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 16. 토
제목 : 침묵의 미래
줄거리 :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천여명의 사람들이 사는 소수언어박물관.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겠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박물관이었지만 사실 여기서 살아가는 민족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일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을 뿐더러 마치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보여지는 ‘샘플‘ 같았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에서 살아가는 한 ‘내 마지막 화자‘는 어려서는 달리기를 잘했지만 지금은 후두암에 걸린 사람이었다. 그는 이 박물관에 납치당해 오게 되었는데 35살 때, 박물관을 탈출해서 자신의 고향으로 어렵게 돌아가지만 거기에는 사람의 흔적조차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는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왔고, 결국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한 번 더 죽은 ‘나‘는 박물관의 중앙 분수대의 금속구에 새겨질 것이다.
이 편을 읽고 나서는 솔직히 감상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다. 음 이 세계의 소수들이 점점 잊혀져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슬픔, 처절함을 너무 잘 보여주어서 당연히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난 그런 소수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무엇인가를 꼭 해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전공수업(러시아)을 들을 때 소수민족에 대해서
그냥 수업을 위해 듣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 생각이 나 부끄러웠다. 하지만 개인인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정말 이 세계의 세세한 것까지 기억해야 하나라는 못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그 사람 인생이 담겨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그런 점을 생각하면 마냥 지나칠 수도 없고 솔직히 복잡한 심경이다.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소설의 감상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쓸 수 있을까 했기 때문에.
이 편에서는 언어에 대해 나왔지만 언어만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소수‘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어느 그룹에서나 소수였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정말 내가 이해가 안 되거나 부당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난 늘 ‘주류‘인 편에 섰기 때문이다. 내가 그 주류에 아주 동의한다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게 편했고 소수의 의견에 아주 동의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편에서 소수가 사라져가는 과정에서의 슬픔은 이해는 갔지만 내가 그걸 보고 쓰는 ˝소수라도 기억해야겠다˝ 하는 식의 독서노트는 위선적이라고 느껴졌다. 이 소설에서 언어박물관은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목적에 비해 그 안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럴 수록 더 잊혀져가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자신들을 ‘소수‘로 딱 지정하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나기도 했다. 마치 내가 이 소설에서의 ‘언어박물관‘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겉으로는 존중한다면서 오히려 더 그들을 사지로 몰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소수를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내가 정말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지... 여러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적어도 그들의 슬픔을 조롱하거나 ˝잊혀져버려도 나랑 상관없지˝ 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게 당연한 거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해야겠다.
다른 말이지만 이 편이 지금까지 읽었던 단편소설들 중에서 첫부분 표현이 너무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점 구체화되는 전개방식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소수‘에 대한 주제라 그런 주제도 신선했고, 제일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편이었다.

중앙은 멸종 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호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 단지를 세웠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리고 그건 중앙에서 내심 바라는 바였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모두 계산된 거였는지 몰랐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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