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된 오늘, 정우성 배우가 낭독한 오디오북 '코끼리를 쏘다'를 오전에 듣고 '조지 오웰 산문선'(열린책들)에 수록된 '코끼리를 쏘다'로부터 발췌한다. 

USING ELEPHANTS FOR MOVING LUMBER IN RANGOON, BURMA 1921


정우성 배우가 낭독한 '코끼리를 쏘다'는 박경서의 번역이다. 조지 오웰 연구자 박경서는 다수의 오웰 저작을 번역했다.





버마 순경과 인도 치안 공무원 몇 명이 코끼리가 목격된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척 가난한 동네로, 가파른 언덕 비탈에 야자잎으로 지붕을 인 누추한 대나무 오두막들이 구불구불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이제 막 우기가 시작되어 흐리고 갑갑한 아침이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코끼리가 어디로 갔는지 탐문했지만, 늘 그렇듯 확실한 정보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를 멀리서 들을 땐 확실한 것 같지만, 사건 현장에 가까이 갈수록 모호해진다. 어떤 사람들이 코끼리가 이쪽으로 갔다고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저쪽으로 갔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코끼리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모든 목격담이 다 거짓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오두막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코끼리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코로 그를 붙잡더니 등을 밟아 진창에 뭉개 버렸다고 했다. 우기라 땅이 부드러워 남자의 얼굴이 땅에 끌리면서 깊이 30센티미터, 길이 몇 미터 정도의 도랑이 패였다. 남자는 팔다리를 십자로 뻗은 채 엎드린 자세였고, 고개가 한쪽으로 심하게 꺾여 있었다. 얼굴은 진흙으로 뒤덮였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참을 수 없는 고뇌를 나타내듯 이를 드러낸 채 씩 웃는 표정이었다(참, 나에게 죽은 자가 평화로워 보인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란다. 내가 본 시체는 대부분 악마 같았다). 거대한 짐승 발의 마찰력 때문에 남자의 등가죽이 토끼 가죽처럼 깔끔하게 벗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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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2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의 난폭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내 선입견(코기리는 양순하다)을 완전히 무너뜨리네요.ㅠㅠ

서곡 2023-12-02 08:08   좋아요 0 | URL
코끼리라고 늘 양순하지만은 않겠지요 ㅎ 코끼리가 부대에서도 많이 동원되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