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경이 번역한 '프랑켄슈타인'(아르테)의 '역자 해제 - 창조에 관한 낭만적 이상과 환멸'로부터 발췌한다. 아래 옮긴 글의 '퍼시'는 메리 셸리의 남편인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이다.
Louis Edouard Fournier - The Funeral of Shelley (셸리의 장례식 그림으로 왼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성이 메리 셸리 - 화가의 상상에 기초한 작품이라고 한다.)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익명으로 발표되었으나, 퍼시의 작품으로 여겨지던 『프랑켄슈타인』은 1831년, 스탠더드 소설 시리즈에서 새로운 판본으로 출간되면서 메리 셸리의 저작임을 정식으로 밝히게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는 기독교 창조 신화의 패러디이기도 하다. 피조물이 글을 배우고 혼자 읽은 책으로 존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이 등장하는 것이 이 유사 관계를 재확인한다. 다만, 신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인간 창조는 프랑켄슈타인에게서 쓰디쓴 실망과 악몽으로 반복된다. 신에게서 부여받은 고유한 자질, 인간을 초월적인 존재로 승격시키는 상상력에 대한 믿음은, 프랑켄슈타인에게서 태어난 추한 괴물에 의해 가차 없이 좌절당한다.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피조물이 맑은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라는 장면은 『실낙원』에서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이브를 환기시킨다.
1789년 새로운 세상의 수립 가능성을 제시했던 프랑스혁명이 1815년 나폴레옹의 패배와 함께 사실상 종료되는 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환멸은 불가피했다. 1814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프랑스를 퍼시와 여행한 메리는 낭만적 이상의 좌절과 환멸을 직접 목격했다. 그렇다면 프랑켄슈타인의 실패는 인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했던 시대의 종말과 거기서 비롯한 절망과 환멸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역자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