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르누스 - Daum 백과
'사투르누스의 매직 아이'(김용하 지음)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사진: Unsplash의SIMON LEE
아래 옮긴 글에 언급된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 중 '의인론, 아파테이아, 멜랑콜리' 장에 '사투르누스론'이, , 손택의 '우울한 열정'에 '토성의 영향 아래'가 실려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멜랑콜리 [Melancholy]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베냐민은 사투르누스의 멜랑콜리에 주목했다. 사투르누스는 미래로만 열린 시선을 ‘지금 시간Jetztzeit’으로 봉합하려고 했다. 멜랑콜리한 예언은 미래의 행복과 불행을 직시한다. - 머리말
발터 베냐민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의 〈사투르누스론〉에서 신화, 의학, 점성술의 관점에서 우리 시대 사투르누스의 정체성을 살펴보았다.
사투르누스를 점성술과 연관 지어 볼 때, 토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토성은 점성술에서 우울한 기운을 나타낸다. 멜랑콜리커Melancholiker는 세계가 시간의 덫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세계에 아무 미련이 없다. 세계에 미련이 없는 사람은 감동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세계의 속도와 매번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멜랑콜리커는 엇박자 속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면서 고독한 시선으로 미래로 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턱을 괴고 쳐다볼 뿐이다.
미국의 평론가 수전 손태그Susan Sontag는 〈토성의 영향 아래〉에서 베냐민을 멜랑콜리커로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지식인으로 규정한다. 토성의 영향을 받은 멜랑콜리커는 둔함, 지연, 인내, 느림, 몰입의 특징을 지닌다. 멜랑콜리커는 몰입과 집중을 통해 우울에서 벗어나 몽상의 단계로 진입한다. 베냐민은 생각의 모험을 중단하지 않았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세계의 폭력을 감각적으로 예감했고, ‘나’의 세계를 ‘너’의 세계로 유혹하는 폭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나’와 ‘너’의 교차로에서 ‘나’와 ‘너’의 폭력을 외롭게 견디면서 살았다.
로마 신화의 사투르누스는 크로노스와는 달리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크로노스의 광기와 저주는 사라지고, 축제와 자유를 허용한다. 사투르누스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되어 젊음과 풍요의 상징으로 표현되었지만, 황금시대로의 복귀를 염원할수록 추한 현실의 타락만을 확인할 뿐이다. - 프롤로그 사투르누스, 벌거벗은 시선의 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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