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슈테판 대성당의 종탑 etc.

'이희수 교수의 세계도시문화기행 05 유럽 문화도시 2' 중 오스트리아 빈 편이다.

[빈 공방전의 오스만 군대. 당대 오스만에서 묘사한 것이다.] 퍼블릭 도메인, 키미디어 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세 대륙에 걸친 나라, 오스만 제국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019.12.9., 전국역사교사모임)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582698&cid=47323&categoryId=47323



비엔나 포위 1529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2260776


박물관을 가 보고 깜짝 놀랐다. 런던의 영국 박물관(흔히 대영 박물관으로 불린다)이나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는 사뭇 다르다. 그곳들은 제3세계를 지배하면서 날라 온 소중한 기록과 인류 문화유산들을 뛰어난 오리엔탈리스트 학자들이 정교하게 분석하고 정리한 다음, 기가 막히게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그러나 빈의 박물관 분위기는 달랐다. 우선 합스부르그라는 유럽의 정통 왕가가 갖고 있는 묵직한 문화적 무게와 품격이 잔잔히 깔려 있는 것에 놀랐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 군대는 파죽지세로 발칸반도를 점령한다. 그리스, 불가리아, 코소보를 넘어 1600년대 초반에는 드디어 합스부르그의 심장부인 빈까지 도달했다. 빈 성채를 두고 세 차례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오스만 왕가와 합스부르그라는 두 세계, 두 문명, 두 종교가 격돌하는 대회전을 역사에서는 ‘빈 공성전(The Siege and Battle of Vienna)’이라 부른다.

세계 최강의 오스만 제국 군대도 난공불락의 빈 성채를 뚫을 수는 없었다. 1683년 제3차 빈 공성전에서 패배를 맛보면서 결국 오스만 제국 군대가 빈에서 물러났다. 바로 이 사건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오스만 투르크가 정점에서 쇠퇴기로 접어드는 기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세계가 천 년 동안 이어진 이교도 이슬람 세력의 위협에서 서서히 우위를 되찾는 자극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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