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9. 토
오소리 작전

이 챕터는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의 특수요원들이 서울에 침입했던 1.21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특수비밀부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기존에 훈련을 했었던 군인들이 아닌 가난하지만 각자 특기가 있었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해 이 부대를 만들었고 강도 높고 비인간적인 훈련을 지속했다. 그들은 북한에 침입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보장된 일자리를 받는다는 희망으로 그 지옥같은 훈련을 버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독트린의 발표로 이 작전에서 관심도가 떨어지게 된다. 결국 그들은 북한에 침입해보지도 못하고 처음 약속받았던 특별대우는 커녕 강도 높은 훈련과 부대병들의 감시 속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1971년 8월 어느날,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울분이 터지게 되고 그들은 탈출 작전을 시작한다. 실미도를 벗어나 인천에 도착해 버스를 타다가 교전이 시작되어 오소리들은 물론이고 경찰, 민간인들까지 사망한다. 이 교전 끝에 생존한 4명은 국회의 진상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였고(물론 이에는 군 관계자의 회유가 있었다) 그 뒤에 그들은 군사재판에서 모든 것을 성실히 답해주지만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유언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처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실미도에 있었던 31명의 오소리들의 진실이 묻히나 싶더니 2002년에 올린 가스통 시위**로 인해 노무현 정부 때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밝혔고 그제서야 모든게 밝혀진 것이다. 31명의 오소리들의 명단이 공개됐고 자신의 자식, 형제가 죽은 걸 그때가 되어서야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더욱 슬픈 사실은 마지막 생존해있던 4명의 유해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다 달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실미도 사건에 대해서는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 언뜻언뜻 들었기에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그때의 사건을 생생하게 듣다니 당사자들의 억울함이 느껴지면서도 유족들의 마음이 아주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다. 항상 이런 부조리한 일들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진 것 없는 자들이며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일하겠다던 국가는 이럴 때에는 먼저 우리의 적이 되고는 한다. 당연히 세상이 공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정치쪽으로 간다면 두 말 할것도 없지만 언제나 진실은 감춰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마다 항상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이를 잊지 말고 역사를 되풀이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잊지 않는 것만으로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잊지 않아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행동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힘이 있을까? 이런 물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안타까움 뒤에 이러한 물음들이 가끔은 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쪼록 세상에는 억울한 일들이 매년 적어졌으면 한다.

피해자에게 위로를 건네는 첫걸음은 언제나 ‘진실‘ 찾기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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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2
2022. 11. 15. 화

2. 요도호 납치 사건

이 사건은 1970년에 일어났다. 같은해 3월 15일, 일본에서 과격한 좌파였던 적군파의 리더 시오미 다카야가 체포당한다. 이에 반발한 적군파가 후쿠오카로 이동하던 국내선을 하이재킹한다. 이 국내선에는 130여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었고 적군파는 이들을 인질로 삼았다. 이 국내선의 이름이 요도호였고, 요도호의 최종 목적지는 평양이었다. 요도호의 기장이었던 이시다 기장은 기지를 발휘해 후쿠오카에 잠깐 머무르나 일본 측은 승객들 중 노약자들만 풀어주는 결과만 얻고 요도호는 다시 평양으로 향하였다. 이때 공군관제사였던 채희석 씨는 중앙정보부에게 평양으로 향하던 요도호를 김포공항으로 유인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반공이 심했기 때문에 북한 측에게 사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요도호가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것은 성공하나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적군파와 대치상황을 펼치게 된다. 며칠간의 대치 끝에 당시 일본의 운수성 차관이었던 야마무라 신지로가 대신 인질이 되는 조건으로 승무원과 조종사를 제외한 인질들을 풀어주게 된다. 결국 요도호는 평양으로 향하였고, 적군파는 북한으로 망명했다. 다행히도 요도호에 타고 있던 차관, 승무원은 무사히 풀려나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가지 웃긴 사실은 적군파가 협박할 때 사용한 무기와 폭탄들은 장난감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외교적으로 한국에 빚을 진 일본은 1호선 건설비용을 무상에 가까운 낮은 이자로 차관해주었고, 이 과정에서 인력과 자원 등의 도움을 준다. 그리고 항공기 강취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인 하이재킹 방지법이 생기고 보안검사를 철저히 하게 된다. 당시 사건에 큰 공헌을 한 이시다 기장과 야마무라 차관은 각각 총리에게 표창을 받고, 후에 정치적 지원을 받는 등 영웅 칭송을 받았다. 북한으로 망명한 9명의 적군파는 현재 4명 생존해있고 일본인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sns까지 하고 있으며 조국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나 그건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요도호를 김포공항으로 오게 한 채희석 씨는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중앙정보부 측에서 이 일에 대해 함구하라고 협박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총명받던 관제사였지만 그 일을 다시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몇십년이 지나서야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었지만 100여명의 인질을 구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은 ‘흥미진진하다‘, ‘재미있다‘ 였다. 어떤 교훈을 생각하기 전에 그냥 이 사건의 전개자체가 마치 한 영화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채석희 씨가 요도호를 김포공항으로 돌리는 과정이 정말 긴장됐는데, 한 순간이라도 실수하면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건 자체는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고 이시다 기장, 야마무라 차관 등 많은 사람들의 활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분들이 영웅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그만큼 또 활약을 했던 채석희 씨가 그들과 같은 영웅임에도 피해를 보기만 한 것은 너무 안타까웠다. 엄청난 대접을 받아도 모자를 판에 오히려 범죄자처럼 숨어버리고 자신의 꿈조차 포기한 것은 너무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떠한 일이든 이런 ‘숨어버린 영웅‘ 이 존재하지 않을까. 꼭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그런 영웅들을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지금도 당신들의 마음속에 ‘내일의 죠‘는 살아 있나요?"

