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의 대표저자만 등록되어 있지만 공저 '디코딩 라틴아메리카'  표지와 책 속 집필자 명단을 보면 그 중 '림수진'이 있다('커피밭 사람들'을 쓴 임수진과 동일인이다). '디코딩 라틴아메리카'에 수록된 ‘커피라는 작물이 미친 영향-커피와 커피밭 사람들’로부터 발췌한다. 내용의 일부로 한국전쟁이 라틴아메리카의 커피경제에 미친 영향이 서술되어 있다. cf. 라틴아메리카 지정학 총서 ‘21세기 중앙아메리카의 단면들-내전과 독재의 상흔’의 엮은이가 '림수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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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세기’라고 불렸던 19세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맞이한 시기이기도 하다. 커피 생산국들은 커피 수출을 통해 재정 기반과 인프라를 강화할 수 있었다. 도시 곳곳에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섰고,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는 자국의 항구들 역시 재정비되었다. 더불어 본국의 내륙과 항구도시들을 잇는 철도망 또한 구축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유럽의 식민지로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유럽을 모방하거나 혹은 유럽을 능가하려는 욕망이 커피를 통해 투영되던 시절이었다.

세계 커피 시장은 19세기 말 지독한 과잉공급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커피 풍작은 곧 두려움이었다.

라틴아메리카 커피 생산 국가들이 긴 혹한기를 견뎌내고 다시 커피를 통해 꽃피는 봄을 맞이한 것은 20세기 후반이었고, 그 시발이 된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정반대편에서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20세기 초반 연구 단계에 있던 인스턴트 커피가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들을 대상으로 상용화되었고,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유럽과 미국 내 TV 광고 및 슈퍼마켓의 등장이 맞물리면서 노동생산 현장에 집중되던 커피 소비가 각 가정으로 스며드는 현상이 발생했다. 다시 한 번 세계 커피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라틴아메리카 커피 생산 국가들이 ‘커피의 세기’라 불렸던 19세기만은 못해도 소소한 커피 붐을 구가하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커피 생산은 분명 오랜 시간 부의 상징이었다. 해당 국가들의 근대사 면면에 커피가 있어 가능했던 부의 흔적들이 오늘날에도 역력하다. 국운의 성쇠가 커피 가격에 의해 좌우된다 할 만큼 커피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도 높았다. 물론 오늘날에도 커피는 세계 도처에서 엄청난 부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부가 만들어지는 곳이 생산현장이 아닌 소비 현장이라는 점이 과거 19세기 라틴아메리카가 향유했던 ‘커피의 세기’와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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