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가 「숲의 수호신」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1888년의 일이다.

 

1889년 봄과 여름에 걸쳐 체호프는 「숲의 수호신」을 탈고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9월에 그는 작품을 파기하고, 10월초에 희곡을 새롭게 고쳐 썼다.

 

1880년대 산문을 마무리하는 중편소설 「지루한 이야기」를 탈고한 체호프는 이내 「숲의 수호신」 집필에 몰두하였다.

 

1889년 10월 19일자 페테르부르크 신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연극위원회가 「숲의 수호신」을 심의하는 자리에서 희곡은 상연의 측면에서 몇 가지 동요에 직면하였다. 이것은 드라마 작품이 아니라, 훌륭하게 각색된 중편소설이라는 사실을 위원들이 발견한 것 같다고들 말한다.”

 

1889년 12월 체호프는 사설극장인 아브라모프 극장에게 희곡을 넘긴다. 「숲의 수호신」은 그곳에서 1889년 12월 27일 초연되었다. 상연을 위하여 원작 텍스트가 현저하게 개작되었다고 전한다. 공연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삶을 기계적으로 재현했다거나, 일상적인 현실을 그대로 복사했다거나, 혹은 무대의 요구를 실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언론은 체호프를 비난하였다.

 

“나는 「숲의 수호신」을 출간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희곡을 증오하며, 그것을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희곡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희곡을 집필하고 상연하였던 상황에 책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세력이 그것을 망각으로부터 끄집어내서 살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진정한 타격이 될 것입니다.”

 

희곡 자체도, 공연도, 세간의 평가나 전문가들의 비평도 젊은 극작가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그 결과 체호프는 「숲의 수호신」 이후 상당기간 동안 장막극을 쓰지 않았다. 「갈매기」가 집필되기 시작하는 1895년 가을까지 그는 장막극에 일체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숲의 수호신」은 성숙한 극작가 체호프가 탄생하는 필수적인 밑거름 가운데 하나였다.

 

성숙한 극작가 체호프가 죽기 직전까지도 출판과 공연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희곡 「숲의 수호신」. 그것은 장르 규정부터 시작하여 실제인물 및 문학과 예술에서 과도한 인용과 차용, 적절치 않게 불리는 노래, 생명력을 잃어버려 진부하게 보이는 소품, 고전주의 드라마에나 어울릴 법한 허다한 독백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결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낭만성과 사실주의 요소가 혼란스럽게 공존하는 체호프의 장막극에도 나름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훗날 이른바 4대 장막극에서 되풀이되어 활용되는 체호프의 고유한 드라마 시학의 정초가 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울리려고 희곡을 쓰지 않았다. 나는 다른 것을 원한다. 나는 다만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말하고자 하였다. 자신을 돌아보시오! 당신들 모두가 얼마나 잘못되고 따분하게 살고 있는지를 보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리 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더 나은 삶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출처: 김규종, 체호프의 「숲의 수호신」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008) https://s-space.snu.ac.kr/handle/10371/88261 '극작가 체호프의 희곡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저자인 노문학자 김규종 교수는 체호프희곡전집(시공사) 역자이다.

Forest Road, 1867 - 1869 - Fyodor Vasilyev - WikiArt.org


[네이버 지식백과]지루한 이야기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러시아문학, 2013. 11., 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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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21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숲의 수호신>은 안읽어본거 같습니다. 읽어봐야겠네요~!!

서곡 2023-11-21 12:23   좋아요 1 | URL
전에 이 작품을 연극으로 봤습니다 바냐 아저씨의 원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