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다이치 핵발전소 By IAEA Imagebank - https://www.flickr.com/photos/iaea_imagebank/8547334045/, CC BY-SA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03929519


악스트 7/8월호에 실린 장혜령 시인의 에세이 '지옥은 우리 안에 있다―마거릿 애트우드'로부터 아래 발췌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나온 오염수를 바다로 내버린다고 했다. 나는 그 말 속에서 푸른 피를 철철 흘리는 여자의 자궁을 보았다. 지구만 한 여자는 끝없이 하혈하면서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여자의 말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 피를 뒤집어쓸 것이다. 그 피를 뒤집어쓰고 사산된 태아처럼 죽을 것이다. 그것은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의 첫 장면이었고, 우리의 미래였다.

바다는 국경 없이 이어져 있는데,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남의 나라 일처럼 바다를 대했다. 일본과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불렀다. 무엇을 어떻게 처리했다는 것일까? 권력자들은 언어부터 바꾼다. 그런데 언어를 바꿈으로써 세계를 바꾸는 것. 그것이 『시녀 이야기』에서 확인한 전체주의 서사의 시작점이 아닌가?

한국 사람들은 십 년간 먹을 소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물이나 해산물, 채소, 공기를 소금처럼 오래 보존할 방법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마저 모두 사들이리라. 물이 오염되면 더럽혀 지는 건 소금만이 아니겠지만, 바꾸어야 하는 건 개인이 아닌 정부이겠지만, 너무 거대한 변화 앞에 인간은 "그저 숨을 죽이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이것은 애트우드가 『타오르는 질문들』에서 2012년의 시간을 회고하며 쓴 문장이다.)

나는 독자 여러분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일기장에 이 년 전, 이렇게 썼다.

"프랑시스 퐁주는 『사물의 편』에서 바다를 누구도 읽지 않는 두꺼운 책에 비유했다. 그러나 그 바다가 오염되어 페이지를 들춰볼 수도 없는 일은 퐁주도 생각지 못했을 거다. 후쿠시마에서 파도를 구겨 드럼통에 넣고 장사 지내는 미래는 더더욱 몰랐을 거다.

오래전, 그가 자연 속에서 책의 속성을 발견해 냈을 때—그러니까 오염된, 찢긴, 부서진, 망각된 자연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때는 환경오염이 없었으니까.

이제 오염된 바다의 페이지들에 대해 써야 한다."

나는 한동안 후쿠시마에 대한 문서들을 읽었고 SF 시(그런 장르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를 쓰기 시작했다.

밤이면 사라진 달 대신, 인공달이 사라진 도시를 비춘다. 물의 무덤 위로 빛나는 홀로그램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닌다. 물의 무덤은 3D 갤러리다. 매일 밤,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이곳에 정차한다. 마스크와 방호복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이 희귀한 풍경을 둘러보고 작품의 소유권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런데, 얼음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조각가들이 세상을 떠나자 또 다시 새로운 논쟁이 일어난다.—장혜령, 「물의 무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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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8-24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23년 8월 23일 오후 1시를 기점으로 전세계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것 같아요.

서곡 2023-08-24 19:07   좋아요 1 | URL
현실이 곧 디스토피아입니다 미래는 어디로 흘러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