 1993 - Wayne Thiebaud - WikiArt.org
나는 뉴욕에 와서 살면서 과거에 안 하던 짓을 시작했다. 순 한국 여자로 사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마흔 살이 되어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7년 동안 교수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을 털어서 한국의 고가구, 절과 사당에서 나온 그림들, 한국의 옛 도자기, 옹기, 부엌 용기들, 바구니, 발, 돗자리, 그리고 많은 문짝들을 돈이 되는 대로 다 사 모아서 뉴욕으로 왔다.
그때 나는 한국의 냄새, 색, 조상들의 귀신 붙은 그림들과 가구들에 싸여 살아야만 이 전쟁 같은 뉴욕의 경쟁 사회에서 당당한 한국 여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학교로부터 얻은 1백 년이 된 큰 집을, 여러 박물관과 인사동에서 사 온 한국 민속책들에 나온 사진들처럼 안방, 사랑방, 부엌, 식당, 응접실, 공부방, 여신방, 명상방, 손님방 들로 꾸몄다.
유니언 신학교의 한국 학생들이 우리 집에 와보더니, "선생님, 여기는 뉴욕 인사동 일 번지네요."라고 했다.
8월에 뉴욕에 도착해서 2월에 학교가 시작할 때까지 6개월 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의 집’을 꾸미는 데, 그리고 외국에서 시작하는 ‘중년의 삶’에 적응하는 데 시간을 거의 다 보내게 되었다.
집들이가 있던 날 새벽.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세례를 받을 아이처럼 깨끗하게 목욕한 후 싱싱하고 아름답게 단장한 나의 집을 한 방씩 둘러보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나의 집’, 나는 내 인생에서 한 번도 나의 집을, 내 맘대로, 나의 내면의 방처럼 꾸며놓고 산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자기만의 방’, 아니, ‘자기만의 집’이 생긴 것이다. 1백 년이 넘는 오래된 집. 지금 맨해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커다란 다섯 개의 침실이 있는, 저택에 가까운 교수 아파트가 주어졌다.
이 집은 미국에서 신학자가 모든 학자들 중에 제일 존경받고 잘나가던 시절, 유명한 학자들을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해, 특히 미국 남부나 유럽의 큰 저택에서 살던 학자들의 까다로운 부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저택 형식으로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이 집의 넓은 방들을 꾸미는 과정은 내 인생의 ‘결핍된 공간’이라는 한을 푸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꾸밀 땐 몰랐는데 집을 다 꾸미고 보니, 모든 방들이 나의 내면세계를 반영한 ‘심리적인 방Psychic Room’인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내가 선택한 세계의 전통들, 특히 한국의 전통들이 그 집에 흐르고 있었다.
한국 여성의 원시적인 생명력을 나타내는 무속적인 모티프로 꾸민 식당과 작은 연못이 있는 실내 정원, 에코페미니즘의 모티프로 꾸민 부엌, 불교와 무속의 치유 전통을 습합한 이미지로 꾸민 거실, 한국 전통 서재와 선방을 조합해서 꾸민 명상방, 황진이를 그리워하며 꾸민 전통 안방, 세계의 여신들을 모아 신전처럼 꾸민 붉은 여신방, 편안하고 실용적으로 꾸민 가장 기독교적인 나의 공부방, 그리고 인도의 방처럼 꾸민 손님방, 도교의 모티프로 꾸민 현관, 프리다 칼로의 화장실처럼 꾸민 멕시코식의 2층 화장실,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과 자연의 사진들로 도배한 내가 쓰는 화장실. 모두 다 내가 가장 아끼는 느낌들과 이미지들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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