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왕포는 어떻게 구원되었나' https://youtu.be/h7uPlgPsRzw
유르스나르의 단편 '왕포는 어떻게 구원되었나'는 소설집 '동양 이야기'에 실려 있다. 불문학자 박선아 교수의 저서 ‘유르스나르의 문학신화학 - 전복과 회귀 사이’에 ‘제3장_ 오리엔트 신화, 서구 문예 정신의 진원지: 『동양이야기들』’이 있다.
[구원의 본질은 바로 예술의 힘에 있다. 왕포의 예술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그를 구원한 것이다. 예술을 통해 자연의 영원한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 세계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왕포처럼 평생 무소유와 무욕의 삶을 살고, 죽음과 같은 고행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입문과정이다. 마치 신화 속 인물들이 출발-입문-회귀의 난관을 거쳐야만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동양 예술은 자연의 모방 너머의 본질, 정신을 아우른다. 동양에서는 자연만물이 기가 분화되어 파생된 것으로 이해하기에 신화시대부터 자연이라는 대상의 형태와 정신의 관계를 포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동양의 미메시스는 정신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모방예술이라는 점에서 서양의 모방예술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왕포는 남들과 달리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낼 줄 안다. 그것은 그리려는 대상 자체만이 아니라 수많은 대상들을 관찰하고 종합하여 얻은 통찰의 결과이다. 이는 주어진 현상의 평범한 관찰을 바탕으로 구체적 자료에서 추상적이고 통일된 개념을 만들어내는 동양의 사유방식과 맞닿아 있다.
동양에서 초상화는 전신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정신을 전하는 것이다. 초상화가가 형상의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표현해야 감동을 주는 법인데, 그 형상의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정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는 인체를 일종의 소우주로서 인식하는 동양의 관념에 기인한다. 인간이 생명의 근원인 작은 우주를 지닌 자연인이기에, 초상화도 인체의 우주 전체가 드러나도록 가시적인 외형만이 아니라 자연의 기와 어우러진 불가시적인 성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포는 천지만물을 마치 한 사람의 몸과 똑같이 생각하는 천인합일이라는 우주관을 갖고서 자연(하늘)과 인간의 생명원리를 동일하게 생각하고 그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의 예술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왕포는 예리하고 따스한 시선과 직감을 통해 사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이 작업을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고 관찰하는 여유를 보이며, 그림의 완성에 대한 강박과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을 떠도는 왕포는 가난하지만 자유롭다. 부에 대한 욕망도 권력에 대한 희구도 없다.
동양의 일원적 예술관은 유르스나르의 문학작품 전체에 흐르는 ‘모든 것은 하나(Tout est Un)’라는 중심사고와도 맞닿아 있기에 작가의 대조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유르스나르는 오리엔트에 대한 박학한 지식을 갖추고 동서양 신화 사이의 평행 감각을 지닌 작가이다. 유르스나르는 자신의 문학을 유럽 신화에만 한정짓지 않고, 오리엔트 신화들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신화학의 구도를 보여주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신화의 공간과 특징은 서구신화의 협소한 공간과는 분명 다르다.
유르스나르의 ꠓ동양이야기들ꠗ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을 관통하는 이야기의 힘으로 무의미한 경계들을 지움으로써, 화합과 소통으로 나아가는 경이로운 신화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출처:박선아, 유르스나르의 『동양이야기들』에 나타난 왕포와 코르넬리우스 베르그의 예술관 비교 2017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236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