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플리카' 수록작인 소설가 윤이형의 단편 '쿤의 여행'은 2014년 젊은작가수상작품집과 이상문학상작품집에도 실려 있다.

코쿤(누에고치) 사진: UnsplashDavid Clode


아래 옮긴 부분에 에드워드 호퍼가 나온다.



Jo In Wyoming, 1946 - Edward Hopper - WikiArt.org

언젠가 버스 안에서 보았던 동네에도 가보았다. 철공소들이 늘어선 오래된 길을 걸으며 쇠를 두드리는 아저씨들과 구루마 끄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사진 찍었다. 집에 돌아와 그 사진들을 참고하면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보았다. 나는 날마다 줄넘기를 했고,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책을 사서 읽었다. 그래도 내 몸은 조금도 커지지 않았다.

여름과 가을이 더디게 지나갔다. 겨울은 더 길었다. 그리고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찾아왔다.

나는 쿤의 팔을 잡아뜯으며 간신히 책을 펼쳤다. 쿤을 영원히 없애는 법: 거울을 볼 것. 책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 윤이형, 쿤의 여행

윤이형의 「쿤의 여행」에서 등장인물들은 ‘쿤’이라는 존재에 업혀(붙어) 살아간다. 그것이 나 대신 살아가는 셈이니 편리하다고 여기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도 한다.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세상의 본질적인 영역과 대면하려고도 하지 않는, 즉 어른이 되기를 스스로 유예한 커쿤(cocoon, 누에고치)으로서의 인간. 특수하게는, 1976년생인 작가가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자기 세대의 어떤 특수한 결함에 대해 성찰하는 소설로 읽히고, 보편적으로는, 어느 시대 어느 누구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지난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소설로도 읽힌다. 몇 가지 이유로 놀라운 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윤이형이 썼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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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4-15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쿤이라니까 저는 코드 쿤스트가 생각나네요.
처음에 이 사람 코쿤 이란 예명 듣고, 줄임말인 줄도 모르고, 누에고치의 의미가 뭘까 생각했는데...^^

서곡 2023-04-15 14:29   좋아요 1 | URL
고치 코쿤 사진 찾는데 계속 뮤지션 코쿤이 뜨더라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