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와 이것을 보고 있는 아테나 (로마시대 부조, 3세기)]퍼블릭도메인, 위키미디어커먼즈
[19세기 초 낭만주의 시인들은 프로메테우스를 사회적 정신적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불굴의 인간정신과 무한한 상상력의 상징으로 내세웠고 그 필두에는 셸리의 남편이었던 시인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가 있었다.
셸리가 “모던 프로메테우스”를 소설 ꠓ프랑켄슈타인ꠗ의 부제로 선정한 데는, 이 작품이 1818년 익명으로 출판되었던 당시 초판의 서문을 썼던 퍼시 셸리의 영향이 컸을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 셸리가 퍼시 셸리의 낭만주의 예술관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ꠓ프랑켄슈타인ꠗ은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이 인간을 창조하려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여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출산”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시의 의학서들은 특히 격렬한 감정(passion)을 임산부가 피해야 할 가장 큰 위험 중의 하나로 꼽는다. 여성의 상상력은 위험한 것인데, 특히 임산부에게 더욱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식하기는 했지만 “내 창조 작업이 완결된 후”에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다. 임산부의 신체적 정신적 안정이 건강한 아이 출산에 중요하다면, 이렇듯 흥분에 들뜨고 불안한 상황은 프랑켄슈타인의 창조 작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이 지나고” 실제 인간의 임신기간과 유사하게 약 9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인조인간 창조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음산한 11월의 어느 날 그는 괴물의 탄생을 보게 된다.
사랑 대신 지적 허영심과 공명심에 가득 차 있던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생명체를 창조하면, 피조물은 당연히 그에게 “감사(gratitude)”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섬세한 작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커다란 시신조각들을 조합하여 “키가 8피트정도 되고 그에 비례해서”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놓고는 정작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가 “아름다울” 것으로 기대하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프랑켄슈타인의 생명창조 당시의 의학담론에 비추어 보면 수태와 임신 중 산모가 피해야 할 사항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도살장과 무덤, 해부학 실험실 등에서 받은 끔찍한 시각적 자극들을 수용한 결과 흉측한 모습의 괴물(기형아)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셸리는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실패한 창조인 “괴물”의 탄생과정을 여성의 임신 출산의 과정에 빗대어 묘사함으로써 프로메테우스로 상징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적인 힘과 자유 추구하는 낭만주의 상상력의 한계를 제시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설 속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했고 악명 높은 모던 프로메테우스로서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그들 둘 다 그 창조의 결과로 고통과 징벌을 받게 된다. 전설의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을 능멸한 벌을,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자연을 능멸한 벌을.
모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에 걸맞게 셸리는 북극해와 알프스 고산봉우리의 빙하 등 인간세상과 멀리 떨어진 거칠고 신비스런 자연을 배경으로 이 신화적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낭만주의 상상력 이론을 정립했던 퍼시 셸리가 찬양한 프로메테우스적인 창조력에 대한 여성적 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여성을 배제한 생명의 창조, 인간의 창조를 시도한 반면, 셸리는 여성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전까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글쓰기와 창작, 나아가 과학적 지식까지 동원하여 ꠓ프랑켄슈타인ꠗ이라는 전무후무한 작품을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탄생시켰듯이 작가 셸리 또한 현실에서 잇단 임신과 출산, 유아 사망을 겪고, 무서운 이야기를 상상하려 애쓰던 와중에 백일몽의 비전으로 찾아온 환상의 장면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18세의 젊은 여성 셸리에게 이 작업은 프랑켄슈타인의 실험만큼이나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셸리와 프랑켄슈타인은 둘 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과업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프로메테우스적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부제인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작품 내의 프랑켄슈타인뿐만 아니라 작품을 쓴 셸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름일 것이다.]출처: 손현주, 다시 읽는 프랑켄슈타인: "모던 프로메테우스"와 여성의 생명 창조력(2014) https://s-space.snu.ac.kr/handle/10371/92756?mode=simple
[Prometheus Bound Staging by MacMillan Films in 2015]By James MacMillan - 자작,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