20대 젊은 나이에 ‘우리들은 내일의 죠‘라고 외치며 요도호에올랐던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인지 궁금했거든. 얼마 후 평양에 살고 있는 적군파로부터 답글이 달렸어.

"처음에는 칠전팔기라는 의미였지만 만화 마지막 장면에서 ‘하얗게 불타 재가 되어버린 죠‘를 보고 ‘인민의 재‘로 살아야 한다고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의 죠‘는 지금도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 P103

나에게 닥친 모든 일은 그냥 숙명이라고 여겼어요. 그저 희생자가 1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자랑이에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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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11. 금

1.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사건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을 이끌었던 김구 선생님을 암살한 안두희에 대한 이야기이다. 1949년 6월 26일, 그는 김구에게 4발의 총을 쐈다. 그 이후로 안두희는 47년간 집요하게 추적을 당했다. 그는 암살 후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본인이 밝힌 수감생활에 따르면 특별대우를 받았고, 슬쩍 감형을 받고 1950년 6.25 전쟁 때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군인으로 복귀까지 했다. 실제 복역 기간은 1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며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고 이로 인해 갖가기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백범 암살 진상규명 위원회도 조직됐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백범 암살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 받는 이들이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죽었거나 해외로 망명해 법으로 심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안두희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적했다. 몇년간의 추적 끝에 1992년 9월 23일 안두희를 찾는데에 성공했다. 그는 백범 선생 암살사건 배후에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이 있다는 발언을 했지만 정작 기자회견과 재판에서는 그 발언을 번복하거나 부정, 제대로 된 증언을 하지 않아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결국 안두희는 2년 뒤인 1996년에 버스 기사 박 씨가 휘두른 몽둥이 ‘정의봉‘에 맞아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 챕터는 김구 선생님의 암살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나라의 진실 은폐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대우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김구 선생님이 머물던 경교장은 원래는 친일 기업인의 별장이었는데 해방이 되자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원들에게 이 별장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그가 친일행적에 대해 반성하는가 싶었지만 김구 선생이 돌아가시자마자 안면몰수하고 당장 방을 빼라며 독촉하고 그동안 사용한 임대료까지 청구했다. 이 경교장은 철거될 뻔한 위기에 처했지만 2001년에 겨우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내부만 복원됐다. 그러나 병원 한쪽에 세든 듯 옹색하게 끼어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게다가 우리는 종종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어려운 상황을 들어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씁쓸한 건 사실이다. 오히려 친일파들은 본인들의 재산소유권을 주장하며 싸우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를 위해
힘썼던 많은 분들은 평범한 사람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고 안타깝다.
김구 선생님은 또한 해방 이후 남한만의 정부 수립을 가장 반대하여 어쩌면 암살 사건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상황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때의 김구 선생님의 생각은 틀린 것 같지 않다. 한민족이 되어 나라가 반으로 갈라져 서로 적대적인 현실을 본다면 김구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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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08. 토
-지존파 납치 살인 사건-

1994년 돈 많은 부모님을 잘 만나 좋은 그랜저차를 몰고 다니며 진상을 부렸던 오렌지족을 증오해 사람들을 납치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들은 ‘지존‘이라고 부르는 두목의 지휘 아래 자금을 모으고 계획을 실행하며 살인사건들을 저질렀다. 처음은 그랜저차를 몰고 다니던 밴드마스터 박씨를 살해하였고, 중소기업 사장 부부를 살해하였다.
하지만 돈 많은 자들을 증오해 그들을 납치하고 돈을 갈취하겠다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이 살해한 박씨와 부부는 그랜저차를 몰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부자는 아니었다.
박 씨는 악기 등을 운반하기 위해 700 만원의 중고 그랜저차를 산 것이었고, 부부는 자신의 회사를 가지고 있긴 하나 당시에 경영난에 처한 회사를 인수해 잘 키워나가보려던 상황이었다.
부자들을 증오한다던 그들은 자꾸 엉뚱한 사람들을 타켓으로 잡았던 것이다. 게다가 지존파를 세워 실제 살인사건을 저지르기 전에 연습이랍시고 부자도 뭣도 아닌 평범한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인까지 하였으니, 그들은 그저 악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밴드마스터 박 씨와 같이 납치된 유 씨는 그녀를 조직원으로 키워보려했던 지존파에 의해 생존해있다가 그녀에게 그나마 우호적이었던 김강현이 그녀에 대해 조직원들과 마찰이 있던 중 이마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같이 갔을 때,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녀는 탈출을 하고 경찰서에 신고를 해 이 지존파가 저질렀던 엄청난 살인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검거되고 나서 ˝사람을 더 못 죽인 게 한이다˝ 라는 말을 해 더 세간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당시에는 몰고 다니던 승용차에 따라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도 달라졌다고 한다. 딱 지금의 금수저, 은수저 등이 생각난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재산으로 사람 급을 나누는 건 똑같은 것 같다. 난 요즘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 종류에 잘 사는 지, 못 사는 지 구분한다고 했을 때 경악했었는데
이 때도 마냥 비슷했던 것 같다. 그리고 부자들을 납치해 돈을 벌겠다던 지존파가 했던 살인들이 결국에는 진짜 부자들은 죽이지 못하고 애꿎은 사람들만 살인했다는 사실이 너무 우스웠다.
본인들이 뭐라고 되는 것 마냥 행동하지만 사실은 그냥 증오에 사로잡힌 악마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돈만 있다고 떵떵거리는 사람들과 차별받는 자신들이 싫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야야, 너네 그냥 지존파 해라. 무슨, 마스칸? 야망?
너네가 무슨 야망이냐!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 P312

