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딩 라틴아메리카'에 수록된 ‘커피라는 작물이 미친 영향-커피와 커피밭 사람들’로부터 발췌한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nuel de la Fuente님의 이미지
세 사람의 대표저자만 등록되어 있지만 공저 '디코딩 라틴아메리카' 표지와 책 속 집필자 명단을 보면 그 중 '림수진'이 있는데 '커피밭 사람들' 저자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커피의 세기’라고 불렸던 19세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맞이한 시기이기도 하다. 커피 생산국들은 커피 수출을 통해 재정 기반과 인프라를 강화할 수 있었다. 도시 곳곳에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섰고,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는 자국의 항구들 역시 재정비되었다. 더불어 본국의 내륙과 항구도시들을 잇는 철도망 또한 구축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유럽의 식민지로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유럽을 모방하거나 혹은 유럽을 능가하려는 욕망이 커피를 통해 투영되던 시절이었다.
세계 커피 시장은 19세기 말 지독한 과잉공급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커피 풍작은 곧 두려움이었다.
라틴아메리카 커피 생산 국가들이 긴 혹한기를 견뎌내고 다시 커피를 통해 꽃피는 봄을 맞이한 것은 20세기 후반이었고, 그 시발이 된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정반대편에서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20세기 초반 연구 단계에 있던 인스턴트 커피가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들을 대상으로 상용화되었고,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유럽과 미국 내 TV 광고 및 슈퍼마켓의 등장이 맞물리면서 노동생산 현장에 집중되던 커피 소비가 각 가정으로 스며드는 현상이 발생했다. 다시 한 번 세계 커피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라틴아메리카 커피 생산 국가들이 ‘커피의 세기’라 불렸던 19세기만은 못해도 소소한 커피 붐을 구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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