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 14. 목
제목 : 건너편
줄거리 : 도화와 이수는 10년 전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만나게 됐고 연인이 되었다. 도화는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끝끝내 이수는 시험에 불합격했고 공무원을 포기하고 결국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취직한다. 하지만 사실은 회사를 그만두고 살고 있던 전셋집을 반전셋집으로 돌려 얻은 보증금 일부로 공무원 시험에 몰래 준비중이었다. 도화는 예전부터 달라진 둘의 관계에 이별을 결심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같이 밥을 먹으러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간 날, 도화는 이수에게 덤덤하게 이별을 고한다. 다음날 도화는 교통방송 중 ‘노량진‘이라는 단어에 흠칫하지만 그 날은 결국 도화에게는 12월 26일, 평범한 날에 지나지 않았다.
앞에 두 단편소설이 죽음에 관련되었던 지라 ‘이번에도 등장인물 중 누가 죽으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함이 있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그렇지 않고 비교적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 같아서 가볍게 읽었다. 처음에는 여주인공 도화의 마지막 감정이 이해가 안 갔고 둘 사이의 문제점, 어긋남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고민했었다. 끝내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시간에서 살고 있는 가까운 두 사람˝ 이다. 도화는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사회인이 되었지만 이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에 아직도 머물러 있었다. 내가 읽었을 때 도화는 사회생활을 하며 메말라진? 무뎌진 현대인 같았다면 이수는 어떻게 보면 미련한, 한편으로는 다시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도화는 이수에게 헤어지자 말하면서 자기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이수는 과거에 머물러있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화는 서로 맞지 않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게 아닐까싶다. 인간관계이지만 연인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솔직히 다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친구 사이에서도 한 사람만 잘되면 불안해지는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런 면에서는 이해가 가긴 하지만 역시 어쨌든 연인관계라 100% 이해는 안된다.... 하지만 주변에서 은근 들어왔던 이별얘기였어서 연인들이 헤어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잘 그려낸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장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노량진의 수산시장에서 봐두었던 식당이 보이지 않아 헤매던 이수와 그걸 지켜보는 도화였다. 일단 두 사람이 처음 만났고 공부 하느라 자주 들렸던 곳이었음에도 수산시장을 처음 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돈이 넉넉치 않던 이수가 가격 때문에 미리 알아본 가게가 안 보여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위태로운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도화가 이수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다음날, 교통방송을 하며 ‘노량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흠칫하지만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한 묘사가 나온다. 연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 사람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 좋았고, 이때 ‘고요할 리도, 거룩할 리도 없는, 유구한 축제 뒷날, 영원한 평일, 12월 26일이었다.‘ 라는 표현이 나온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을 영원한 평일이라고 말하며 그저 지나가는 한 날로 표현한 것 같다.
뭐라 표현해야 할 지 어렵지만 이수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 도화는 오늘이 ‘연인과 헤어진 다음날‘이 아니라 그저 365일 중 하나라는 뜻인걸까. 나는 그렇게 느껴진다.
이 편은 전체적으로 고요하지만 그 속에 헤어짐을 앞둔 연인들의 어색함, 위태로움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도화가 6호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며 스마트폰으로 열차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곤 속으로 ‘오늘밤에는 꼭 헤어지자 얘기해야지.....‘ 다짐했다. 그런 지 두 달째였다. - P88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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