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적인 강렬함 / 운명과 고통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주디스 버틀러 지음, 양효실 옮김)의 발터 벤야민 편을 계속 읽는다. 우리 나라의 여성 철학자 이주향 교수가 쓴 최근 글과 책도 가져왔다.
[이주향 칼럼 / 다윗의 별과 네타냐후 (2023. 11. 12.)] https://v.daum.net/v/20231112233732744
Niobe - Constant Permeke - WikiArt.org
니오베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4n1145a
니오베는 레토보다 자신이 아이를 더 많이 낳았다고 뽐냈고, 이에 레토는 아폴론을 보내 니오베의 일곱 아들을 죽이게 했다. 니오베는 자랑을 계속했고, 레토는 다시 아르테미스를 보내 니오베의 일곱 딸을 죽이게 했는데, 어떤 이들은 그중 하나인 클로리스는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니오베의 남편은 자결했으며, 그 뒤에 아르테미스는 니오베를 영원히 눈물을 흘리는 바위로 바꿔놓았다. 니오베의 형벌은 그녀 스스로 자초한 것이고, 그녀가 교만한 자랑의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형벌을 고안하고 니오베의 자녀를 죽이도록 사주한 것은 레토였다는 사실이 아직 남아 있다. 법적 권위를 시행한, 따라서 그 권위의 적법성을 사후에 구성한 것 역시 레토의 자식들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였다.
이제 문제는 그녀가 한 일이 그런 처벌에 부합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처벌 체계가 그녀에게 그런 폭력을 부과했는가일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떨쳐 일어나 법의 잔인성에 질문을 던지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고, 그녀가 자신에게 자행된 폭력적인 권위를 분노에 차서 거절함으로써 교만의 죄와 자녀들의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한 무한한 슬픔을 벗어버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벤야민의 초창기 논고에서 이런 논증이 좀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벤야민은 모든 법적 폭력에 반대하는 것이 의무인지, 권력을 가진 자들이 폭력을 저지르지 않도록 강제로 제한하는 의무의 형식을 지지하는 것인지, 주체들은 어떤 식으로건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미래를 위한 기획을 제공하지 않는 것, 오직 시간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미래도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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