물론 맥락은 다르지만 지존파 사건이나, 성수대교 사건이나, 이듬해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사건까지… 모두 다 돈과 성공만을 좇다가 벌어진 일들 아닌가 싶어. 어쩌면 지존파는 돈이 우상화된 시대에, 말 그대로 ‘시대가 낳은‘ 괴물이었던 것은 아닐까?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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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는 한 임산부가 갑자기 낙태 수술을 하겠다고 하거나 휴가를 갔던 군인들이 돌아오자 않는 등 기이한 일들이 연속으로 생긴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들이지만 공통점으로 ‘10월 28일‘을 가르키고 있다. 10월 28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이런걸까??
1992년에 이장림 목사가 쓴 예언서에서는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적혀있다. 휴거의 다음 단계는 7년 대환란이다. 이때에는 선택된 자들이 휴거되고 난 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전 세계는 적그리스도의 손아귀에 들어가며 피비린내 나는 대학살과 재난이 겹쳐 인류의 멸망, 종말이 온다는 것이다. 이 예언서의 영향은 생각보다 커져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현실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장림 목사의 다미선교회에 모였다.
결국 신도들의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하면서 검찰도 이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장림 목사는 9월 22일 밤에 이 목사는 검찰에 연행됐다. 현금 34옥 4000만원을 교회가 아닌 개인 계좌로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목사의 집에서 발견된 3억 원어치의 환매조건부 채권을 증거로 그를 사기죄로 기소한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10월 28일에 다미선교회에는 많은 수의 취재진, 경찰들,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당연하지만 싱겁게도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그 많았던 신도들은 ‘천국‘이 아닌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사이비는 왜 이렇게 인간 역사에 끊임없이 나타날까. 아주 지겨워죽겠다. 그래도 사이비에 들어갈 뻔한 경험을 한 나는 신도들도 그렇지만 역시 사람들을 현혹하고 개인의 이익을 취한 목사가 세상에서 제일 역겹다. 앞에서는 착한척, 모두를 위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본인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인간일 뿐이다. 그 일을 겪으면서 느낀 건 세상의 따뜻함과 희망은 나에게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이비 신도들이 현실에서 겪은 아픔 때문에 그런 곳에 빠져드는 것은 이해한다. 나 역시도 예전에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본인이 빈틈이 많고 이성적인 판단이 안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그때의 본인은 자신이 바보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냥 세상은 그런 것 같다. 절망 뒤에 희망이 오고 그 희망은 마냥 가만히 있는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득고, 예수님을 비롯한 어떠한 신을 믿어서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중에 기회가 되어 찾아오는 것이지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희망은 그냥 현혹일 뿐이다.
사이비를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본인들은 피해자에 속고 있는 것인데도 어쨌든 본인들은 희망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제일.. 아이러니하고 이상했다. 나는 그들을 피했지만 후회하지 않고 정말 내 인생 중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휴 하루빨리 사람 마음 갖고 노는 인간들은 제일 고통스럽게 처벌 받았으면 좋겠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죠. 지금 처해있는 삶에서 어려움에서 희망을 볼 수 있죠. 만약에 제가 ‘평생 살아야 된다‘라고하면, ‘60년, 70년을 살아야 된다‘라고 하면, 앞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60~70년을 계속 버텨야 된다는 생각이 들 텐데 시한부종말론이 던져주는 건 ‘이제 3년 남았어‘ 이러면
‘아, 그래, 3년만 있으면 나한테는 큰 기쁨이 오는 거네‘이런 희망을 주죠.
-하영 씨 인터뷰 중 - P285

‘그날‘ 이야기를 돌이켜보면서, ‘오늘‘ 우리는 종말론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진짜 종말이 없는 건 종말론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날이 언제일지 모를뿐, 어차피 인생은 유한한데 내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오늘을 사는 건 어떨까?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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