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올해의 문제소설' 중 백수린의 단편 '고요한 사건'에 대한 글 '새로운 재개발 서사와 정주의 상상'(박진숙)으로부터 발췌했다.
Mild process, 1928 - Wassily Kandinsky - WikiArt.org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서는 소설 제목이다. ‘고요한 사건’은 백수린이 주석으로 밝혀놓은 것처럼 바실리 칸딘스키의 회화에서 차용한 것이다.
사건이 고요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기에는 역설이 개입해 있다. 내게는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었으나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리고 그날 이후 내 삶의 경계를 틀지어주는 계기가 되었던 한 장면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다. 칸딘스키가 차용되는 맥락은 어떤가? 칸딘스키는 현대 순수 추상회화 작가로 표현주의 미술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색과 소리, 촉각, 그리고 냄새 같은 오감적 요소를 색으로 표현하는 개념적 추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소설 곳곳에 넘쳐나는 소리, 냄새들은 여기에 연루되어 있다. - P72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창조는 정신의 물질화이고, 감상은 물질의 정신화"라고 했다. 이 예술론에 근거한 칸딘스키는 예술가를 "시대정신의 구현과 전달의 임무를 가진, 시대의 선두에 서서 시대를 인도하는 자"라고 본다. 백수린은 칸딘스키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가. 백수린이 물질화한 정신은 무엇이며 우리는 물질에서 어떤 정신화 과정을 거쳤는가.
무수한 정신들이 천상에서 떠다니다가 지상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면 부름받은 한 정신이 비로소 낙하하는 장면처럼, 재개발 지역 안으로 새하얀 눈송이가 떨어져내리는 풍경. - 박진숙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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